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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모처럼 글 쓰는 분들과 대면 모임을 가졌습니다. 글을 쓰게 된 이유부터 시작해서 글쓰기 루틴, 글쓰기 관련해서 최근 하고 있는 일들을 공유하는 말의 홍수 속에서 유난히 제 마음에 남은 게 있었어요. '내가 쓴 글이 점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괜찮은 글쓰기 수업을 찾고 있다는 말도 했지요.

저는 '갸우뚱' 했습니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한 글이 저에게는 새롭고, 재밌고, 의미 있게 읽혔으니까요. 자기 만족도는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른 성장을 위한 시간을 지나는 중일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너무 깊이 고민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때 갑자기 생각난 문장이 있어서 제가 말했어요. "내 안의 검열관 말을 너무 듣지 마세요." 물론 제가 만든 말은 아닙니다. 마침 읽고 있었던 책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를 쓴 작가가 한 말이었지요. 오늘은 이 책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방황의 시간'을 넘어서 쓰는 법  
 
대니 샤피로 지음 '계속 쓰기'(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지음 "계속 쓰기"(나의 단어로)
ⓒ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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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대니 샤피로는 62년생으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유대교 율법을 엄격하게 따르는 부모 밑에서 숨어서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방황해야 했대요. 하지만 결국 작가가 되어 다섯 권의 소설과 다섯 권의 회고록을 내고 대학에서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글쓰기와 관련한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사실 소설가의 글쓰기 책은 어쩐지 잘 공감이 되지 않았어요. 제가 소설 쓰기에 대한 욕망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쓰라고 보는 책'에 소개한 것은 작가가 말한 '방황의 시간' 때문입니다.

작가가 많은 방황의 시간을 거쳐 첫 소설을 쓰기까지 그리고 이후 작가로서의 삶을 통해 건져 올린 사유들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글을 쓰는 동안 반복되는 고민이나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히 잡아주고 싶은 작가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점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내 안의 검열관'이라는 말도 그랬습니다.

내 안의 검열관은 이런 거예요. 글을 쓸 때 듣게 되는 "멍청하군, 시간 낭비야, 정말 그걸 빼도 된다고 생각해? 어리석은 생각이야, 너무 따분해" 하는 내면의 소리들이요. '내 글이 점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분은 어쩌면 자신에게 다소 엄격한 검열관을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검열관과 공생하는 방법에 대해 작가는 말합니다. 검열관에게 대들지 말라고, 그냥 알아봐 주라고요. 공존을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안녕, 또 왔네? 넌 너대로 떠들어, 난 계속 쓰던 것을 쓸게. 우린 다음에 이야기하자" 이러고 그냥 쓰라고 합니다. 어떤가요, 이 쿨내 진동하는 작가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해지지 않나요?

작가가 말하는 '인생의 벼룩들'이란 표현도 재밌었습니다. 이게 뭘까요? 우리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방해가 되는 여러 행동들을 말해요. 가령 전화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일, 다른 사람 카톡 프로필을 훑게 되는 일, 이메일을 확인하려다가 쇼핑을 하게 된다든가, 쌓여 있는 빨랫감을 보게 된다든가 하는 것들이요. 

작가는 이런 벼룩들은 '우리를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대신 밖으로 끌어내기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걸 몰라서 안 하나요. 알면서도 벼룩에 물리고야 마는 거죠. 작가가 이 난관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죠. 글을 쓸 때 산만해지고, 지루하고 외로워지는 순간을요. 그럴 때 작가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작가의 마음속 언저리 무언가가 자꾸 괴롭힌다. 그리고 갑자기 기억해낸다. 지금이 자신의 한 시간(혹은 두 시간, 세 시간)이라는 것을. 이게 작가의 습관이며 일의 규칙이다. 발레 바 앞에 선 무용수를 생각해보자. 플리에, 엘르베, 바트망 탕 뒤. 실천과 예술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걸 알기에 무용수는 실천하고 있다. 실천이 곧 예술이다."

쓰기를 실천하려고 자리에 앉는다고 글이 막 써지는 건 아닐 겁니다. 저도 글을 쓰기 전까지는 오래 생각하지만 글을 쓰려고 오래 앉아 있는 편은 아닌데요. 쓰려고 마음먹고 앉은 순간에는 되도록 빨리 쓰는 편이죠. 직장에 다니면서 짬짬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시간을 운영해야 해서 생긴 습관입니다. 글을 쓴다고 앉아 있는 시간 자체를 기다리지 못해요. 그런다고 글이 써질까 싶었죠.

저 같은 사람들에게 작가는 이렇게 묻습니다. 마라토너가 달리고 싶은 기분이 될 때까지 기다리냐고요. 요가 수련자가 매트를 펼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냐고요. 작가는 그저 몇 년째 해 오던 일들을 계속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고요. 만약 작가가 글을 쓰고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면 그의 이름이 박힌 소책자 하나가 겨우 나왔을 거라면서요.

생각을 앉아서 기다리기도 하는구나, 그런 시간도 필요하구나 하는 걸 새롭게 깨달았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저에게도 그런 시간이 분명 있었습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쓰는 시간. 쓰는 시간이라 정해두었기 때문에 뭐라도 썼던 시간이요.

바쁠 때는 생각이 차오르면 쓰기도 하지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저 역시 자세를 잡고 앉아 생각을 기다린 적도 있었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작가의 말대로 제 이름으로 된 소책자 하나가 겨우 나왔을 뿐이겠지요.

작가는 책에서 끊임없이 실천을 강조합니다. '인생은 귀중한 글쓰기 시간을 가지라며 멈추는 법이 없으니', 인터넷의 꼬드김에 저항해야 하고 딴 걸 하고 싶은 마음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말을 빌어 "시도했고, 실패했다. 상관없다. 다시 하기. 다시 실패하기. 더 잘 실패하기"를 강조합니다. 실패할수록 더 낫게 실패하게 되니까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자세를 바로잡고,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라고요.

100%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에 대해 말한 것이지만 꼭 글쓰기에만 한정된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았어요.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 나온 배우 설인아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설 배우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장면이 나왔는데요.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계속 넘어지면서도 연습을 놓지 않았는데 그때 한 인터뷰를 흘려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민한 제 '글귀'(방송이나 영화 등을 보면서 글감(혹은 영감)을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귀를 뜻함 - 기자말)가 잡아낸 말은 "처음 해보는 동작들은 넘어진다고 미리 인정하면 편해요. 100% 넘어져요"라는 거였어요. 그렇게 넘어지면서 기술에 성공한 설 배우가 "아무도 모르겠죠? 이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라고 말했을 때 저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어요. 그 기분, 저도 조금 알 것 같았거든요.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어요. 잘 안 써지는 날이면, 내 글은 어쩐지 뭔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날이면 '당연한 거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잘 써지는 날이 오면, 정말 이게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은 날이 오면, 그날의 행복은 온전히 나만 아는 걸 겁니다. 짜릿하죠.

그것이 비록 찰나의 행복일지라도, 그것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계속 쓰는 것뿐일 겁니다. 넘어져도 다시 스케이트보드에 오르는 것처럼, 쓰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많아도 빈 화면을 채워 쓸 수밖에 없어요. 불안함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견디고 쓰면서 부디 '나만 아는 행복'을 꼭 한번 느껴보시길요. 마지막은 작가의 글로 맺겠습니다.
 
"모든 소설은 실패한다. 완벽 그 자체도 실패일 수 있다. 더 낫게 실패할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다. 예술가의 일이란 역경이나 불확실성을 포용하고 이를 예리하게 다듬으며 연마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려고 한다. 글을 쓰면서 살아온 인생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일은 그저 묵묵히 계속 작업해온 결과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 실렸습니다.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지은이), 한유주 (옮긴이), 마티(2022)


태그:#계속 쓰기, #대니 샤피로, #쓰라고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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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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