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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이하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취임 1주일여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인수위가 발표한 국정과제는 이후 5년 재임기간 동안 추진할 윤석열 정부의 청사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발표된 국정과제 중 외교안보영역에 담긴 내용 중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어 비판적 제언을 하고자 한다.

과거로 회귀하는 비핵화 정책

'북한의 비핵화 추진'이라는 제목 하의 내용에서 '국정과제'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위해 한미 간 조율된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고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비핵화 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 당시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에서 논란이 되었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는 패전국에게나 강요하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북한의 반응을 감안해 한미 간 조율을 통해 사용을 자제해 왔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다시 CVID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준다.

또한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해서도 2019년 '하노이 노딜'의 주 요인 중 하나가 미국이 북한에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요구했던 점이었음을 감안하면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더한다. 더구나 관련된 항목에서 '국정과제'는 "강력한 대북제재의 유지와 국제공조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 역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시작부터 쉽지 않을 것임을 예견케 한다.

한반도 평화 대신 군사적 갈등 심화시킬 정책들

'국정과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과 관련해 '한국형 3축 체제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유사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등 공격적 내용을 담고 있는 3축 체제(킬 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 대량응징보복)는 북한의 반발은 물론 그 군사적 작전이 전면전으로 확전될 위험성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온 개념임을 윤석열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또한 '국정과제'는 '한미군사동맹 강화'라는 제목의 항목에서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의 실질적 가동"과 "미 전략자산 전개를 위한 한미공조 강화",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야외기동훈련 재개" 등을 제시했다. 2016년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모든 군사적 능력을 활용한 확장억제를 한국에 제공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는 한반도 평화정세가 시작된 2018년 초 이후 개최되지 않아왔다.

여기에 미국의 핵우산을 강화하고 전략자산의 전개와 더불어 한미연합군의 야외기동훈련이 재개될 경우 북한 역시 이에 대응하는 군사행동을 강화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경색되어 가고 있는 한반도의 군사안보정세를 악화시키고 군사적 갈등과 충돌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시기도 정하지 않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정책

'국정과제'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전환과 관련해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과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능력을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전작권은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한미 간 합의를 통해 전환하기로 합의한 바 있고 이를 위한 과정이 진행 중에 있다. 코로나19 상황 등으로 전환 과정이 지체되었다는 것이 한미의 공식 입장인 바 임기 내 조속한 전환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국정과제'에는 전작권 전환의 조건만 언급되어 있고 명확한 시기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한국의 군사주권을 환수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미국에 종속된 군사동맹으로 초래될 미중 패권경쟁에의 연루 문제, 독자적 군사정책의 수립 필요성 등 전작권 환수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경제력 세계 10위, 군사력 6위라고 자랑하는 한국의 군 통수권자가 여전히 자국 군대에 대한 온전한 지휘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국정과제' 중 외교안보정책의 제목에서 밝혔듯이 "세계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한다면 국가주권의 핵심인 군사주권 회복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구태한 '주적' 개념의 부활

'국정과제'는 '장병 정신전력 강화'라는 항목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임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국방백서에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소위 '주적' 개념과 관련해 한국사회에서는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할 뿐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 논란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미국 등 많은 나라들이 주적 개념을 국방정책의 요소로 채택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또 다시 국방백서에 주적 개념을 넣으려고 하는 모습은 안보와 관련한 인식의 구태함과 천박함을 드러낸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미국 편에 서는 쿼드 참여, 한반도 평화에 위협될 수도

국제사회에서의 외교안보정책과 관련해서도 우려스러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국정과제'는 동아시아 외교라는 제목의 항목에서 한미동맹의 확대를 언급하며 "인도⸳태평양지역에서의 한미공조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이는 인도, 일본, 호주 등이 참여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연대체 쿼드에 보다 적극적인 참여의사로 읽힌다. 이미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윤석열 당선인은 쿼드 참여를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고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정책공약집'에도 쿼드 참여를 적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책 역시 재고되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군사⸳경제적으로 대립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어느 한 편만으로 서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에 도움이 될 지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과 중국의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준의 결합력을 형성하고 있고 그 비중은 미국과 경제협력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중국이 쿼드의 행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의 정 반대편에 서는 정책이 국가의 경제정책적인 면에서 또 군사안보정책적인 면에서 어떤 의미와 영향을 가질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역사적 정의 없는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마지막으로 일본과의 관계와 관련해 '국정과제'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발전시켜 양국 간의 교류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당시 한일 양국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합의했던 핵심은 한일 간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가 전제되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후 아베 신조 등 극우세력이 일본 정치를 장악하며 일본의 입장은 변화되어 왔고 그 변화된 태도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럼에도 '국정과제'는 한 발 더 나아가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를 언급하고 있는데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협력를 언급하기에는 섣부르다. 아울러 미국이 주도하게 될 한미일 군사협력은 쿼드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겨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면밀한 검토와 신중한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국정과제' 서두에 언급되어 있듯이 현재의 세계는 탈냉전 이후 수십 년간 형성된 국제질서가 깨지는 상황에 있으며 한반도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어느 블록에 편입되는가에 따라 어떤 나라도 위기에 처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외교안보정책은 보다 신중하고 역사적인 통찰을 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국정과제'는 지적한 바와 같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할지와 관련한 진지한 고민을 당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가 발표된 날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가 낸 입장문을 수정한 것입니다.


태그:#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 #주적개념, #한반도 평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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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제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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