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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바라본 우도. 1842년(헌종 8년)에 사람이 살도록 조정에서 허가한 섬이다.
 배에서 바라본 우도. 1842년(헌종 8년)에 사람이 살도록 조정에서 허가한 섬이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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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출발에 앞서 여행의 일정을 짠다. 그러나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닌 한, 아무리 정교하게 짠다 해도 여정이 계획대로 굴러가기는 쉽지 않다. 여정은 단순히 이동시간의 집합이 아니라, 동행자를 비롯하여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와 교감의 총합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날부터 꼬인 제주 여행 계획

제주 여행은 첫날부터 좀 꼬였다. 성글게 짠 내 계획은 오전 10시에 제주에 도착하면 함덕해수욕장과 월정리 해변을 거쳐 성산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배로 우도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공항에서 짐을 찾아서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받아 출발할 때는 이미 11시를 한참 넘어 있었다. 시간은 이미 12시에 가까워졌으므로 함덕해수욕장의 오묘한 바닷물 빛을 흘려만 보고 서둘러 성산을 향해 출발해야 했다.

나는 아내에게 바꾼 일정을 알려주었다. 월정리는 건너뛴다. 성산에서 점심을 먹고 배를 탈 예정이었지만, 늦어서 안 되겠다. 점심은 우도에 가서 성게비빔밥으로 먹자. 아내는 선선히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성산항 여객터미널에서 1시 30분 배를 탈 수 있었다.

배는 15분 만에 천진항에 닿았고, 전기차 대여업체에서 청년 하나가 마중을 나왔다. 그의 승합차로 가게에 가서 전기차 1대를 받았다. 차라고 했지만, 사실은 바퀴 3개가 달린 오토바이에다 뚜껑을 덮은 '탈것'이다. 그는 매우 찬찬히, 그리고 상세하게 차의 운전 요령을 알려 주었다.
 
천진항 부두에 1993년에 건립한 우도 표지석. ‘우도’ 아래에 ‘영주동두(瀛州東頭)’라 새겨져 있다. 영주는 제주의 옛 이름이다.
 천진항 부두에 1993년에 건립한 우도 표지석. ‘우도’ 아래에 ‘영주동두(瀛州東頭)’라 새겨져 있다. 영주는 제주의 옛 이름이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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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브레이크와 가속기는 각각 왼쪽과 오른쪽 핸들에 달려 있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가속기는 오토바이 탈 때처럼 양쪽으로 돌리지 마라, 필요하면 앞으로 돌려서 가속하지, 브레이크와 가속기를 같이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바퀴가 세 개뿐이어서 차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속력을 내지 마라. 보험은 안 된다. 넘어지거나 사고가 나면 상상보다 훨씬 큰 비용을 물어내야 한다. 어쨌든 조심하라. 천천히 한번 앞으로 나아가 봐라. 

우도 일주를 위해 예약한 삼륜 전기차

30년 경력의 운전자는 그의 말을 제대로 새겨들었다. 그러나 브레이크와 가속기를 밟지 않고, 손으로 조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것도 두 개를 각각 따로 움직이는 공조는 더 말할 게 없다. 나는 차가 두어 번이나 와락 튀어 나가는 바람에 기겁했다. 출발에 알맞은 가속기 조절 값을 파악해서 그것부터 손에 익혀야 했다.

쓰지 않으면 곤란할 수 있다 해서 조그만 헬멧을 썼다. 좌석 폭이 좁아 헬멧을 쓴 아내를 뒷자리에 태우고 난 뒤에나는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오른손 가속기의 미세한 조절 감각을 익히며 왼쪽 해안선을 원망스럽게 노려보다가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길가에 차를 세우지 마라. 뒤따르는 미숙한 운전자가 들이받을 수 있다. 가능하면 길을 벗어난 공터 등에다 세워라... 나는 주의사항을 되새기는 동시에 운전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천천히 차를 몰아갔다. 내 차 같으면 여러 차례 세우고, 주변 풍경을 사진기에 담느라 아내의 지청구를 들었겠지만, 나는 주변 풍광 따위는 무시하고 줄곧 직진하되, 최대한 안전하게 차를 몰았다.
 
우리가 밥을 먹었던 해녀의 집 앞의 산호 해변, 서빈백사 해변으로 불리는 이곳을 우리는 지나쳤지만 기억에 전혀 없다.
 우리가 밥을 먹었던 해녀의 집 앞의 산호 해변, 서빈백사 해변으로 불리는 이곳을 우리는 지나쳤지만 기억에 전혀 없다.
ⓒ 비짓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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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 운전이 몸에 붙자, '산호사 해녀의 집' 근처에 차를 세우고 거기서 성게비빔밥을 먹었다. 오후 2시가 넘은 때, 워낙 시장했던지라 우리는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 다시 출발. 그리고 총거리 13km 남짓한 해안선 도로를 일주해 천진항으로 돌아왔을 땐 3시를 훌쩍 넘고 있었다.

우도 등대를 저만큼 올려다보며 천진항으로 이어지는 해변 길, 넘실거리는 보리밭 앞에서 차를 세웠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는 눈앞에서 철썩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한 바퀴 돈 거 맞지?"
"맞아요. 당신 금방 익숙해져서 차 잘 끌고 왔네. 나, 사실 우스워죽을 뻔했다오. 그 덩치에 잔뜩 긴장해서 차 몬다고……"
"사실은 말이야..."


전기차에 올라 처음 가속기를 당기다가 차가 내 뜻과 무관하게 와락 튀어 나가곤 했을 때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제주에서 렌터카를 받아 타고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차가 튀어 오를 듯 반응하며 멈추었고 아내가 당신 왜 이래, 나를 흘겨보았었다.
 
우도면 연평리의 망루 등대. 앞에 알록달록하게 칠한 전기차 세 대가 서 있다. 우도는 이런 전기차의 천지였다.
 우도면 연평리의 망루 등대. 앞에 알록달록하게 칠한 전기차 세 대가 서 있다. 우도는 이런 전기차의 천지였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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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해안선 도로를 일주하면서 만난 들판. 곳곳에 이런 현무암 돌로 담을 쌓은 밭들이 펼쳐져 있었다.
 우도 해안선 도로를 일주하면서 만난 들판. 곳곳에 이런 현무암 돌로 담을 쌓은 밭들이 펼쳐져 있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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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도로에서 만난 돌담과 밭. 해변을 따라 들어선 펜션과 각종 가게 사이에 이런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일주도로에서 만난 돌담과 밭. 해변을 따라 들어선 펜션과 각종 가게 사이에 이런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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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빌린 차의 브레이크는 훨씬 예민했던 모양이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깊은 낭패감에 빠졌다. '이런 상태로 사흘 동안 운전을 계속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고, 벌판에 혼자 버려진 듯한 아득한 느낌에 내몰렸다. 그것은 지극히 짧은 순간의 감정이었지만, 내 이성과 판단력을 꽁꽁 잠가 버린 듯했다.

물론, 그것은 브레이크에 가하는 힘의 크기를 줄이면서 간단히 해결되었다. 나는 다만 감각으로 힘을 빼고 브레이크 페달을 살며시 밟아주었고, 차는 아주 선선히 속력을 줄이거나 부드럽게 멈추어 주었다. 낭패는 썩 간단히 해결되었고, 이후 사흘 동안의 운전에서 나는 그 감각을 잊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30년 경력에 왜 전기차 운전이 두려웠을까

그러나, 전기차 가속기의 과민 반응에 당황하면서 느낀 절망감은 렌터카 브레이크 때문에 빠졌던 낭패감보다 훨씬 생생하고 직접적이었다. 나는 차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차가 뒤집히거나, 다른 차량이나 사람에게 돌진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떠올리면서 마음속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어느 순간엔가는 마음이 잔뜩 위축되어 전기차 대여료 4만 원을 포기하고, 버스 투어로 갈아타 버릴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것은 일주 출발에 앞서 해안선을 노려보던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 찰나의 상념이었을 뿐, 나는 그 상념의 어떤 부분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나는 아내를 한번 뒤돌아본 뒤, 최대한 조심스럽게 가속기를 조절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두어 차례, 가속기를 아주 미세하게 조정해 보니 감이 잡혔다. 렌터카의 브레이크에 익숙해지듯 나는 이내 그 황당한 전기차의 메커니즘에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격려를 귓바퀴로 흘리며 우도 해안선 도로를 일주했지만,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체 나는 무엇이 그리 부담스럽고 두려웠던 것일까.

"솔직히 전기차 포기하고 버스를 탈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어. 어쩐지 자신도 없고, 너무 절망스러워서 말이야... 나 진짜 늙었나 봐."

"당신 너무 웃겼어. 그래도 난 당신이 할 줄 알았어요. 30년 넘게 운전했잖우? 그래서 뒤에 있어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니까."


그리고 아내는 깔깔 웃었다. 아마 아내는 갑자기 자신감을 잃고 허둥대는 남편에게 말 못 할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지 모른다. 낭패든 절망이든 그것은 우리가 불현듯 맞닥뜨린 자신감의 상실, 노화 현상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했다. 지극히 사소한 도전 앞에서 지레 겁을 먹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그것을 아주 가볍게 극복해 버렸다.
 
우도의 포구 두 군데 중 하나인 하우목동항. 연간 100만명이 방문하는 우도로 들어가는 관문 중 하나다.
 우도의 포구 두 군데 중 하나인 하우목동항. 연간 100만명이 방문하는 우도로 들어가는 관문 중 하나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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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도면 조일리에 있는 해식 동굴인 동안경굴(東岸鯨窟). 검멀레 해수욕장에 있는 우도팔경(牛島八景) 중 하나다.
  우도면 조일리에 있는 해식 동굴인 동안경굴(東岸鯨窟). 검멀레 해수욕장에 있는 우도팔경(牛島八景) 중 하나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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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몇 차례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긴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따위는 전혀 따지지 않았다. 내겐 무사히 일주를 마치는 일이 유일무이한 목표였다. 만약 어디선가 문제가 생긴다면, 관광이고 뭐고 말짱 헛일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무사 일주와 바꾼 모든 관광 포인트

점심을 먹었던 해녀의 집 앞 바다가 해양 조류 중 하나인 홍조가 해안으로 쓸려와 퇴적된, 홍조단괴 산호 해변이라는 걸 우리는 까맣게 몰랐다. 거기에 하얀 모래 해변, 즉 서빈백사(西濱白沙) 해변이 있었는지 어땠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도 팔경은커녕 우도 관광의 포인트를 모두 생략해 버렸다.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내가 찍은 사진 속의 공간이 하우목동항이고, 봉수대와 망루 등대며, 검멀레 해수욕장의 동안경굴(東岸鯨窟)이라는 걸 뒤늦게 확인했다. 우도 지도에는 우리가 지나온 도로에 비양도 입구가 표시되어 있었지만, 나는 그걸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다만 무사히 섬을 한 바퀴 도는 일에만 집중했으니, 어쨌든 나는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우리가 타고 들어갔다가 나온 우도 도항선이 천진항에 들어와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타고 들어갔다가 나온 우도 도항선이 천진항에 들어와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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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로 돌아와 나는 받았던 그대로 전기차를 업체에 반납했다. 업체의 청년은 우리를 바로 천진항 부두로 바래다 주었고 우리는 출발 대기 중인 배에 올라 '섬 속의 섬 우도'를 떠났다. 우리는 배 위에서 멀어지는 섬을 무심히 바라보았으나 엇갈린 우도 관광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었다.

익숙한 노년의 '관습'을 넘어

이상이 우도를 다녀오긴 했지만, 우도의 풍광에 대해서 할 얘기가 별로 없는 이유다. 우리는 우도를 관광한 것이라기보다는 전기차로 해안선 도로를 무사히 일주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우도 여행이 실패한 여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도 여행으로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노년의 민낯을 만난 건지 모른다. 예상치 않은 하찮은 도전에 쉬 주저앉고 마는 것은 익숙한 노년의 관습일까. 그러나 내가 맞닥뜨린 위기는 지레 겁먹어 스스로 만들어낸 '가짜' 위기였고, 잠깐 절망하다가 정신을 수습한 나는 가볍게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우리의 노화를 부정하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단순한 도전 앞에서 위기를 느껴 망설이고, 뒷걸음치면서 되레 무사히 '우도 일주'를 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더는 젊지 않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부리는 객기가 뜻밖의 만용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훌륭한 경계(警戒)였다.

쉽게 절망하지 말 것, 해답은 언제나 일상의 기본을 지키는 데 있으리니. 우도 여행은 우리에게 장년과 노년의 경계(境界), 그 쓸쓸한 과도기를 통과하는 법을 깨우쳐 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낯선 섬에 익숙한 관습을 부려두고 도전 앞에 의연히 서서 그것을 감당하는 법을 확인하고 우도를 떠나온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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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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