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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혐오정치는 인종 및 국적, 성별정체성 및 성적지향, 장애, 거주환경, 고용형태 및 직업 등과 같은 다양한 조건에 따라 차별과 혐오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 기반한 혐오정치는 이주/난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홈리스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건강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건강은 이제 질병에 대한 치료와 통제의 범주를 벗어났으며 병리적 관점에서 의학적 개입으로만 완성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사회구조적 요인에 의해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건강권이 침해받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다가오는 6월 1일 치러지는 전국지방선거에서 우리는 소수자 또는 약자가 아닌 권리의 주체로써 사회 속에서 공존하고 공생하기 위해 우리의 평등한 건강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연속기고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편집자말]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를 비롯해 HIV감염인단체와 인권단체들이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세계에이즈의 날 캠페인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를 비롯해 HIV감염인단체와 인권단체들이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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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뼈가 아프면 정형외과로, 눈이 좋지 않다면 안과로, 치아가 아프다면 치과로. 증상에 따라 병원에서 치료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 갑자기 이런 당연한 소릴 왜 하는 것일까? 나는 이 글에서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를 원하는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HIV감염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13년차 HIV감염인 당사자인 나의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HIV감염인 자조모임에서 만난 수많은 HIV감염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의료 차별'로 발생하는 HIV감염인의 건강 불평등

HIV감염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의료 차별에 대해 걱정하고, 많은 HIV감염인이 의료 차별을 실제로 경험한다. HIV감염인들은 대부분 병원에 가기 전부터 고민을 시작한다. 전염성 질환이 있기에 "행여나 병원을 통해 누군가 감염되지는 않을까?"부터 "무작정 병원에 가도 될까?" 하는 고민, 병원에 가면 HIV감염인이라는 표시가 뜨는지에 대한 걱정, 문진표에 적혀있는 기저질환 목록에 HIV가 있을 때, 의사가 "어디 아픈 곳 있으세요?" 또는 "먹고 있는 약 있으세요?"라고 질문할 때 HIV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 먹는 약이 HIV 치료제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고민을 끊임없이 한다.

치료를 받기도 전부터 이렇게 걱정하고 고민하는 상황이 HIV감염인에게 편한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는 것을 미뤄 병을 키우기도 한다. 처음부터 나름대로 각오하고 병원에 갔다고 해도, HIV감염 사실을 의료인에게 알리고 나면 불쾌한 일을 겪지 않기란 너무 어렵다. 왜냐하면, HIV라는 바이러스의 병리적 특성을 고려하여 치료가 진행되기보다는 비과학적이고 근거 없는 믿음에 의한 언행으로 상처를 받거나 진료거부를 당하는 등 의료차별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2016년 HIV감염인 208명을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에서 진행한 '감염인(HIV/AIDS) 의료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6.2%가 '다른 질병으로 병원 방문시 HIV감염인임을 밝히기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매우', '대체로 그렇다'고 답변하였다. '치료/시술/입원 시 감염예방을 이유로 별도의 기구나 공간 사용'을 경험한 응답자는 40.5%, 'HIV감염사실 확인 후 약속된 수술 기피/거부'를 경험한 응답자는 26.4%이다. 또한 79%의 응답자가 '의료기관에서의 차별이 많거나 있는 편'이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매우 많은 HIV감염인이 의료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HIV/AIDS에 대한 의료기관의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태도와 그러한 의료기관에서 HIV감염인으로서 겪는 차별과 멸시의 경험이 HIV감염인들로 하여금 병원 방문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이런 차별적 행태들이 악순환되며 HIV감염인들의 건강하게 살 권리를 침해하는 건강불평등 요인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HIV감염인들은 어떻게 의료차별을 경험할까?
 
<감염인(HIV/AIDS)의료차별 실태조사 보고서>, 2016, 국가인권위원회
 <감염인(HIV/AIDS)의료차별 실태조사 보고서>, 2016, 국가인권위원회
ⓒ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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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내가 겪은 의료차별 경험은 2021년 어느 항문외과 병원에서 일어났다. 항문수술이 필요해 근처 항문외과를 찾았을 때 병원에서는 질병이 있는지, 먹고 있는 약이 있는지 집요할 정도로 물어봤다. HIV 치료목적으로 먹는 약을 제외하고 다른 몇 가지 약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수술 날짜를 잡으며 혈액검사를 진행했고 검사에 HIV가 검사항목으로 포함됐다. 결국 HIV 감염 사실을 안 병원은 내가 쓴 식기와 환자복, 수술 도구를 모두 폐기해야 하니, 해당 물품의 구매비용으로 수술비 5만 원을 추가로 더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누군가는 병원의 처사가 당연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의과학적 사실에 근거하면 HIV감염은 많은 양의 HIV가 존재하는 혈액과 일부 체액이 비감염인의 몸속으로 침투해야만 가능하다. 호흡기나 단순 접촉으로는 HIV에 감염이 되지 않을뿐더러 밖으로 노출되어 산소와 접촉한 HIV는 금방 사멸해버리기 때문에 수술도구 등에 묻어 있는, 눈에 보이는 혈액으로 인해 HIV에 감염되기는 어렵다.

게다가 나는 꾸준한 HIV치료제 복용으로 체내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게 잘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지켜야 할 보편적 주의원칙(모든 환자의 혈액을 비롯한 체액은 오염된 것으로 가정하고 주의하는 예방을 위한 조치) 의무만 잘 따른다면 어떠한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HIV감염이 될 확률은 제로였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HIV감염인이 사용한 식기와 환자복을 폐기하지 않아도 되고 수술도구와 같은 의료기기 및 기구에 대한 소독 및 멸균지침 등의 감염예방조치를 철저하게 준수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의했다. 병원이 HIV감염인인 나에게 하는 행동은 분명 의료차별이라고 설명하고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는 차별 진정을 넣었다. 하지만 나의 진정건에 대한 인권위 담당관의 답변은 너무나도 황당했다. 담당관은 병원의 행동이 진정인에게 기분이 나빴을 수는 있지만 식기, 환자복은 병원의 사유재산이기에 폐기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병원의 자유라고 했다.

HIV/AIDS을 이유로 한 차별을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국제인권규범인데 이러한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할 인권위조차 HIV감염인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식기와 환자복을 폐기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고 말하는 걸 보고 나는 너무나도 황당해서 인권위에도 항의했다. 이후 오랜 시간 사건이 방치되다가 재배정된 담당관의 답변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5만원의 추가비용은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의 제도개선이 필요하고 병원 역시 HIV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을 테니 'HIV감염인 진료를 위한의료기관 길라잡이'를 전달하도록 하고 사건을 종결시키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니! 병을 치료하는 곳이 의료기관인데 HIV를 잘 몰라서 생긴 일이니 이해하라니 이런 궤변이 어디있는가?

내가 인권위에 진정인으로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HIV감염인이라고 해서 단순히 5만 원을 더 내는 것이 부당하고 아까워서가 아니라, 5만 원을 넘어선 근본적인 그들의 차별의식을 깨우쳐 달라는 것이었다. HIV감염인이 썼던 식기이기 때문에 식기를 폐기해야 한다는 생각, 세탁할 때 HIV감염인의 피가 다른 환자복에 섞이기 때문에 예방을 위해 폐기해야 한다는 무지함, HIV감염인이기 때문에 보편적 주의 원칙을 넘어선 주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는 HIV에 대한 미신적인 믿음과 시선이 차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차별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한 줄기 차별의 시선
HIV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며 HIV를 미검출 수준으로 억제하면 다른이에게 HIV를 전파시키지 않는다.
▲ U=U캠페인용 피켓 HIV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며 HIV를 미검출 수준으로 억제하면 다른이에게 HIV를 전파시키지 않는다.
ⓒ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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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염인은 자신이 HIV치료를 받는 병원의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으려고 했을 때 김장비닐로 덮인 진료용 의자에 몸을 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감염인은 수술이 필요한 상황 의사가 수술을 차일피일 미뤄 증상이 계속 악화해 결국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며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했냐"는 소릴 들었다. 일하다가 엄지손가락이 잘린 HIV감염인은 절단된 손가락을 봉합해줄 병원을 찾기 위해 13시간 동안 스무 개가 넘는 병원을 알아봤고 결국엔 수술 시기를 놓쳐 엄지손가락을 제대로 쓸 수가 없게 됐다. 인천의 어느 병원에 입원한 한 HIV감염인의 손목에는 'HIV'라고 써놓은 팔찌를 채우고 이에 항의하자 대안이랍시고 '혈액주의'라는 팔찌로 대체했다. 실제로 HIV감염인이 겪은 차별사례들이다.

HIV감염인 모임에서 위와 같은 의료차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다른 감염인의 의료차별 경험은 물론이고 본인의 의료차별 경험을 토로하는 이들도 적지 않게 나온다. 이런 차별의 경험을 서로 공유하면서 마지막에 마무리하는 말들은 대부분 차별과 혐오가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로 모인다.

결국에는 HIV/AIDS혐오가 없어지면 의료차별도 없어질 것이고 감염인이 병원에서 겪는 차별도 없어져 나를 병균 취급하는 서러움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혐오와 차별을 없애기에 너무 좋은 활동 문구가 있었다. 바로 "혐오를 넘어 사람을 보라"이다.

혐오는 혐오 너머에 있는 사람을 인식하기 힘들게 만드는 장벽이 된다. 혐오와 거부감은 질병의 것이지 사람이 가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런 질병을 갖고 있을 뿐이다. HIV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으로 질병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걷어 내 보면 HIV감염인이 아닌 진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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