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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민신문은 두 번째 농촌 프로젝트 '농촌과 여성의 삶'을 통해 잊혀진 토종 농산물을 되찾고 현대화, 단순화된 먹거리와 농촌의 삶을 다뤄보려고 한다. 첫 번째 만난 농부는 화성시 봉담읍 하가등리에서 태어나고 평생을 산?이이분 씨갑씨 할머니(86세, 봉담읍)다. 씨를 보존하는 사람을 '씨갑씨'라고 불렀다. [기자말]
진주팔찌를 찬 이이분 할머니가 잡초를 뽑고 있다. 
 진주팔찌를 찬 이이분 할머니가 잡초를 뽑고 있다.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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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겉옷을 입고 소녀 같은 표정으로 매 순간 들에 있는 풀을 뽑을 타이밍을 포착하고 있는 이이분 할머니. 할머니는 제초제 없이 텃밭을 가꾼다. 이이분 할머니는 께묵 씨갑씨다.

지난 18일 <화성시민신문>이 이이분 할머니를 만나러 간 날,  박미애 씨앗도서관 향남분소장도 이이분 할머니 댁을 방문해 밥 모심을 했다. 밥 모심은 씨앗도서관에서 토종 씨앗을 지켜주신 어르신께 감사한 마음으로 지어드리는 소박한 밥상이다.

"김치만 있으면 되죠 뭐. 김치면 좋아. 늙은이 입맛이 뭐가 그리 중해요."

할머니는 분주하게 밥을 짓는 손길에 차라리 손님을 대접하는 쪽이 한결 편하겠다는 표정이다. 

밥 모심 메뉴는 명이나물, 세발나물, 달래, 도다리쑥국, 채소전, 오이물김치, 식혜로 구성했다. 온통 봄에 맛볼 수 있는 들밥 한가운데 제비꽃과 유채꽃을 꺾어 빈 술병에 얌전하게 담았다. 할머니의 큰 아들(60)이 구경삼아 나왔다가 오가피 순과 참죽나무 순을 상위에 슬쩍 올려둔다. 소박하지만 봄 내음 가득한 한 상이 차려졌다. 

"옛날엔 하루에 다섯 끼를 먹었는데 요즘엔 두 끼도 힘들어. 바람 안 부는 날이면 저 풀을 걷어서 태워야 하는데, 요즘은 바람이 많이 부네."

항상 소식하시며 늘 풀을 매는 할머니. 아무래도 소식과 밭일이야말로 할머니의 건강과 장수 비결이 틀림없다. 얼른 밥을 비우고 서둘러 풀 매러 자리를 뜨려는 할머니 옆에서 큰 아들이 거든다.

"엄마가 토종씨앗을 보전한 것도 맞지만 잡초인 줄 알고 다 뽑아낸 것도 제법 있을 거예요.(웃음)" 

오가피와 참죽나무 순은 향이 강해서 호불호가 갈린다고 한다.

"아랫지방에서는 튀각을 해먹어요. 가죽이라고도 부르죠. 여기서는 참죽나무라고 부르고 주로 새순을 따서 날로 먹거나 데쳐 먹어요."
 
이이분 할머니는 서봉산 자락을 쳐다보며 "저 산 골짜기에 있는 진펄에서 께묵을 캤다"고 말했다. 
 이이분 할머니는 서봉산 자락을 쳐다보며 "저 산 골짜기에 있는 진펄에서 께묵을 캤다"고 말했다.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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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젊어서 농사를 많이 짓고 소도 키웠는데 지금은 뒷 뜰과 저 아래 밭만 일군다. 할머니를 유명하게 만든 께묵(할머니는 토종 께묵 보존으로 화성푸드통합지원센터 2018년 기록됨)은 오래 전 서봉산 속 진펄에서 캐다 밭에 심었다. 께묵은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고 잘 번진다. 지금은 딱히 씨앗을 받아 심는 게 아니라 자생한다고.

"이 동네서 태어나 이 동네로 시집왔어. 친정이 바로 요 아래예요. 옛날엔 중매를 했지. 연애가 다 뭐에요. 이 동네는 내가 잘 알지. 께묵은 고들빼기처럼 쌉싸름한 맛인데 나이든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요.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리운 맛이지. 고추장에 무쳐 먹어요."

할머니의 뜰 안은 오밀조밀 구경할 것이 많다. 곤드레, 더덕, 도라지, 머위, 잔대, 산부추, 토종 민들레, 뿔시금치, 너북취* 등이 지천에 널렸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함박꽃과 목단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여기 앉아있으면 서봉산 자락이 보여요. 옛날에는 산에 가서 나물도 많이 해오고 그랬지. 지금은 다리가 아파 못가."

할머니는 평생 한 동네에서 4남매를 길렀다. 

"시골에서는 할 일이 많아요. 다 풀이야. 그래서 요즘 젊은 색시들이 시골로 시집을 안 온다잖아. 일만 노다지 하니까.(웃음) 우리 두 딸도 다 도시에 살아. 하나는 영등포에 살고 하나는 을지로에 살아요. 장사하느라 친정에 자주 못 와요. 거기서 잘살고 있겠지 뭐. 막내아들은 저 건너에 살고."
 
화성토종씨앗도서관이 할머니를 위해 차려 낸 봄 내음 가득한 밥 모심 한 상
 화성토종씨앗도서관이 할머니를 위해 차려 낸 봄 내음 가득한 밥 모심 한 상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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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이름에 관한 이야기도 말했다.  "내 이름이 '이쁜'이었어요. 그런데 '이분'이 됐어요. 면사무소 직원이 그렇게 지었어. 집에서는 갓난이라고 불렸죠. 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니 엄마가 선생님이 이분이라고 부르면 대답하라고 하더라고. 그땐 딸아이를 다 그렇게 불렀어요. 언년이, 갓난이.(웃음)"


할머니 텃밭은 봄이라 먹을 것이 흐드러졌다. 

 박미애 씨앗도서관 향남분소장은 이이분 할머니 께묵을 삽으로 떠서 두손으로 소중하게 담는다. 옛날에는 무성했던 토종 께묵을 잘 키워서 화성시 곳곳에 널리 퍼트리겠다고 진지한 얼굴로 약속한다. 토종 씨앗 농부 씨갑씨 할머니의 씨앗이 미래세대에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 가득 담아서 말이다.

*너북취는 취나물과 식물로 추측되며 정식 학명은 아니다. 할머니의 고유한 표현을 그대로 살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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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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