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히 내가 MZ세대로 불려도 될까' 싶을 만큼 유행과는 먼 자다. 고백하건대 지난 2022년 4월 10일 MBTI 검사를 처음 해본 자이기도 하다. 자가 검사는 비교적 간단했다. 주어진 설문에 '매우 그렇다'부터 '매우 그렇지 않다'까지 동의와 비동의 강도에 맞게 대답하면 끝. 10분쯤 설문을 읽고 답을 고심하다 보면 나라는 자를 형용하는 4가지 조합의 알파벳을 만날 수 있다. 이름표처럼 다들 하나씩 달고 다니던 INFP, ESTP 따위의 그것, 내게도 생긴 것이다.
ENFJ라 했다. 정의하자면 '정의로운 사회운동가'형의 사람이랬다. 듣기 좋은 말 잔뜩과 이 성향의 취약점을 일러주었는데, 다소 흥미로웠던 건 고작 네 가지 알파벳에 얼추 비슷한 내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이타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 그만큼 비판에 따른 스트레스가 높은 편인 것도. 내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당신들은 어떠하냐며 성향을 동료들과 나누기에 이르렀다.
역시 뒷북은 나뿐이었을까, 진작 검사를 마친 그들이었다. 원의 경우 ENFP라고 했고, 영은 INFJ라 했다.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고도 했는데 가장 드물게 만나는 4가지 알파벳이 이것이라 그랬다. ENFJ인 나와 상당 부분 중첩되는 자들이었다. N과 F가 우리 사이에 지배적으로 자리했고, E냐 I냐, P냐 J냐로 갈라졌을 뿐. 어쩐지 비슷한 구석이 많다 했더니 4분의 2나 같은 알파벳이라 그런 거였나 싶었다.
나의 가설-겹치는 알파벳마다 우린 닮아있다-은 날이 가며 신빙성을 더해갔다.
만나는 이 대부분에게 MBTI 결과를 묻곤 했다. 나는 ENFJ라던데 당신은 무엇인가요. 우선 박은 ENFP라고 했다. 나완 ENF가 겹치는 자로 특히 E(외향형) 쪽이 극도로 발달한 자처럼 느껴졌다. 볼 때마다 활활 발발한 모습이 어쩐지 E(외향형)를 타고난 것 같았는데, 나가고, 드러내고, 밖으로 향하길 좋아하는 나와 제법 비슷하게 느껴지던 것도 그 때문 아닐까 했다.
조는 INSP로 유독 N(직관형) 쪽이 닮은 자였다. 그는 현재보단 미래에 사는 사람 같았다. 언제나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봤고, 나무보단 숲을 그리려 했다. 깜은 INFP였다. F에 해당하는 감정형 성향이 나와 많이 닮은 자다. 우호적 협조와 공감을 좋아해 딱히 모나지 않은 태도, 이왕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웃어넘길 때가 많아 이따금 나를 보는 듯 했던 건 F 때문이었으려나.
김은 ENSJ로 정확한 계획과 분명한 목적이 필요한 판단형(J)이라는 게 나와 비슷했다. 언젠가 그의 스케줄러를 보며 내 것인 줄 착각하던 때가 기억난다. 정갈하게 세워진 계획이 반듯반듯 기록되어 있더니 J 때문이었을까. 다르나 다르지 않던, 나의 조각을 품은 그들이다.
고작 16분의 1의 확률로 개체인 우리 모두를 규정할 순 없을 것이다. MBTI만으로 개인을 판단할 수 없고 단정 지을 순 더더욱 없을 테다. 그러나 알파벳 조각을 맞춰가며 그들을 이해하려 했듯, 적당히 비슷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건 약간의 희망처럼 보인다.
나와 반대의 성향은 오직 ISTP 하나뿐. 그럼에도 100% ENFJ의 피가 흐르는 나는 아니라서, 그러니까 비율이 적어 그렇지 I도 있고, S도 있고, T도, P도 있는 나라서 ISTP조차 나완 전혀 다른 타인이라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또 다른 희망이다.
공감은 연대하게 한다. 공감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의 깊이와 폭을 넓게 해 아량을 베풀게도 한다.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텅 빈 세상에 나 홀로 우뚝 서 있는 듯한 외로움을 감쇄시킨다. 공유할 수 있는 감정, 성향만으로 당신은 내가 되기도, 나는 당신이 되기도 한다. 나를 빌려 당신을 이해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재미삼아 해본 MBTI 검사가 거참, 이토록 거창한 결론을 가져다주었다. 나를 분석하는 과정에 너를 알아보고 어쨌거나 우리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걸 알아가니까. MBTI로 발견한 16분의 15의 확률은 아직 희망적이라는 근거가 되기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