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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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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 보는 시위

작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장애계를 둘러싼 쟁점 중에 이동권과 관련하여 뜨거운 쟁점으로 조명되고 있다. 사실, 지하철 시위방법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변화된 계기가 있었다. 수업에서 제시된 과제를 하던 중, 개인적인 필요성에 의해 전 세계의 장애인 인권운동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유목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깨닫게 된 교훈이 있다. 그것은 '소수자의 권리는 끊임없는 투쟁과 외침이 있어야지 쟁취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장애인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동, 여성, 성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연대의 정신이 필요함을 느꼈다.

나는 이 글에서 평소 느끼고 경험한 이동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교통수단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며, 그 나라의 인권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초적인 척도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이동권은 누군가, 즉 교통약자를 배제한 채 누리고 있다. 이동권 논의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대중교통이다. 대중교통 중에서도 핵심수단은 버스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이 27%에 그쳤고, 가장 높은 지역은 서울인데, 이마저 57.8%에 불과했다. 이처럼 대중교통이지만, '대중'이라는 말 속에는 교통약자가 배제되는 것이 현실이다.

절실한 이동권

나에게 있어서도 이동권은 절실하다. 나는 집이 경기도이고 학교는 경북이다. 비장애인도 먼 거리를 오고 가는 것은 힘든 과정이다. 나도 힘든 여정이다. 경기도와 경북으로 오가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든 점이 있다. 그리고 지하철, 기차, 그리고 저상버스(또는 장애인 콜택시)를 연쇄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시간이 절약된다. 지하철과 기차는 그나마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데, 학교로 가는 시내버스 혹은 장애인 콜택시가 바로 오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기다리는 것이 더욱 힘들다.

나는 대구 동성로나 대구 시내의 스터디 카페에 자주 간다. 내가 대학에서 대구 시내까지 이동하는 방법은 좀 독특하다. 우선, 장애인 콜택시를 부른 다음에 학교 정문 버스 정류장에 간다. 만약, 운 좋게도 저상버스가 장애인 콜택시보다 먼저 오고, 버스 기사가 승차거부를 않는다면 불려 놓았던 장애인 콜택시를 취소한다. 버스와 콜택시의 요금은 큰 차이는 없지만, 몇 천원이 더 싼 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편이다. 사실,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편하지만은 않다. 왠지 모르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분명히 저상버스이고 승객이 적음에도 승차거부를 받을 때면, 사회가 냉철하다는 생각도 든다.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리프트

가끔 역사 내에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있더라도 고장이 나면 계단에 정착된 리프트를 탄다. 지하철 역사 내의 리프트를 탈 때면 여러 생각과 교차한다.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과 동정의 시선이 불편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그 상황을 벗어나면 어느 정도 괜찮아진다. 이보다 큰 불편함이 있다. 놀이공원의 바이킹, 롤러코스터 등과 같은 놀이기구는 좋아하지만, 지하철에 설치된 리프트는 공포감이 저절로 생긴다. 리프트를 이용할 때면, "이 리프트를 이용하는 것이 내 삶의 마지막이면 어떻게 하지"라는 공포감이 몰려온다. 이러한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없어지지 않는다. 특히 리프트를 타고 내려갈 때보다 올라갈 때가 더 무섭다.

진정한 문명사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대중교통답게 모든 대중에게 평등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긴다. 너무 지나친 욕심인 것일까? 욕심이라면, 적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죽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교통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가 모두 선결되어 길거리에서 한국 장애인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한국으로 관광이나 이민 온 장애인을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양적인 측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왔다. 전 세계가 주목할 만큼 경제, 과학, 문화 등이 발전됐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과 다양성을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는 자세는 부족하다. 진정한 문명사회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양적 성장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 양적 성장과 더불어 우리들의 지적 담론 속에 인권, 다양성 공존, 연대, 평등, 자유라는 주제가 있어야 하고, 이것이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담론으로 안착될 때, 비로소 문명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태그:#이동권, #대중교통, #인권, #장애인,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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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현재는 동대원 박사과정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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