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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수당'을 주겠다는 6.1 지방선거 한 후보자 공약을 보고 잠깐 마음이 동했다. '월 10만 원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고 소득 분위로 지급 대상을 한정한다'는 내용을 보고 급실망했지만, 어쨌든 잠깐이나마 눈이 반짝했다.

10만 원이라는 금액 산출은 통계청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고려했다는데, 이에 동의할 가사노동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소득 분위로 지급을 한정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고소득 여성이거나 배우자의 소득이 높은 가정에선 여성이 가사노동을 안 한다고 간주하는 것일까?

이럴 바에야 차라리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가사 수당'을 주겠다는 선거 공약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지라, '그림자 노동'인 가사노동을 가시화 했다는 면에서 유의미하달 수 있겠다.

마케팅이건 의견 청취건, 목적이 다른 각종 설문에 응하다 보면,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항목에서 번번이 기분이 상하고 만다. '주부'라 통칭되는 나의 정체성은 직업인가, 아닌가, 매번 추궁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질문에 해당된 답란에 '주부'라 명시되어 있을 때도 있지만, 직접 입력하라는 기타 란에 싸잡혀 있을 때도 있다. 사람이 태어나 홀로 설 때까지, 단 한 사람도 돌봄을 받지 않고 존립할 수 없지만, 돌봄의 가치는 간단히 무시당한다. 일터로 나가거나 돌아와, 의식주에 대한 어떤 걱정 없이 쉬고 있다면, 누군가의 수고에 철저히 기대고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무임 노동인 가사노동의 주 주체인 여성은 결혼과 출산, 수유와 양육을 경유하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참으로 많은 난관에 봉착한다. 결혼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하는 가사노동의 분담, 여성 혼자 감내해야 하는 출산과 양육의 고됨은, 막대기 하나로 간당간당 버티고 있는 방전 직전의 배터리 상태다.

가사 노동은 물론 각종 플랫폼 노동에서 재테크까지 수완을 발휘해야 하는 주부는, 육체노동에 감정 노동까지 수행하지만 종종 '집에서 논다'는 소리를 듣는다. 오래전 남편이 한 친구와 통화하면서, "니 와이프는 아직도 집에서 노냐"는 소리에 억장이 무너졌다. 전화기 너머의 그 무례한 인사가 들을 정도의 큰 소리로, "나 안 놀아요"라고 쏘아붙였지만, 한참을 지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죽도록 일하고도 '논다'는 소리를 듣는 주부라는 지위
 
<여기 노동이 있다> 겉표지.
 <여기 노동이 있다> 겉표지.
ⓒ 주부 그림자노동 소책자 사업 기획단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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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라면 한두 번쯤은 이렇게 무례하게 던져지는 모욕 멘트의 세례를 받아봤을 것이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무화시키는 인식이 고스란히 투영된 사회 현상이니 말이다. 이런 불평등한 사회적 인식을 온몸으로 관통한 19명 여성의 인터뷰 기록 <여기 노동이 있다>(''주부' 그림자노동 소책자 사업 기획단 지음)를 읽었다. 

강한 공감과 연대감을 느꼈다. 특히, 터울이 짧은 아이들 셋을 키우며 4인 1조("업고 잡고 (유아차) 끌고")로 살았다는 박미진씨, 암 투병을 하면서도 셀프 간병은 물론 가사노동에서도 놓여나지 못한 김수연씨, 처음 해보는 육아가 생경해 "첫째를 낳았는데 이쁜 게 아니라 무서웠다"는 지승연씨의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모두 타인의 경험이 아니었다.

이들의 이야기처럼, 가사노동의 고단함, 허무함, 무가치함에 대한 토로는 사실 새로울 게 없다. 맘 카페 등 인터넷 공간에서도 마주할 수 있고, 비슷한 시기 출산과 양육을 겪은 친구나 동료들과도 자주 쏟아낸 넋두리이기 때문이다. 토로와 넋두리는 일회성이라도 발화를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순기능이 있기에 그 자체로 무의미하지는 않다. 하지만 돌아서고 나면, 넋두리를 한들 내 가사노동이 없어지겠나 싶어, 적잖은 허무함에 싸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여기 노동이 있다>는 한번 내뱉고 마는 넋두리의 한계를 성큼 넘어서고 있다. 인터뷰 모음집인 만큼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인데, 고르고 골랐을 인터뷰어의 질문들이 이 한계를 극복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언뜻 특별할 것도 없는 질문이지만, 인터뷰이로 하여금 삶의 갈피갈피에 묻어두었던 상황들을 적재적소에 떠올리게 한다.

이를 통해 성찰하게 된 상황들은 의미 부여를 통해 재구성되고, 그때 이런 지원이나 보조가 있었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를 숙고하게 한다.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슈퍼우먼 방지법'을 만들 때 그랬다고 한다. 법안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의구심에, 고민할 게 뭐 있나, 해봤으니까 아는 거고, 아니까 만들 수 있는 거지, 라고 해소시켰다고 한다. 직관적으로 법안이 도출될 수 있었던 것은 경험을 통한 통찰에 힘입었기 때문이다. 남의 다리 긁는 뜨악한 법 말고, 현실적으로 내 삶을 바꿀 법 말이다.

결혼과 출산 후 비자발적으로 '경단녀'가 되고 전업주부가 되었던 불평등의 최전선에 있던 19명의 여성들도 그렇지 않았겠는가. 현장의 경험을 밑절미 삼아 이들이 내민 정책 제안은 이랬다.

"내 노동은 대체 얼마인가", "돌봄 수당이든 주부 수당이든" 지급해야 한다. 산후 도우미 제도가 산모에게 정말 쓸모 있으려면, 이들을 보다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체계적 돌봄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부업을 반찬값이나 버는 것으로 생각하는 인식은 "우리 세대로 끝내게" 사회적 인식을 뜯어고쳐야 한다,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들은 직장에서 일찍 귀가시키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양질의 일이 많아져야 한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선택이 아닌 의무로 만들어야 한다, 장애자녀가 있는 부모에게 국가가 노후 보장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쉬지 않고 돌봄을 했지만 정작 자신의 투병은 셀프 돌봄"을 하지 않도록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 등등, 양육과 돌봄, 가사에 시달리는 모두의 귀에 쏙쏙 박히는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제안들이다. 이들을 정교히 다듬어 정책화 한다면, 양육과 가사의 무거운 짐이 훨씬 가벼워지지 않겠는가.

영국 오토노미 싱크탱크의 두 연구자가 쓴 <오버타임>은 적게 일함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인데, 이 중 적지 않은 분량을 '여성의 시간은 더 빨리 흘러 간다'의 챕터에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남성의 커리어 패턴에 맞춰 남성들에 의해 확립된" 직장 시스템이 여성들의 직장 노동과 가사노동을 훨씬 불안정하고 불평등하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국 통계청 결과를 인용하며, 자녀 돌봄의 74%를 여성이 담당하고 있으며 여성의 60%가 남성보다 더 많은 부불(不拂)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회사에서는 가정이 없는 것처럼, 집에서는 직장을 안 다니는 것처럼"

이런 불평등한 현실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여가부의 2021 양성평등 실태조사에 의하면,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남성의 2.5배 이상인 현실은 5년 전 실태조사 때와 달라진 게 없다. 팬데믹으로 여성들의 돌봄이 더욱 가중화된 영향도 있을 테지만, "회사에서는 가정이 없는 것처럼, 집에서는 직장을 안 다니는 것처럼" 살기를 바라는 고착된 성 불평등한 인식이 여전히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드러낸다.

<여기, 노동이 있다>는 "성별 임금 격차를 없애고 법정근로시간을 주 32시간까지 단축한다면 성 평등한 돌봄 사회로 가는 지름길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진보당원들은 전문가들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삶으로 부딪치고 있는 19명의 여성들을 찾아 나섰다. 성 불평등한 삶의 최전선에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의 제안을 통해 법안을 도출하려고 노력했다. 매우 실효적이고 유의미한 방향이다.

성별 임금격차를 없애야 하는 이들의 원론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법정근로시간 단축이 가사노동의 재분배를 이루어낼지에는 물음표가 생긴다. 동일 노동에도 남성보다 30%를 덜 받는 불공정한 임금과 노동 환경에 처한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 시장의 여성들에게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임금 삭감이 감내할 만한 가치일지, 그만큼 절실한 의제일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한 이들의 삶을 지원하고 개선할 정치적 보완이 함께 병행되어야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어내지 않을까.

6.1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지역민의 마음을 잡으려고 선심 쓰듯 쏟아지는 공약은 온통 나라를 공사판으로 뒤덮고 있다. 지역에 공항이 생기고 철도가 깔리는 것만이 삶을 바꾼다는 듯이 말이다. 비행기는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삶의 구석구석을 돌보는 돌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소수의 이용객을 위한 공약보다는 모든 이를 보살피는 지역 맞춤형 돌봄 정책이 더 시급할 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삶을 더 안전하고 윤택하게 할 수 있다.

가사노동의 가시화도 그중 하나다. 또한 가사(돌봄) 노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각종 돌봄도 더욱 정교하게 구상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모두의 삶을 보전하고 유지시키는 돌봄에, 저임금 불안정 노동 환경에서도 묵묵히 현장을 지켜온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모든 후보는 돌봄 현장으로 가, 돌봄 노동의 생생한 현실을 보고 듣고 마땅한 돌봄 정책을 내놓길 바란다. 지역을 살리는 건 공사판이 아니라 돌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시


여기, 노동이 있다 - ‘주부’ 그림자노동 이어말하기

‘주부’ 그림자노동 소책자 사업 기획단 (지은이), 좋은땅(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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