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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들이 가지고 놀았다는 구슬
 악마들이 가지고 놀았다는 구슬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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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델리 워터스(Daly Waters)에서 이틀 밤 지낸 후 길을 떠난다. 이곳에서 다음 목적지 앨리스 스프링(Alice Springs)까지는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중간에 어디선가 쉬어야 한다. 지도를 보니 400km 정도 운전하면 제법 큰 동네가 있다. 테넌트 크릭(Tennant Creek)이라는 동네다.

고속도로(Stuart Hwy)를 따라 계속 남쪽으로 운전한다. 도로는 한가하다. 가끔 캐러밴을 가지고 여행하는 자동차가 보일 뿐이다. 도로 위를 달리는 기차(Road Train)라고 불리는 트럭이 트레일러를 길게 매달고 달리기도 한다. 승용차는 거의 보이지 않는 호주 내륙의 고속도로다.

고속도로를 오래 달렸다.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쉴 곳을 찾으며 운전하는데 레너 스프링(Renner Springs)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동네라기보다는 주유소와 야영장 하나 있는 휴게소다.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팔고 있다. 오지 고속도로에 있는 가게라 그런지 잠시 쉬어가는 사람으로 붐빈다.

가게에 들어서니 손님을 받는 직원이 나이 많은 동양 여자다. 말레이시아에서 왔다고 한다. 농담으로 말레이시아 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진담으로 받아들인다. 자기는 직원이기에 재량권이 없다고 한다.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생각보다 푸짐한 샌드위치를 가지고 와서는 내 손을 꼭 잡아준다. 동양 사람을 만나니 반가운 모양이다. 호주 오지에 삶의 터전을 잡은 동양 할머니, 함께 앉아 있으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다.

테넌트 크릭에 도착했다. 인구 3000명 정도 되는, 오지에서는 작은 동네가 아니다. 야영장을 찾아가니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가장 필요한 인터넷도 연결된다. 식료품을 살 수 있는 가게도 있다. 잠시 머물며 몸과 마음을 쉬기에는 더없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야영장 주인은 일주일 지내겠다는 나를 다시 한번 쳐다본다. 하루나 이틀 지내고 가는 손님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관광을 목적으로 떠나지 않았다. 색다른 장소에 나의 삶을 담가 보고 싶어 집을 떠난 것이다. 따라서 이곳저곳 구경거리를 찾아 다니며 바쁘게 여행하고 싶지 않다. 야영장에서 책을 읽거나 주위를 걸으며 지내는 한가로움도 나쁘지 않다.

다음 날 아침 천천히 일어나 여행안내소를 찾았다. 지금은 폐쇄된 금광이 있던 자리에 안내소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광산에서 쓰던 장비들이 널려 있다. 실내에는 이곳에서 채굴한 여러 종류의 돌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테넌트 크릭은 1930년도에 금광이 발견되어 이루어진 동네라고 한다.

관광안내소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한 호수(Mary Ann Lake)를 찾아 나섰다. 넓은 호수다. 주위로 산책로가 길게 늘어져 있다. 호수를 바라보며 산책로를 걷는다. 주변에는 돌이 널려 있다. 그런데 돌이 예사롭지 않다. 붉은색을 띠고 있다. 무게도 보통 돌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무겁다.

철분이 많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아무런 상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걸으면서 작은 돌멩이 두어 개를 주었다. 기념으로 가지고 갈 생각이다. 이곳에는 수없이 많은 돌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돌이다.
 
지금은 폐쇄된 금광이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폐쇄된 금광이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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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호수(Mary Ann Lake)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호수(Mary Ann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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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는 또 다른 관광지(The Pebbles)를 찾았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운전하여 큼지막한 안내판이 있는 입구에 도착했다. 페블(Pebbles)을 사전에서 찾으면 조약돌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돌은 조약돌이 아니다. 큼지막한 바위들이 모여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다. 동산 주위로는 바위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산책로를 따라 기묘한 바위들이 엉기어 있는 주변을 걷는다. 이곳에도 철분이 풍부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무거운 돌들이 흩어져 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바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원주민이 이곳을 신성한 곳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이한 바위 구경을 끝내고 운전하는데 텔레그라프 스테이션(Telegraph Station)이라는 팻말과 함께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호주 최북단 다윈(Darwin)에서 남쪽 끝에 있는 도시, 포트 오거스타(Port Augusta)까지 오래전에 통신선을 설치했다. 길이가 3000km 정도 되는 통신선이다. 따라서 그 당시 전선을 보수하고 유지하는 교신소가 11개 있었다고 한다.

직원들이 1872년 이곳에 정착해 교신소를 운영했다. 사람들이 살던 건물, 사무실, 창고 그리고 심지어는 도살장 건물까지 있다. 호주 소식을 런던까지 모르스 부호를 사용해 보내는데 7시간 걸렸다는 설명서가 눈길을 끈다. 그 당시 이곳은 황량한 들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천박한 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호주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연결된 전선을 관리하던 통신소
 호주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연결된 전선을 관리하던 통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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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다음 목적지 알리스 스프링까지는 500km 조금 더 되는 거리다. 하루에 갈만한 거리다. 그러나 가는 길에 '악마의 구슬(Devils Marvel)'이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관광지를 둘러보려면 어디선가 묵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관광지 가까운 곳에 야영장이 있다. 최근에 개장한 야영장이다. 이곳에서 묵을 생각으로 길을 떠난다.

가까운 곳이라 야영장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그러나 자리가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기 때문이다. 직원은 조금 더 내려가면 또 다른 야영장이 있다고 한다. 고속도로를 타고 10여 분 정도 운전해 오래된 야영장에 도착했다. 특이한 야영장이다. 외계인, 비행접시(UFO) 같은 조형물이 야영장 주위에 널려 있다.
 
외계인과 비행접시 등으로 치장한 야영장.
 외계인과 비행접시 등으로 치장한 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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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밴을 주차하고 '악마의 구슬'이라는 관광지를 찾았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기이한 바위들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하루 머물기 때문에 시간이 충분하다. 가장 긴 산책로를 선택해 천천히 걸으며 악마의 구슬이라 불리는 바윗덩어리들을 둘러본다.

악마의 칼로 잘랐을까, 큰 바위가 칼로 자른 듯 둘로 나뉘어 있다. 악마들은 큰 바위를 층층이 쌓아 놓기도 했다. 이곳에도 바위에 오르는 것을 금하고 있다. 원주민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악마들이 가지고 놀았다는 구슬
 악마들이 가지고 놀았다는 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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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게 외계인과 비행접시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야영장에 돌아왔다. 악마의 구슬이라는 관광지에 걸맞게 조성한 야영장이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다른 야영장이 생겨서인지 지금은 사람이 많이 찾는 것 같지 않다.

회오리바람이 오가는 야영장에서 하루를 끝낸다.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황량한 들판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원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기묘한 바위들이 머리에서 맴돈다. 원주민들은 이러한 바위들을 보며 신비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신성한 장소라 생각하며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똑똑하다는 현대인들은 이러한 생각을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현대인이 믿는 종교보다 미신이 어느 면에서는 더 낫지 않을까. 순박한 믿음으로 자연과 함께 지내지 않는가. 최소한 자연을 파괴하면서 부를 축적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함석헌 선생님 글이 생각난다. 동네에 서 있는 오래된 나무가 황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에 의해 찍혀 나갈 때, 마을에 남는 것은 주고받기와 시비와 깔고 앉음과 깔리움밖에 없다는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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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량한 호주 내륙
 동네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량한 호주 내륙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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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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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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