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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가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늘어져 있는 아이에게 뭘 먹일까 하다 망설임 없이 죽을 배달 시켰다. 어린이집을 가지 못하고 누워 있는 아이는 내가 잠시만 시야에서 사라져도 "엄마!" 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런 아이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고 불덩이 같은 이마와 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언제든 아이를 안아주려면 내 체력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죽을 직접 끓일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고 플라스틱 용기가 나오더라도 주저 없이 배달을 시킨 이유다. 아픈 아이에겐 엄마가 직접 끓인 건강한 죽보다 엄마의 따스하고 보드라운 마음과 손길을 더 내어 주고 싶으니까. 그러느라 환경을 위한 나의 실천은 한 걸음 퇴보했다.  
 
"여전히 매일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며 살고 있고, 나라는 존재가 이 지구에 유해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선택들이 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덜 해를 끼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쓰는 것이 매우 부끄러웠다. 나의 실천은 모두 하찮은 것이고, 내 삶의 태도는 '완벽'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이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지. 완벽한 것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결국 그 누구도 행동할 수 없게 만드는 나쁜 속삭임이다."
_백수린

소설가 백수린이 창비의 온라인 플랫폼 '스위치'에 올린 글을 읽었다. 생명과 환경을 위해 작게나마 '애쓰는 마음'에 관해 쓴 글이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시도를 하는 마음, 실패하더라도 조금씩 나아가 보려고 애쓰는 마음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환경을 위한 실천을 결심했다가도 무너져버리고 실행하다가도 멈추길 반복하는 내 생활까지 옹호해주는 것 같아 반가웠다.

오늘의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환경 오염과 육식으로 인한 폐해가 크다는 걸 실감하면서 몇 가지 실천을 시도했다.
 환경 오염과 육식으로 인한 폐해가 크다는 걸 실감하면서 몇 가지 실천을 시도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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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오염과 육식으로 인한 폐해가 크다는 걸 실감하면서 몇 가지 실천을 시도했다. 그중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건 배달 음식과 달걀 소비 줄이기였다. 배달 음식을 가능한 줄이고 달걀을 덜 사는 건 환경과 생명을 위한 선한 행동이었지만 일상생활에는 은근히 부담이 더해지는 일이었다.

달걀 프라이로 해결되던 아침 한 끼, 피곤한 저녁의 배달 음식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으니까. 여력이 될 때엔 자연스럽게 지켜졌지만 체력이 달리고 신경 쓸 일이 많을 때면 스스로가 세운 약속 때문에 마음이 팍팍해졌다. 무리해서 집밥을 짓는 날이면 피곤함 때문에 가족들에게 괜한 짜증을 내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선택한 일이더라도 거기에 지나치게 얽매여 나를 소진하고 그걸로 곁에 있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환경이나 생명이라는 커다란 울타리를 지키기 이전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는 게 내겐 더 중요하니까. 과한 소비와 지나친 쓰레기 배출이 아니라면 생활의 편안과 마음의 평온을 위해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금은 피곤한 저녁엔 갈등 없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가능하다면 식당에 직접 가서 먹으려 하고 배달시켰다면 일회용기는 줄여서 받고 잘 닦아 분리배출한다. 이런 실천은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여력이 안 되어 실천을 미루는 것들이 있지만 대신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라도 쓰레기 배출을 줄이려 노력한다.

한 걸음 나아갔다가 멈춰 버리고 때론 퇴보도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해보겠다는 마음과 태도를 지킨다면 아주 천천히 일지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갔느냐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고 있느냐 일 테니까.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고 매일매일 흔들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쪽으로 흐른다. 나는 우리가 어딘가로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궤적은 일정한 보폭으로 이루어진 단호한 행진의 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갔다 멈추고 심지어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는 춤의 스텝을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만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고."
_백수린
 
중요한 건, 방향
 
내게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선사했던 이 세계를 성장한 아이가 미래의 어느 날에도 변함없이 마주하길 바란다.
▲ 푸른 숲 내게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선사했던 이 세계를 성장한 아이가 미래의 어느 날에도 변함없이 마주하길 바란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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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 같이 사는 이들의 컨디션과 행동, 선택으로 인한 흔들림까지 내 삶에 뒤섞인다. 때론 갈등으로 인한 불협화음이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종종 뜻밖의 하모니가 아름답게 만들어진다. 그런 생활에서 나의 믿음과 실천만이 옳고 최선이라고 우기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상황과 여건에 맞춰 모두가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다. 그걸 위해 양보하고 포기할 줄 아는 게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화음을 쌓아가는 삶이 내겐 더 소중하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갈등하고 번민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이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내일이면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매번 흔들리고 이토록 불완전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다들 자기만 아는 부족함을 끌어안은 채 날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런 내게 백수린 작가의 문장은 더없이 큰 위로가 되었고.  

매일매일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보다 매일매일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이제 나는 흔들리지 않으려는 완고함보다 기꺼이 흔들릴 수 있는 유연함이 더 좋다. 목표를 향해 빠른 길로 직진하겠다는 단호함보다 때에 따라 멈추고 빙 돌아가기도 하는 망설임을 더 사랑한다. 뻔히 보이는 직선보다 머뭇거림으로 리듬이 만들어지는 궤적이 더 아름다울 테니까. 그 궤적은 백수린 작가의 말처럼 춤의 스텝을 닮아 있을 테니까.

완벽하지는 않을 테지만 조금이라도 더 자연에 이로운 선택을 하고 사소하지만 환경과 생명을 보호하는 실천을 행하며 살고 싶다. 내게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선사했던 이 세계를 성장한 아이가 미래의 어느 날에도 변함없이 마주하길 바라니까. 나보다 앞서 살았던 많은 이들 덕분에, 그리고 지금도 곳곳에서 이름 없이 활동하며 애쓰는 이들 덕분에 아무 대가 없이 원 없이 누리는 세계. 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기 위해 '애쓰는 마음'만은 지속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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