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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미테구청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을 막아내어 이름을 널리 알린 '코리아협의회'는 창립 30년이 지난 독·한 시민단체이다. 소녀상 이외에도 남북한의 정치, 사회, 문화, 분단과 통일, 국제교류, 교육, 이주민 등 광범위한 주제로 활동한다. 베를린에서 'Korea Verband'(코리아협의회)란 이름으로 살아오는 동안 못다한 이야기가 많다. 이 지면을 빌려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독일사회 한복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소박하지만 야심찬 한 시민단체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직 목소리를 찾지 못한 이들의 삶에 가 닿기를 희망한다.[기자말]
☞이전 기사 : <미테구청에 소녀상 영구임대 제안했지만, 돌아온 건...>

2021년 9월 26일에 있었던 베를린 지역선거로, 미테구청장 스테판 폰 다쎌도 연임하게 되었다. 베를린 소녀상 싸움은 이렇듯 먼 길을 돌아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공식적으로 2022년 9월 28일까지의 설치만 가능한 상태이니 영구 설치를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된다는 의미다.

한편 일본 정부 측과 극우들의 공격은 한층 교묘해지고 노골적이 되었다. 미테구 공무원들은 아직도 하루를 소녀상 관련 이메일을 처리하는 일로 시작한다고 한다. 일본 우익들이 보낸 악성메일은 한국인의 이름을 달고 있는데, 본인은 일본을 혐오하며 소녀상을 세워줘 고맙다는 등 소녀상이 한일 간의 해묵은 역사적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강조한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이메일과 편지 공격으로 안 그래도 코로나 상황과 시정 일로 바쁜 공무원들은 소녀상이라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소녀상은 모아빗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중이다. 한 남성은 소녀상 옆에 위치한 꽃집을 통해 매달 20유로씩 기부를 하고 있다. 소녀상에 꽃과 식물을 계속 놓아 달라는 요청이다. 시민들이 조직한 소녀상 지키기 콘서트 때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던 꽃집 아줌마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가게에서 전기를 끌어 쓰게 해주는 든든한 동지가 되었다.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그날의 많은 다른 여성들처럼 소녀상도 꽃을 선물 받았다. 장미꽃을 준 이는 모아빗에 사는 한 이주민 남성이었다. ‚Sie ist eine Moabiterin!'(소녀상은 모아빗의 주민이에요)이라고 외치던 행인도 있었다. 여성의 날 집회에서는 소녀상 보존을 위한 서명 캠페인을 펼쳤다. 무엇을 위한 서명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3백여 명의 시민들이 자진해서 서명을 했다.

소녀상이 베를린 유명 조형물 12개 안에 선발되는 경사도 있었다. <Omas gegen Rechts(극우를 반대하는 할머니들)>이라는 단체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소녀상 앞에서 정기 침묵시위를 연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아시아계 2세들이 애틀랜타 스파 아시아인 총기난사 테러 1주기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었다. 소녀상 앞에서는 이렇듯 전쟁과 인종차별 반대, 여성 성폭력 철폐 구호가 들리고, 그 모든 구호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자연스럽게 수렴되고 있다. 세상의 온갖 폭력과 차별을 향한 저항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큰 그릇으로 넓어지는 중인 것이다.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는 베를린 미테구 소속 사민당 시의원 고테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는 베를린 미테구 소속 사민당 시의원 고테
ⓒ Korea Ver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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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엔 미테구 지역의회에 속한 시의원이 동네를 산책하는 프로그램이 구청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산책 경로에는 소녀상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 대표에게는 소녀상에 대해 짧게 발언할 기회가 주어졌다. 사민당 소속이지만 미테구청장 폰 다쎌과 함께 소녀상 철거를 지지했던 고테(Ephraim Gothe) 의원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된 채로 한 대표의 설명을 들었다. 소녀상의 의미에 대한 설명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 이어진 시의원의 발언 때 그는 앞으로는 소녀상 영구 보존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달려와준 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KV는 하루도 쉬지 않고 소녀상 일에만 매달리느라 재정이 열악해질 대로 열악해졌다. 다른 여느 집회보다도 많은 시민들이 소녀상 집회에 달려와 주었고, 심지어 국내에서도 소녀상 보존을 위한 성금이 들어왔지만 누군가는 일을 진두지휘해야 했고, 현장에서의 다양한 활동들을 누군가는 세밀하게 지원을 해야 했다.

초반에는 언론사와 기자들이 밤낮으로 인터뷰 의뢰를 해오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전세계의 학생, 대학생, 연구자들이 던지는 빗발치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일에도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됐다. 미테구청장, 구의회 의원들에게 이메일 한 통을 쓰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한정화 대표는 소녀상 외의 다른 단체 사업을 돌볼 시간도, 여력도 없게 되었다. KV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선발된 사업을 계속 진행시키지 못해 지원금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는 KV 창립 이래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코로나 팬데믹은 수년 동안 연속적으로 진행해온 사업들마저 줄줄이 취소시켰다. KV는 프로젝트 공모에 선출된 재정으로 운영되는 단체인데 이와 같은 상황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이 상황이 지속될 경우,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문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소녀상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계속)

덧붙이는 글 | 글/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정유진


태그:#일본군 위안부, #베를린 소녀상, #코리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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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 있는 독/한 시민단체, Korea Verband <코리아협의회>에서 함께 사용하는 아이디입니다. '다름과 존중이 만들어내는 제3의 공간' 코리아협의회의 활동 소식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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