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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노트 알림] 현장학습 준비물... 끈 달린 물통, 물수건, 운동화, 자유복, 여분 마스크,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아이가 올해 입학한 유치원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현장학습을 간다. 그리고 한 달의 마지막 현장학습 시간에는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고 입학 오리엔테이션 자료에 안내되어 있었다. 3월엔 적응 기간이라서 현장학습을 두 번만 가게 되어 도시락 준비물이 없었는데 이번 주에는 도시락을 준비하라는 키즈노트 알림이 있었다.

물수건과 여분 마스크 등 준비물이 여럿 보였는데도 그중에서도 도. 시. 락. 이 세 글자가 유독 크게, 도드라지게 보였다. 알고 맞는 매라고 아프지 않을 쏜가.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도시락을 싸는 일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요리를 못하고 손재주 없는 엄마는 아이가 손꼽아 기다리는 현장학습이 그렇게 반갑지 않다(물론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주시는 선생님들의 노고에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 가득이다).

메뉴부터 고민이다. 김밥 대신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주먹밥이 좋을 것 같다. 아이의 편식을 핑계 삼아 가장 손이 덜 가는 음식을 고른 것이 아니냐고 누가 묻는 다면 '한사코' 맞는 말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김밥은 당근, 시금치, 계란지단, 햄 등등 재료 준비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데다 제대로 싸지 않으면 김밥 옆구리가 터지고 만다.

운이 좋아 제대로 된 김밥을 말았다 해도 썰고 나면 형형색색의 재료들이 김밥 정가운데 가지런히 자리하지 못하고 한쪽 구석으로 쏠려있기 쉽다. 김밥을 만들다 실패할 바에는 주먹밥이 안전한 선택이다. 비엔나소시지를 반찬으로 더해주면 아이가 만족할 만한 도시락이 완성! 아차차, 과일! 샤인머스켓 대신 애플청포도를 샀는데 가격도 착하고 맛도 좋았다.
 
요리를 못하고 손재주 없는 엄마는 아이가 손꼽아 기다리는 현장학습이 그렇게 반갑지 않다.
 요리를 못하고 손재주 없는 엄마는 아이가 손꼽아 기다리는 현장학습이 그렇게 반갑지 않다.
ⓒ 허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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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직장어린이집에 다니던 2년 동안에는 도시락을 싸지 않았다. 코로나 여파도 있었지만 한 번씩 도시락을 준비해야 할 때에도 준비물은 늘 '빈 도시락 통'이었다. 어린이집 조리사 선생님의 수고로움을 담보로 직장어린이집에 보내는 여러 직장맘들은 꿀보다 달콤한 아침잠을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던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밥 먹는 것보다, 머리 감는 것보다 딱 5분만 더 자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지 않은가! 아이를 맡긴 모든 시간 늘 감사했지만 도시락을 싸면서 새삼 어린이집 조리사 선생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저 도시락일 뿐인데, 엄마가 되어서 뭐 그리 힘들다고 투정을 하느냐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요즘 도시락은 그냥 도시락이 아닌 것이 문제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각종 캐릭터(다시 유행하고 있는 포켓몬, 키티, 도라에몽 등등 )를 도시락에 완벽하게 구현하는 현란한 솜씨를 지닌 엄마들이 많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을 보고서는 '우와!' 하며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가져간 도시락에 실망할까 은근 신경이 쓰인다. 요리에는 소질이 없지만 정성과 사랑에 있어서라면 넘치게 담았으니 엄마의 마음을 느끼기에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엄마 생각이 부쩍 많이 난다. 소풍 가는 날 잠에서 깨고 보면 소고기를 잔뜩 넣은 김밥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엄마는 소고기를 총총 썰어 밥에 버무려 김밥을 싸셨다. 김밥 단면에 알알히 박힌 소고기는 맛에서나 멋에서나 뒤지지 않는 일품 도시락이어서 소풍날 아이들은 앞다투어 내 김밥에 젓가락을 가져다 대곤 했다.

그걸 모르지 않는 엄마는 하나는 아이들 먹으라고 내어주고 하나는 오롯이 내가 먹을 수 있도록 항상 두 개의 도시락을 준비해 주셨더랬다. 엄마에게 보고 배운 대로 주먹밥과 과일을 넉넉히 쌌다. 요즘은 선생님들 도시락은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라서 부담이 덜 한 것은 정은 없어 보이더라도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고 도시락을 먹으며 우정도 쌓고 추억을 나눌 병아리 같이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래, 소풍 가서 먹으면 뭔들 맛있지 않겠는가!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아이는 엄마 도시락이 최고였다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발행한 글입니다. 브런치by달콤달달


태그:#직장인이야기 , #워킹맘, #유치원현장학습, #도시락, #주먹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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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보았다가도 또 생각나서 찾아 읽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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