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한국 여자배구에 경사가 많았던 해였다. 한국 여자배구는 연초 쌍둥이 자매의 학원폭력사건이라는 대형악재가 있었음에도 불완전한 전력으로 출전했던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 터키 등 배구강국들을 꺾고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올림픽에서의 선전은 여자배구의 인기와 연결되며 2021년 10월에 개막한 V리그에서도 여자부는 시청률과 관중동원에서 남자부를 능가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고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배구여제' 김연경을 비롯한 도쿄올림픽 4강의 주역으로 활약한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대표팀을 이끌었던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폴란드 대표팀 감독)과의 재계약도 무산됐다. 여기에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면서 한창 열기를 더하던 V리그 2021-2022 시즌을 완주하지 못한 채 마무리된 것도 여자배구에는 큰 악재였다.

라바리니 감독 밑에서 코치로 활약한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감독 체제로 새출발을 하는 여자배구 대표팀은 오는 31일 개최되는 2022 발리볼 네이션스리그(아래 VNL)에 출전할 17명의 대표선수들을 선발했다. 고참선수들이 대거 제외되면서 평균나이 24세의 젊은 팀이 된 이번 대표팀에는 2000년대에 태어난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8명이나 포함돼 있어 VNL 대회에서 이들의 활약이 더욱 중요해졌다.

양효진-김수지 빠진 센터진, 전원 2000년대생 선발
 
 이주아는 지난 시즌 리그에서 가장 큰 성장폭을 보인 선수였다.

이주아는 지난 시즌 리그에서 가장 큰 성장폭을 보인 선수였다. ⓒ 한국배구연맹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작년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은 역시 김연경의 부재다. 2000년대 후반부터 10년 넘게 한국 여자배구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연경의 대표팀 은퇴는 대표팀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또 김연경 만큼이나 대표팀의 중앙을 책임졌던 두 센터 양효진(현대건설 힐스테이트)과 김수지(IBK기업은행 알토스)의 대표팀 은퇴도 곤잘레스호에게는 큰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곤잘레스 감독은 4명이 포함된 이번 VNL 대표팀 센터진을 모두 2000년대 생의 젊은 선수들로 채워 넣었다. 라바리니 감독이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장 정대영(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이나 김세영을 대표팀에 포함시켰던 것과 달리 곤잘레스 감독은 센터 포지션에서 가장 확실하게 세대교체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이제 한국여자배구의 중앙은 2000년대에 태어난 젊은 선수들이 책임져야 한다.

현대건설의 이다현(2001년생)은 2021-2022 시즌 풀타임 주전 첫 시즌이었음에도 양효진의 파트너로 완벽한 활약을 해줬다. 정규리그 블로킹(세트당 0.74개)과 속공(50%) 부문에서 나란히 2위에 오른 이다현은 지난 4월18일에 열린 V리그 시상식에서 양효진과 함께 센터 부문 베스트7에 선정됐다. 어린 시절부터 중앙공격수로 활약하며 센터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다현은 VNL에서도 유력한 주전후보로 꼽히는 선수다.

루키 시즌부터 꾸준히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리그 정상급 센터로 평가하기엔 2% 부족했던 이주아(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000년생)도 2021-2022 시즌을 통해 여자배구를 대표하는 센터로 도약했다. 특히 2020-2021 시즌 세트당 0.35개였던 블로킹이 2021-2022 시즌 세트당 0.72개(3위)로 크게 향상됐고 지난 시즌에 기록한 243득점 역시 데뷔 후 최고 기록이었다. 특히 이주아는 젊은 센터들 중에서 이동공격을 가장 잘 구사하는 선수로 꼽힌다.

'리틀 김연경'을 꿈꾸며 프로에 입성했다가 한 시즌 만에 센터로 변신한 정호영(KGC인삼공사, 2001년생)은 '리틀 양효진'을 노리며 센터 포지션으로는 처음으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190cm의 좋은 신장에 윙스파이커 출신으로 중앙에서 큰 공격도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박은진(인삼공사)을 제치고 깜짝 발탁된 최정민(기업은행, 2002년생)은 신장(179cm)은 다소 작지만 유사시에 김희진의 백업 역할도 해줄 수 있는 선수다.

김연경이 인정한 정지윤, 여자배구 미래 이끌까
 
 정지윤은 서브리시브만 안정되면 대표팀에서도 충분히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다.

정지윤은 서브리시브만 안정되면 대표팀에서도 충분히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다. ⓒ 한국배구연맹

 
곤잘레스 감독은 김연경이 빠진 윙스파이커 포지션에 7명의 선수를 선발했다. 물론 그중에는 박정아(도로공사)와 강소휘(GS칼텍스 KIXX), 황민경(현대건설)처럼 그동안 대표팀에서 익숙하게 봐오던 선수들도 꽤 많이 있다. 하지만 이소영(인삼공사)과 표승주(기업은행) 등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들 대신 2000년대에 태어난 어린 윙스파이커를 3명이나 선발해 세대교체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젊은 윙스파이커의 선두주자는 도쿄올림픽 막내이자 김연경으로부터 '차세대 한국 여자배구의 기둥'으로 지목 받은 정지윤(현대건설, 2001년생)이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윙스파이커로 활약하기 시작한 정지윤은 지난 시즌 43.68%의 성공률로 237득점을 올렸을 만큼 공격력은 이미 검증돼 있다. 리시브효율 26.41%에 머물렀던 수비만 좀 더 보강된다면 정지윤은 당장 대표팀의 왼쪽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지난 시즌 기대치에 비해 다소 부진했던 이소영이 대표팀에서 제외됐음에도 곤잘레스 감독은 인삼공사에서만 2명의 젊은 윙스파이커를 선발했다. 한 명은 35.13%의 공격성공률로 205득점을 기록하며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낸 박혜민(2000년생)이다. 사실 박혜민은 V리그에서도 파워가 아쉽다는 평가를 늘 받아왔지만 국제경기를 통해 경험을 쌓는다면 대표팀의 괜찮은 3옵션 윙스파이커로 성장할 수 있는 재목이다.

아무리 2020-2021 시즌 신인왕 출신이라 해도 소속팀에서조차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이선우(2002년생)가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을 때 많은 배구팬들은 의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많지 않았던 출전기회에서도 지난 시즌 39.84%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했던 과감한 공격력과 183cm의 좋은 신장 등은 이선우가 가진 확실한 장점이다.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지도를 받아 얼마나 성장할지 가장 기대되는 선수가 바로 이선우다. 

리베로 포지션에 노란(인삼공사)과 한다혜(GS칼텍스) 같은 20대 후반의 중견 선수들로 채워 넣은 곤잘레스 감독은 세터 자리에 베테랑 염혜선(인삼공사)과 함께 젊은 세터 박혜진(흥국생명, 2002년생)을 포함시켰다. 지난 시즌 김다솔 세터와 함께 번갈아 가며 경기에 나선 박혜진 세터는 아직 대표팀을 이끌기엔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박혜진에게는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대표팀 경험을 하는 것 자체가 큰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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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2022 VNL 2000년대생 이주아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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