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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민족행위자라 하더라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서 사망한 사람' 이외의 자격이 있다면 현행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국립묘지법)에 의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2009)나 <친일인명사전>(2009)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라 하더라도 최소 29명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서 사망한 사람'이 친일반민족행위로 서훈이 취소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이장을 해야 한다. 서훈 취소로 현재까지 대전현충원에서 이장이 확인된 이들은 서춘(독립유공자1-151), 김응순(독립유공자3-360), 박성행(독립유공자1-212), 박영희(독립유공자1-166), 유재기(독립유공자3-891), 이동락(독립유공자2-488)이 있다. 강영석(독립유공자1-264)은 서훈이 취소됐지만 이장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서훈 취소로 김응순의 묘가 이장된 흔적. 김응순의 묘는 독립유공자 3묘역 360번에 안장되어 있었으나, 2011년 10월 31일에 이장되어 359번과 361번 묘 사이가 비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훈 취소로 김응순의 묘가 이장된 흔적. 김응순의 묘는 독립유공자 3묘역 360번에 안장되어 있었으나, 2011년 10월 31일에 이장되어 359번과 361번 묘 사이가 비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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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은 1963년에 독립장을 추서 받았지만,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주필과 국민총력조선연맹 선전부 위원 경력이 드러나 1996에 서훈이 취소되었다. 서춘의 묘는 서훈 박탈 8년 만인 2004년 9월 22일에 대전현충원 밖으로 이장되었다. 서훈 박탈 후 가족에게 이장을 요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았고, 대전현충원 측에서 묘비를 제거한 후에야 이장했다. 현행법에는 서훈 취소자에 관한 규정이 미비해 서훈이 취소되었다 하더라도 이장이 강제 규정이 아니다.

1990년에 애국장을 추서받은 박성행, 박영희, 이동락은 2011년에 서훈이 취소되었다. 박성행은 1940년대 내선일체 선전 등 각종 강연에 나섰고, 박영희는 1935년 정신작흥전개운동 회의 참석, 1937년 심전개발 순회강연 실시, 1930년 중반 비행기 헌납금을 납부했다. 이동락은 1936년 친일전향단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박성행은 서훈이 취소된 지 4년 만인 2015년 11월 25일에 이장했다. 박영희와 이동락은 서훈이 박탈된 해인 2011년 10월 6일과 2011년 12월 3일에 각각 이장했다.

1993년에 애국장을 추서 받은 김응순은 1942년 해군기 헌납, 1943년 징병 선전 선동, 1944 비행기 헌납자금 모금에 참여한 행적이 발각되어 2011년에 서훈이 취소되었고, 그의 묘는 2011년 10월 31일에 이장했다. 1995년에 애국장을 받은 유재기는 1941년 애국기 헌납기금 조달을 독려하고, 국민총력 경북노회연맹 이사장을 지냈으며, 1942년에는 전쟁준비 동참 권유 글 게재한 행적이 드러나 2011년에 서훈이 취소되었다. 유재기의 묘도 2011년 10월 20일에 대전현충원에서 이장되었다.
 
강영석은 서훈이 취소되었지만 부인의 묘에 ‘부군’으로 합장되어 있다. 현행 국립묘지법에는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배우자 안장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강영석은 서훈이 취소되었지만 부인의 묘에 ‘부군’으로 합장되어 있다. 현행 국립묘지법에는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배우자 안장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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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석의 경우를 보면 서훈이 취소되더라도 허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영석은 서훈이 취소되었으나 묘비 번호를 유지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안장되어 있다. 강영석은 1990년에 애국장에 추서되었고, 1991년 1월 24일 사망한 뒤 1월 26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강영석보다 먼저 사망한 아내 신씨는 강영석이 안장될 때 배위로 합장되었다. 2008년에 신씨도 건국포장에 추서되면서 이후 '애국지사 강영석 신○○의 묘'로 비석 명칭이 변경되었다. 강영석은 1939년에 친일 월간지 <녹기>를 발간하고, 잡지에 친일 글 다수 게재한 사실이 밝혀져 2011년에 서훈이 취소되었다.

하지만, 비석 명칭만 '애국지사 신○○의 묘'에 '부군 강영석'으로 바꾸기만 했을 뿐 대전현충원 밖으로 이장하지 않았다. 현행 국립묘지법에는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배우자 안장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배우자인 '부군'으로 합장되었다.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의혹과 일제를 돕기 위한 밀정혐의 기록이 지난 2019년에 발견되었던 송세호(독립유공자1-159)도 부인 최 씨와 함께 애국지사 묘역에 합장되어 있다.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의혹과 일제를 돕기 위한 밀정혐의 기록이 지난 2019년에 발견되었던 송세호(독립유공자1-159)도 부인 최 씨와 함께 애국지사 묘역에 합장되어 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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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애국장이 추서됐다가 지난 2019년에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의혹과 일제를 돕기 위한 밀정혐의 기록이 발견된 송세호(독립유공자1-159)는 아직까지 서훈이 박탈되지 않았다. 하지만 송세호의 서훈이 박탈된다 하더라도 부인 최씨가 1990년에 애족장을 받아 '애국지사 최○○ 송세호의 묘'로 합장되어 있기 때문에, 강영식처럼 이장시킬 방법이 없다.

국립묘지법 개정에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배우자 안장에 대한 규정'을 포함시키는 등 세밀한 조치가 필요하다. 또 서훈 과정에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고, 서훈이 취소되었을 경우에는 즉각 이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독립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에 따라 독립유공자로 불린다.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 반대나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를 발한다.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이다.

여기서 건국훈장은 과거에는 중장(重章), 복장(複章), 단장(單章)의 3등급으로 나누어 수여하였다가 1990년에 '상훈법'이 개정되면서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의 5등급이 되었다. 건국포장과 대통령표창은 건국훈장 아래의 훈격에 해당한다. 2021년 8월 15일 기준으로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은 대한민국장 30(5)명, 대통령장 92(11)명, 독립장 823(35)명, 애국장 4444(4)명, 애족장 6076(13)명으로 1만1465(68)명이고, 건국포장 1422(4)명, 대통령표창 4045명을 합하면 총 1만6932(72)명이다(괄호는 외국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시민미디어마당 협동조합입니다.
태그:#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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