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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 그리기가 싫다. 그것뿐 아니라 점토 만들기, 색 조합 등 미술 과목과 관련된 활동도 싫다. 미술가를 알고 예술 작품을 알기도 어렵다. 지금의 나는 어려서부터 안 해서 못 한 것인지, 못해서 안 한 것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내가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다 보니, 아이에게도 영향이 갔다. 다른 엄마들을 보면 캐릭터를 그려주고, 그림을 그리며 소통하는 엄마가 많은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림이야 자신이 좋아하면 언제든지 그리겠지, 글을 모르니 소통하고 싶으면 그리겠지'라며 편하게 생각하고 지냈다. 그러던 중 지난달 어린이집 상담 시간에 아이가 노력했으면 하는 것 중에 그림 그리기가 포함되었다.
 
처음으로 혼자 그린 일상
▲ 엄마와 축구 처음으로 혼자 그린 일상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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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친구들과 대화하거나 놀이에 반영을 잘하는데,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발표하는 영역은 약하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못한다", "모른다"라고 하면서 행동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날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대화는 나의 감추고 싶었던 부분을 드러낸 기분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는 나, 못하는 걸 하기 싫어하는 나, 어렵고 불편한 상황을 만났을 때 회피하는 성향을 가진 나이다. 우리 아이 쭌 군은 나의 단점을 그대로 닮은 아이인 거다.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는 건 유전 반, 환경 반이라고 하지만 닮지 않았으면 하는 걸 닮으면 모두 내 탓으로 돌려버리는 나는 평범한 한국의 엄마이다.

나는 아이가 네 살 때 동네 문화센터에서 연필스케치를 배웠다. 내 콤플렉스 중 하나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때 인지하지 못했던 내 성격 중 하나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림을 못 그리는 이유는 구도를 못 잡거나, 손이 익숙지 않거나, 크기를 잘못 선택하거나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림 선생님이 나에게 준 피드백은 같이 시작한 다른 학생들과는 달랐다.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안 한다'라는 것이다.
 
여러 칸을 나누어 하루에 있었던 여러가지 일을 그림으로 표현
▲ 엄마와 아들이 함께 그린 하루 여러 칸을 나누어 하루에 있었던 여러가지 일을 그림으로 표현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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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던 나를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미술 선생님은 '나는 70% 정도만 하고 완성했다'라고 숙제로 제출한다고 하셨다. 그때는 '그렇구나! 내 그림이 부족한 부분이 있구나' 하고 말았지만, 내 삶을 뒤돌아볼 때면 미술 시간이 떠오른다.

내가 했던 일 중에는 30%가 부족할 때가 많았다. 조금만 더 힘내고 하면 되는데도, '노력했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신 등을 가지고 임계점을 넘지 못하는 순간 말이다.

글쓰기 수업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고, 20대 때 자기계발 강의를 들으러 다닐 때 강사가 멋있어 보여, 이직했을 때도 그랬다. 조금 더 노력해 강의 실력을 키우고, 강의를 주업으로 하는 회사의 면접 권유를 받았음에도 강사의 길을 포기했다. 그 대신 나는 강사를 도와주는 CM(Class Manager)으로 이직했다.

당시 친구가 지금까지 쏟은 노력과 자금이 아깝지 않냐고 물었을 때, "괜찮다, 나는 어느 때든 강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라는 말을 했다. 이때 상황과 친구가 했던 말이 생생히 떠오른 이유는 아직 내가 강사라는 직업에 미련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강의 준비를 30%가 부족한 70% 정도만 했기에 강의하는 나도, 강의를 듣는 학습자도 만족하지 못한 시간이 되었다. 

잘하고 싶지만, 어느 지점을 넘지 못하는 건 나의 회피성 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노력했는데 잘 되지 않을까 봐 미리 회피해버리는 것이다. 아이를 낳은 후부터 나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셨다.

아빠는 자녀 양육에 관심 없는 보수적인 아빠였고, 엄마는 일과 가사가 힘들다는 이유로 나에 대한 양육에 힘을 많이 쓰지 못했다. 나는 엄마에게 자주 언니, 오빠와 비교하면서 나에게 잘해주지 않는다고 징징거렸고, 엄마는 순한 언니 오빠를 키우다 자기주장이 강한 나를 대할 때면 힘들었다고 얼마 전에 고백하셨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피드백에 나는 아이가 못한다고 하는 그 행동 자체만을 보지 못했다. 못하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모습, 스스로 자신의 한계선을 그어놓고 넘지 않으려는 모습을 봤다. 아니, 아이의 모습을 본 게 아니고 아이를 통해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아이는 나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그게 아니라고 정확히 느끼게 해준다. 아니 처절하게 알게 해준다. 아니다, 내 자식은 나의 모습이 바닥이 아님을 깨우치게 해준다. 나는 지하 10층 어쩌면 지하 100층보다 더 깊은 암울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렇지 않은 부모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부모가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

태그:#육아,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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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고, 정성 들이고, 결과물을 기달림. 농사와 우리의 삶일 비슷하다고 ㄴ껴진다. 40대의 여자 사람입니다. 꿈은 내공있는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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