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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편집자말]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 최백규

나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일 것이다

꽃가지 꺾어 창백한 입술에 수분하면 교실을 뒤덮는 꽃
꺼지라고 뺨 때리고 미안하다며 멀리 계절을 던질 때
외로운 날씨 위로 떨어져 지금껏 펑펑 우는 나무들
천천히 지구가 돌고 오늘은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단 한번 사랑한 적 있지만 다시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너의 종교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몇 평의 바닷가와 마지막 축제를 되감을 때마다
나는 모든 것에게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다

누군가 학교에 불이 났다고 외칠 땐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있었다
운명이 정말 예뻐서 서로의 벚꽃을 떨어뜨린다

저물어가는 여름밤이자 안녕이었다, 울지 않을 것이다

-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창비, 2022, 30쪽


시는 상징입니다. 상징, 국어사전에서 '상징'의 의미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물의 의미나 특징을 직접 드러내지 아니하고 다른 사물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수법이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직접 드러내지 아니하고'와 '다른 사물에 비유하여' 입니다.

시에는 시인이 얘기하고 싶은 어떤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 모호한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것과 모호한 것은 그 개념적인 거리가 멀어서, 어떻게 이 두 가지가 같은 위치에 놓을 수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의 심상(心像)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구상'과 함께 '비구상(추상)'도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감정은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모호합니다. 모호한 감정을 시어로 표현했을 때, 모호한 문장으로 쓰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시의 제목인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라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가 동일하게 느낄 수 있을까요. 다인다색(多人多色)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과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지점에서 공통분모와 같은 보편성과 만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감정이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는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해석'이 아니라 '감정'을 따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최백규 시인의 시집
 최백규 시인의 시집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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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에서 화자는 '나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일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문장은 저에게 반어적인 의미로도 읽힙니다. 나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이겠지만, 만약 번역할 수 없다면 어떤 여름이나 계절과 만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번역할 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번역할 수 있는 저 뜨거운 여름으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비슷한 얘기 하나를 해 보겠습니다. 시인의 시 '여름의 먼 곳'에서 화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오래된 마음은 장마에 가깝다'라고. 왜 오래된 마음이 장마에 가까울까요. 오래된 마음은 눈물을 만들고 눈물은 마치 장마처럼 쏟아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1연에서 화자가 풀어놓은 감정은 '외로운 날씨 위로 떨어져 지금껏 펑펑 우는 나무들 / 천천히 지구가 돌고 오늘은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라는 2연의 문장과 만나게 됩니다. 또한 3연에서는 '나는 모든 것에게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다'라고 얘기합니다. 만남보다는 헤어짐을 웃음보다는 울음을 얘기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화자의 발화는 '파편적'입니다. 파편적인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시를 '어려운 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파편이 형태를 가진 물체에서 출발하듯, 조각난 파편을 공들여 붙이면 어떤 물체와 만나게 됩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부연하고 싶습니다. 어떤 시인도 파편을 붙이듯, 해석을 목적으로 시를 쓰지 않는다고. 물론 독자가 원한다면 저 파편들을 공들여 붙여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권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있는 그대로(직관적으로) 느껴보시라고.

전체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당신의 감정을 건드렸고, 그 문장과 당신의 마음이 공명했다면, 당신에게 의미 있는 시라고 말해도 충분합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최백규 시인은...

대구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14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등이 있으며, 창작동인 '뿔'로 활동 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최백규 (지은이), 창비(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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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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