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 스틸컷

<괴이> 스틸컷 ⓒ 티빙

 
영화 <부산행> <염력> <반도>에 이어 최근 <방법: 재차의>, 그리고 tvN 드라마 <방법>, 넷플릭스 <지옥>, 티빙 <돼지의 왕>에 이르기까지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집필하거나, 연출한 작품들이다. 이젠 '연상호 월드' 혹은 '연니버스'라는 고유명사가 등장할 정도로 초월적 세계관과 그로 인해 혼돈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하나의 고유한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 4월 29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는 그러한 연상호 감독 고유의 세계관에 기반한 또 하나의 시리즈이다. 연상호 감독이 각본에 참여하고 장건재 감독이 연출한 <괴이>는 이른바 '연니버스'의 전형성을 그대로 드러냄과 동시에, 연상호월드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귀불, 봉인이 풀리다

'발견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괴이>의 포스터는 말한다. 천보산의 절터에 오래 전 묻힌 불상의 머리가 발견되었다. 거기에 관광산업이라는 세속의 욕망이 곁들여진다. 진양군수 권종수(박호산 분)는 이를 파내서 사람들을 불러모을 관광상품으로 만드려고 한다.

하지만 스님들은 이에 반대한다. 그 불상이 '귀불'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악귀가 들린 이 불상은 티베트어로 씌여진 가리개로 봉인이 되어 묻혀있었다. 그 봉인이 풀리는 순간 세상에는 재앙이 시작된다고 말하지만, 스님들의 반대가 관광산업의 열망을 가라앉힐 수 없다.

예정대로 진행된 출토작업, 귀불의 눈을 가렸던 가리개를 치우자 그 눈을 마주친 인부로 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오래전 자신과 어머니를 학대했던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 자신을 구타한다고 생각한 순박한 청년이었던 인부는 결국 아버지로 오인하여 술집 주인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어깨뼈가 튕겨져 나올 정도로 용을 쓰며 폭주한다. 

게다가 귀불이 출토되자 진양군에는 검은 비가 내리고 그 비로 인해 농작물의 피해를 본 사람들이 군청에 모인다. 그리고 군청 한 켠에 마련된 귀불을 목격하게 된 사람들은 저마다의 지옥 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한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처절한 폭력의 레이스를 벌인다. 

그것이 좀비였든 혹은 지옥의 사자였든, 그리고 귀불이었든 '연상호 월드'에서는 다짜고짜 지옥과 같은 상황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그 자신이 지옥의 불쏘시개가 된다. 가장 평범한 갑남을녀가 귀불의 잿밥이 되어 서로를 해친다. 

차별성인가 한계인가 

그리고 이런 초자연적 혹은 초현실적인 현실의 지옥도를 배양하는 건 부조리한 인간의 권력이거나, 그 권력에 편승한 인간들이다. 영화 <부산행>에서 김의성이 분했던 용식은 귀불을 파내 관광 산업의 재미를 보려는 진양군수 권종수(박호산 분)가 되어 돌아온다. 그들은 자신의 사적 욕망을 공적인 권위에 기대 풀어내고 그로 인해 초현실적인 파멸의 방아쇠를 당긴다. 군수라는 이름으로 큰소리를 뻥뻥 치다가, 자신의 수하조차 필요하다면 기꺼이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비겁한 상사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한참 어린 청년 앞에서도 기꺼이 비굴함을 감내하는 가장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열한 인간은 권력이나 권위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지옥으로 내몬다. 

<괴이>에서 이전 연상호 월드의 작품들과 차별화 된 점은 강력해진 폭력성이다. 주인공보다 더 도드라진 곽용주(곽동연 분)에 의해 대표되는 무자비한 폭력이다. 이제 막 교도소에서 출소한 용주의 폭력성은 더욱 증폭되었을 뿐이다. 자신과 갈등을 일으켰던 한도경(남다름 분)을 마구잡이로 때리는 것부터 시작된 그의 폭력성은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지옥도 안에서 외려 쾌재를 부른다.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검은비를 맞은 사람들과 귀불의 눈을 본 사람들을 앞장 서서 죽이기 시작한다. 사람을 죽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게 지지부진 했던 그의 삶에 유일한 즐거움인 양, 결국 그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 폭력의 질주는 그치지 않는다. 

곽용주의 가학적 폭력에 사람들은 고개를 조아린다. 그리고 어느새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황에서 곽용주가 앞세운 힘의 논리를 따른다. 피가 튀기도록 때리고, 찌르고. 무작정 나타나 사람들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지옥> 속 죽음의 사자들처럼, 그 어떤 개연성도 없이 진양군에 지옥을 선사한 귀불의 공포를 설득할 것은 보다 잔인한 설정 밖에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귀불의 등장 이후, 진양군청에 모인 사람들의 집단적 히스테리는 누가 더 잔인하게 피의 카니발을 벌이는가 하는 질주이다. 

가족만이 구원이다? 

개연성 없는 초현실적 공포, 그리고 거기에 제물이 된 사람들이 벌이는 폭력과 피의 향연. 그리고 <부산행> 이래로 연상호 식 드라마의 중심은 언제나 가족애다. 유튜브 채널 '월간 괴담'을 운영하는 정기훈(구교환 분)과 고고학자 이수진(신현빈 분)은 티베트어를 해석할 수 있는 문양 해석 전문가들이다. 또한 이들 부부는 얼마 전 잃은 어린 딸로 인해 서로에 대한 짙은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다. <괴이>는 초현실적인 현상으로 인한 사람들이 벌이는 폭력에 더해, 정기훈-이수진 부부의 트라우마를 귀불에 대한 제압 과정을 통해 해소해 나간다. 거기에 또다른 한 축은 파출소 소장이자 한도경의 엄마인 한석희(김지영 분)의 모성애이다.

정기훈과 한석희는 아내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진양군청을 향한다. 부산행>의 장점이자 단점이 신파였듯, 결국은 <지옥>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박정민 원진아 부부의 자식을 향한 살신성인이었듯, <괴이> 역시 정기훈과 한석희의 가족애를 통해 드라마를 끌어간다. 

부부였든 아는 사람이었든 부하 직원이었든 상관없이 이성을 잃고 칼부림을 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상황에서 정기훈과 한석희의 몸을 던지는 가족애는 당연히 흑과 백처럼 대비를 만들어낸다. 고고학자거나, 파출소장이라는 그들의 직분도 가족애 앞에서 유명무실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넘치는 사람들의 폭력적 신들림이 밑도 끝도 없는 과한 폭력성으로 인해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듯 정기훈과 한석희의 가족애는 상투적이다. 또한 곽용주와 한도경의 우정인지, 사랑인지 미묘한 감정선도 맥락을 알 수 없다. <괴이>는 연니버스 체인점의 메뉴얼을 다 갖추었지만 어쩐지 소스는 과하고, 재료는 설익은 듯 느껴진다. 

그런 가운데 더욱 아쉬운 것은 여성 캐릭터들이다. 용주 엄마(김주령 분)는 <오징어 게임>보다 더욱 소모적인 캐릭터로 사라진다. 고고학자 이수진 역시 아이를 잃은 상실감으로 내내 전전긍긍 한다. 문양 해석학자로서의 역할은 '장식적'이다. 파출소장 한석희는 제 아무리 파출소장이라고 해도 부하 경찰에게 반말로 일관하는 태도는 한석희라는 캐릭터의 미덕을 상실케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5252-jh.tistory.com/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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