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책 <어린이라는 세계> 표지
▲ 책 <어린이라는 세계> 표지 책 <어린이라는 세계> 표지
ⓒ 사계절

관련사진보기



책 <어린이라는 세계> 속 어린이들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자니 모두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여리고 약한 모습들이었다. 또 용감하고 솔직하며 거침없는 모습들이기도 했다.

나의 여러 모습들이 겹쳐 보이는 '어린이의 세상'을 존중하고, 사려 깊게 바라봐 주는 이 책이 위로가 됐다. 기다리고 이해해 주는 시선만으로 충분한 위안을 받았다. 처음으로 어린이의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 세상을 돌보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며 받은 위로를 통해 알게 됐다. 

책은 어른의 시선으로 어린이를 바라보지 않는다. 동료로, 친구로, 동등한 관계로 어린이를 바라본다. 어린이도 우리와 동등한 관계이니 그만큼의 주체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의미의 '동등'이 아니다. 어린이를 어린이 그 자체로, 이성(理性)으로 대하는 '태도로서의 동등'이다. 가령 '상대가 어른이라면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을 어린이에게도 하지 않고, 내 앞의 어린이가 너무너무 귀엽더라도 계속 쳐다보거나 어르는 말투를 쓰지 않는(p.193)'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어린이의 세계를 존중하면서도 이렇게나 솔직하고 다정한 이야기라니! 어린이를 희화화하거나 부정적으로 소비하는 콘텐츠나 말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 귀한 책을 발견했다. 

서로에게 다정한 세상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
현성이 말마따나 그것도 맞지만, 그때도 우리는 우리였다. 지금보다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문을 열고 닫을 때, 붐비는 길을 걸을 때나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머뭇거릴 때 어린이에게 빨리하라고 눈치를 주는 어른들을 종종 본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간단한 일이라 어린이가 시간을 지체하면 일부러 꾸물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렸을 때 기다려 주는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p.18~20

어린이는 나중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말이 처음 듣는 말인 듯 낯설게 들렸다. 당연하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어린이는 그냥 그 자체다. 새로운 걸 접할 때, 무언가를 시도할 때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조금 더 골똘해야 할 뿐, 무언가로 완성되어야 하는 상태가 아니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익숙해지고 능숙해질 뿐이다.

어른이라고 다른가. 낯선 일을 접하면 어릴 적 처음 신발 끈을 묶게 됐을 때처럼 헷갈리고 버겁다. 나만 해도 올해 처음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며 '어린아이'가 된 것 마냥 모든 게 낯설고 미숙했다. 처음 겪는 일도 많고 실수투성이에, 도무지 '어른'이라곤 믿기 힘든 실수들을 저지르곤 했다.

꼭 낯선 일이 아니어도, 나는 유독 실수가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 게 두려웠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실수가 적은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능숙해져야 하니까. 그러나 어른이 되어도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많은 것들이 낯설고 어렵다. 그 낯섦과 어려움 앞에서 실수하긴 마찬가지다. 어른이라는 사실을 피하고 싶은 이유는 단지 이거였다. 어릴수록 실수에 대해 '그러려니' 해주는 너그러움과 이해를 몇 살이 되든 똑같이 받고 싶었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음만으로 되지 않으니 나도 보고 배우고 싶다. 좋은 친구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나 기웃거리는 요즘이다.
p.45~46

나는 어린이 시절부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들이 나를 '애 취급'하는 게 싫었고, 성인이 된 지금의 언어로 당시의 마음을 설명해보면, 아마 주체적인 인간으로 봐주길 바라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실수에 대해선 너그럽게 이해받고 싶어 어른이 되기 두렵다니. 이 이중적인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고민했고, 도달한 결론은 간단했다. 어떨 땐 어린이, 어떨 땐 어른 같고 싶은 이 마음은 필요에 따라 영악하게 무언가를 택하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내가 어른이든, 어린이든 타인에게 바라는 태도였다. 나를 너그럽게 기다려주길, 나를 동등하게 대해주기를 말이다. 내가 타인에게 노력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린이를 기다리고 이해해 주듯 서로를 기다리고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어른을 존중하듯 어린이를 존중할 수 있다면, 서로를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기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이 사회가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다림이 익숙한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서 타인을 기다려 줄 수 있을 거다. 그런 어른은 어린이에게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거다. 이들이 모여 더 너그러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확장해서 이해하니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어린이에게 다정한 세상은 곧 서로에게 다정한 세상으로 가는 길일 거다. 이 길은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이해와 배려가 인색해진 지금의 우리 사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나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어땠어?"
"뭐라고 해야 하지? 위로가 됐어요. 그런 날은 운이 좀 좋은 것 같아요."
p. 146

저자가 '주이'에게 베푼 호의에 대한 '주이'의 대답이다. "위로가 됐어요"라는 말에 저자는 "어린이에게는 어른들이 환경이고 세계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문득 어린이에게 우리는 지금 어떤 어른일까, 우리는 어린이에게 어떤 환경이고 어떤 세계일까 생각해 봤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얼마 전 기사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일수록 아이들의 등교 길이, 놀이터로 향하는 길이, 이동하는 모든 길들이 위험하다는 내용을 읽었다('보행 안전을 돈 주고 사야 하나요?', 시사IN).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안전과 환경마저 계층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마저 부모가 돈으로 구매해야 하는 사회다. '어린이가 마음 놓고 진짜로 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라는 책 속 문장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뿐인가. '노키즈존'이 찬반의 영역이고, '스쿨존을 뚫어라-민식이법은 무서워' 따위의 게임을 만들며 즐기는 어른들의 나라 아닌가. 심지어 '스쿨존을 뚫어라' 게임은 지난 9월 말까지 1만 회 이상 다운로드 되고, 평점은 5점 만점에 4.8점을 기록했으며, 사용자 리뷰도 호평으로 가득했다.
 
우리나라 출생률이 곤두박질친다고 뉴스에서는 '다급히' 외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 어린이가 찾아올까? 너무 쉬운 문제다.
p.213

새로운 어린이를 잘 맞이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있는 어린이를 제대로 지켜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겠단 생각을 책을 읽으며 자주 했다.

그리고 어린이를 지키는 건 어린이에게서만 끝나지 않는다. '노키즈존'이라는 팻말이 붙은 카페나 식당은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반면 아이들을 다정하게 환영하는 문구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들어가고 싶어진다. 이곳은 왠지 나에게도 다정하지 않을까. 최소한 나를 귀찮은 손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다는 기대와 따뜻함을 안고 들어가게 된다.

어린이에게 너그러운 사회가 곧 서로에게 너그러운 사회가 되듯, 어린이를 위한 안전하고 좋은 환경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좋은 환경이 된다.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도로는 노인과 장애인에게도 안전한 도로고 그 도로는 어느 누가 걸어도 안전한 도로가 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연약하고 약한 이들을 보호하는 건 우리 서로를 보호하는 것과 같다. 이뿐인가. 당장 뉴스나 정치 언어를 더 쉽게 만드는 일, 공공장소의 언어를 쉬운 언어로 바꾸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다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꼭 어린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어린이에게 안전하고 다정한 세상을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번 어린이날,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며 서로를 위한 다정한 세계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어린이를 위해, 나를 위해.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 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p.219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은이), 사계절(2020)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