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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는 기획 '내가 몰랐던 OOO 세계'에 대한 글을 싣습니다.[편집자말]
"오! 이제 그럼 한국의 죠앤 K. 롤링이 되는 건가?"
"에이, 그냥 관심이 있다는 거지, 아직 어찌 될지 몰라."


최근 한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내 글에 관심이 있다는 뜻밖의 메일을 받았다. 들뜬 마음으로, 퇴근한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니 저리 말한다. 멋쩍게 웃어 넘기지만, 남편에게 "잘 되었다", "기쁘다" 같은 공감과 인정의 말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살짝 서운하다. 과한 기대에 조롱이 반쯤 섞인 느낌이랄까?

남편의 저런 류의 농담은 사실 전례가 많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글쓰는데 골몰하느라 퇴근하는 남편에게 "왔어요?" 인사말만 던지고 내다보지 않는 때가 많았다. 그럼 남편은 안방 문을 열고, 인상을 찌뿌린 채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고 있는 나를 향해 한 마디 한다.

"아유, 노벨상 타시는 줄~!"

남편의 말에 또 서운했다
 
  남편의 농담은 마치 ‘노벨상 탈 정도의 실력도 아니면서 뭘 그리 열심이냐’는 속뜻으로 내겐 들린다.
  남편의 농담은 마치 ‘노벨상 탈 정도의 실력도 아니면서 뭘 그리 열심이냐’는 속뜻으로 내겐 들린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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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왔는데 거들떠도 안보니 서운하다는 뜻이렸다. 그 마음은 알지만, 저 농담은 마치 '노벨상 탈 정도의 실력도 아니면서 뭘 그리 열심이냐'는 속뜻으로 내겐 들린다. 아니, 꼭 노벨상급이 되어야만 집중할 수 있나?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일텐데 말이다. 남편은 내가 글 쓰는 일을 별로 비중있게 생각지 않는구나 싶어 또 서운했다.

나는 좋아서 글을 쓴다. 상을 타려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등단을 염두에 둔 것도 아니다. 목표 없는 글을 뭐하러 쓰냐고 묻는다면 별로 답할 말은 없다. 그저 내가 가진 생각과 경험들을 객관화시키고, 일상의 순간을 뽑아 의미를 보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보람될 뿐이다. 그렇게 써내는 글들이 물론 볼품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 볼품없는 글을 써내느라 나름 필사적이다.

그렇게 쓴 글들을 <오마이뉴스>에 보내 운좋게 기사로 채택되면 기쁘기 그지없다. 내 의견이 사람들과 나눌 만하다고 인정받은 것 같고, 원고료까지 받으니 금상첨화다. 게다가 다양한 의견의 기사 댓글을 읽으며 '쓰는 일'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나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으로 더 분명히 각인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잘 쓰다가도 종종 의욕이 꺾이고 의기소침해진다. 잘 모르는 분야로 새롭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누구나가 그렇듯 말이다. 그럴 때 주변 이들의 따뜻한 지지는 그 무엇보다 큰 힘과 활력이 될텐데, 쓴 글이 기사로 채택되었다고 남편에게 공유하면 남편은 부럽다며 샘을 낸다.

이미 사회적 지위나 수입도 훨씬 많이 누리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 아내의 작은 진전과 소소한 수입을 시샘하는 건지 나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의 글쓰기를 남편이 존중해주고 지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헛된 기대일까? 내 편인 듯 내 편 아닌 남편의 진짜 속마음은 뭘지 궁금하다.

남편이 힘든 시절 내게 받았던 온갖 지지는 다 잊어버렸나 보다. 결혼하고 얼마 안되어 남편이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뜬금포 선언을 했을 때부터 육아와 집안일은 온통 내 차지였다. 그뿐이랴. 아무리 서럽고 힘들어도 남편이 힘들 땐 진심어린 위로를, 기쁠 땐 한껏 자랑스러워 했다. 만일 남편의 공부에 대해 내가 조롱이나 농담을 했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느꼈을까?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남편에게 억울하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받은 농담과 조롱에 비례해 폭풍 잔소리로 되갚아 주리라. 다 쓴 휴지뭉텅이 좀 여기 저기 놓지 말라고 귀 따갑게 굴고, 제발 제목만 다르지 비슷한 내용의 책은 그만 좀 사 나르라고 닦달을 한다. 남편이 신이 나서 자기 얘기를 장광설로 펼쳐놓을라 치면 잽싸게 그 얘기 이미 세 번째라고 남편의 기운을 빼놓는다. 가끔은 딸까지 합세한다.

"아유, 내가 못살아. 이 잔소리 대마왕들!"

나와 딸의 잔소리 폭격이 퍼부어지면, 부대낌을 감당 못한 남편은 집을 피해 외출해 버리고 만다. 그럼 나는 적의 약점을 포착하여 사냥에 성공한 맹수처럼 남편의 줄행랑에 기세등등해진다. 이정도면 혹시, 우리 부부는 서로의 약점을 잡아 농담을 하고 괴롭히는 재미로 같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최근에는 남편의 이상행동을 또 한 가지 발견했다. 오랜만에 남편과 들른 시가에서 남편이 청소기를 들더니 거실과 부엌을 왕래하며 청소를 하는 것이다. 급기야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냉장고 위에 쌓인 먼지까지 닦아냈다. 난생처음 목격하는 남편의 정성스러운 집안일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대체 왜? 집에서는 이사온 지 5년이 넘도록 인터폰 사용법도 아직 헷갈리는 사람인데 부모님댁 냉장고 위의 먼지를 닦는다고? 궁금함을 못 참고 직접 물어보았다. 시가에서 할 수 있는 집안일을 집에서는 왜 그토록 무심한 거냐고.

"집안일은 그냥 당신을 믿는 거지, 뭐."

찡긋 웃으며 은근슬쩍 넘어가는 남편을 보며 와, 어쩜 이리 당당하게 뻔뻔할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묻는 김에, 그간 왜 별 것도 아닌 나의 작은 진전들에 조롱하고 질투하는지도 물어보았다.

"일종의 경쟁심리이기도 하고, 자존심이기도 하지. 당신이 나보다 더 잘 되면 날 떠날까 봐 살짝 걱정되기도 하고."

답변이 충격적이다. 경쟁심리에다 내가 잘 되면 떠날까 봐 불안해진다고? 와, 20여년 넘게 함께 살아 온 세월이 무색하다. 도대체 이 남자는 적인가, 아군인가?

기대에 부응하는 완벽한 사람은 없다
 
  부부만의 특별한 기억들이 있고, 재미삼아 투닥거릴 수 있는 편안함을 잃지 않는다면
  부부만의 특별한 기억들이 있고, 재미삼아 투닥거릴 수 있는 편안함을 잃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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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미덥기 그지없는 남편과 나는 왜 여전히 한솥밥을 먹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내로서 존중받고, 공감받고 싶다는 바람을 수차례 표했음에도 여전히 벽창호인 이 사람과 말이다. 아마도 살면서 몇 번은 남편에게 감동받은 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가의 변기를 막히게 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구를 때 남편이 선뜻 나서서 뚫어준 일이라든가, 빠듯한 유학생활 중 수백 만 원의 남편 장학금을 홀라당 펀드로 날려먹었어도 책망하지 않고 관대하게 넘어간 준 일처럼 말이다.  

그 몇 번의 결정적 사건들의 힘이 참 세다. 그 기억을 뺀 수많은 날들을 실망과 분노로 가득 채웠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거듭 마음먹게 만드니 말이다. 게다가, 서로의 약점을 잡아 농담이나 잔소리로 만들어 괴롭히면서도, 그 여파를 거의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부부 사이가 유일하지 싶다. 어쩌면 그 행위는 부부간의 동지애를 확인하는 일종의 놀이인지도 모르겠다.

내 기대에 부응하는 완벽한 사람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서로의 약점과 허점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부부만의 특별한 기억들이 있고, 재미삼아 투닥거릴 수 있는 편안함을 잃지 않는다면 부부관계는 멀고 가깝고를 반복하는 속에서도 그럭저럭 지속될 수도 있지 않을까.

때론 적인지 아군인지, 내 편인지 남의 편인지 헷갈리다가도, 결정적 순간에 가장 먼저 합심하여 위기를 헤쳐나가는 관계가 부부이기에 말이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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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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