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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평 반의 진땀 나는 야구세계>의 표지.
 <두 평 반의 진땀 나는 야구세계>의 표지.
ⓒ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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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야구 경기를 볼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떤 것일까. 화면이야 모든 방송사들이 비슷한 화면을 제공하고, 재미난 데이터를 활용하곤 하기에 '그래픽'이 큰 요소라고 보기엔 어렵다. 결국 TV로 야구 중계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귀로 듣는 것, 다시 말해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목소리와 말에 있는 셈이다.

캐스터는 홈런을 치고, 만루 상황을 막아내는 등 경기가 절정으로 향하는 순간에는 짜릿한 샤우팅을 하고, 경기가 자칫 지루해질 때는 해설위원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유도하는 역할도 한다. 그렇기에 야구 팬들 역시 캐스터의 말에 호감을 갖는 것을 넘어, 각 방송사마다 가장 좋아하는 캐스터 한 명씩을 뽑아놓기 마련이다. 

그런 야구 팬들에게 '1선발 캐스터'라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 사람이 에세이를 냈다. MBC 스포츠플러스의 한명재 캐스터가 쓴 책인 <두 평 반의 진땀 나는 야구세계>(문학수첩). 어쩌면 귀로 듣기만 했던 야구 캐스터의 일거수일투족을 실감나게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인 셈이다.

두 평 반의 공간에서 담아내는 수천 평 이야기

야구장의 면적은 어느 정도가 될까. 야구장 바깥의 관중석, 사무실 등을 포함한 면적은 5천 평에서 6천 평 언저리가 나오고, 경기가 펼쳐지는 그라운드의 면적은 4천 평에서 5천 평 정도에 달한다. 널찍한 경기장의 크기만큼이나 경기장에는 다양한 관중석과 식음시설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곤 한다.

그렇지만 한 방송사에 할당된 중계부스의 면적은 두 평 반 남짓. 건물의 3층 정도 높이에 자리한 중계석은 그라운드가 잘 보이는 명당이지만, 캐스터에 두어 명의 해설위원, 그리고 데이터를 기입하는 기록원까지 낑겨 앉기엔 좁다. 저자는 이 상황을 '숨이 턱턱 막힌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나마 대부분의 야구장 중계 부스가 창문을 열 수 있도록 돼 있다는 게 위안이다. 현장에서 뛰는 선수들, 그리고 응원하는 관중들과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같은 소리와 함성을 들을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방송 기술의 발달로 모니터에서도 실감나는 경기를 볼 수 있지만, 현장의 열기를 직접 느끼는 것은 그만의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캐스터에게 힘건 좁은 중계 부스 사이즈만이 아니다. 스포츠 아나운서를 뽑는 면접에서는 이 질문이 빠지지 않는단다. 어디에서나 잘 자는지, 못 먹는 음식이 있는지, 여행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체력을 좋아하는지 말이다. 비단 야구 뿐만 아니라, 스포츠 캐스터들에게 출장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탓이다.

이른바 '3D 직종'인 스포츠 중계이지만, 그럼에도 한명재 캐스터는 '캐스터'의 강한 장점들을 열거한다. 공짜로 가장 좋은 좌석에서 경기를 보는 것, 근무 시간에 '몰컴'을 할 필요 없이 스포츠 경기를 봐도 되는 것이 장점이란다. 스포츠 분야의 '레전드'와 함께 중계를 하고, 인터뷰를 하는 것도 장점이다.

이어 저자는 '자신의 목소리로 역사가 기록되는 것'을 스포츠 캐스터로서의 보람으로 꼽았다. 특히 자신의 목소리로 말미암아 스포츠 아나운서를 꿈꾸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극적인 순간에 스포츠 팬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그날의 중계부터, '유리천장' 이야기까지
 
야구라는 종목에 대해, 캐스터라는 직업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이 생각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사진은 야구장에서 선수들이 경기 전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
 야구라는 종목에 대해, 캐스터라는 직업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이 생각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사진은 야구장에서 선수들이 경기 전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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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에는 캐스터라는 직업의 어려움, 그리고 보람을 넘어선 이야기들도 적지 않다. 그는 사람들이 '한명재 캐스터' 하면 기억할만한 중계들을 회고하기도 한다. 

가장 먼저 우승의 순간이 그렇다. 당장 2009년 KIA 타이거즈가 해태 이후 12년만에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때, "지난 12년간 KIA 팬들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가 지금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린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86년만의 우승을 알린 조 벅의 말을 따왔다지만, 본인은 오그라들어 상경하는 길 자책했다는 말에 웃음이 난다.

삼성 라이온즈가 오랜 목마름을 씻어내고 2011년 우승하던 순간, 그가 그 해 별세한 고 장효조 감독을 떠올리며 "보고 계십니까, 들리십니까"라고 말한 것도 떠올린다. 신파 같지 않으면서도 '레전드' 장효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멘트를 만들기까지의 고민이 담겨있다. 

저자는 지난 2020년에 이뤄진 캐스터의 단독 중계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해설위원이 없는 텅 빈 중계석에서 야구 중계 시간이 이렇게 길다는 것을 실감했단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홀로 팬들과 교감하며 중계를 해냈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에게 따라붙는 부적절한 시선에 대해서도 그는 피하지 않고 담았다. 그는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가 그저 '눈요깃거리'로 소비되는 것에 분노한다. 또, 여성 아나운서에게 주어지는 협소한 역할과 불안정한 지위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여성 캐스터가 유려하면서도 막힘 없이 경기 상황을 전달하고, 여성 해설위원의 깊이 있는 해설이 돋보이는" 중계를 언젠가 볼 수 있길 희망한다. 종목은 다르지만 저자와 같은 방송사에 몸 담고 있는 김선신 아나운서가 컬링 종목의 '전문 캐스터'가 된 것을 생각하면, 야구에서도 '여자 전문 캐스터'가 등장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오래 남는 한명재 '캐스터'의 이야기

어쩌면 한명재 캐스터의 20년 넘는 방송 이야기를 담기에는 짧다면 짧은 200쪽 남짓한 책이지만, 책 안의 내용은 너무나도 알차다. 야구 팬이라면 공감할 경기 장면, 그리고 야구장에서 누구보다도 빛나 보이는 캐스터라는 직업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담담히 담았다.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가 2017년 벌였던 타격전 때 SK를 '애새끼'로 발음하는 '웃픈 방송사고'를 쳤을 때의 이야기를 읽을 땐, 당시의 방송을 유튜브로 찾아보며 웃었다. 또, 최근 KBO 총재가 된 허구연 위원의 지칠 줄 모르는 학습 자세를 보면 괜히 내가 어린 나이에 도전을 주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프로야구 '1선발 캐스터' 한명재라는 사람에 대해 기대하고 책을 열어본 야구 팬들이라면 저자의 이야기보다 캐스터의 생활상, 그리고 캐스터라는 직업의 이야기가 무엇보다도 깊게 남을 터다. 캐스터의 직업을 기대하고 책을 열어본 이들도 하나쯤은 기억날 법한 야구 기담을 그의 입장에서 풀어낸 것에 웃음을 짓게 될 테다.

이 책이 더욱 술술 잘 읽히는 건 저자 자신의 이야기보다 야구를 아끼는 마음, 그리고 캐스터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았기 때문 아닐까. 책을 덮고 나니, 내일 프로야구 중계를 오프닝부터 끝까지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두 평 반의 진땀 나는 야구세계 - 샤우팅과 삑사리를 넘나드는 캐스터의 중계방송 분투기

한명재 (지은이), 문학수첩(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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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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