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알쓸범잡2>의 한 장면

tvN <알쓸범잡2>의 한 장면 ⓒ tvN

 
지난 24일, tvN <알쓸범잡2> 정규 마지막회(15회)가 방영됐다. 식물원 카페를 찾은 출연진들은 '죽음의 이유를 파헤치는 싸인'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서혜진 변호사는 식물의 반응을 이용해 살인범을 검거했던 '나고야 살인 사건'을 언급했고, 게스트로 출연한 법의학자 이호 박사는 법의학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드들강 살인 사건'을 조명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관악 노파 살인 사건'을 통해 증거 인멸을 위한 행동이 오히려 범행의 의도, 동기, 범인의 성향 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강명 작가는 완전 범죄를 꿈꿨지만 실패했던 '수원 주차장 살인 사건'을 이야기했다. 김상욱 박사는 '버닝썬 사건'을 통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악물 성범죄'를 언급하며 일명 물뽕, 'GHB'에 대해 설명했다. 

최근 약물 성범죄 양상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는데, 그 이유는 거의 증거가 남지 않는 성범죄 약물 때문이다. 바로 무색무취의 GHB(Gamma-HydroxyButyric acid, 감마 하이드록시낙산)이다. 주로 물이나 술 등에 타서 액체 상태로 사용되기 때문에 '물뽕(물 같은 히로뽕)이라 불린다. GHB를 술에 타서 마시면 금방 정신을 잃고 기억을 상실하게 된다.  

문제는 GHB가 산소, 수소, 탄소 등 흔한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인데, 몸에 들어가면 금세 분해되며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로 바뀐다. 단시간 내에 몸에 흡수되기 때문에 빠르게 검출하지 않으면 증거가 남지 않는다. GHB가 이전의 약물과 다른 특징이며, 성범죄에 악용되는 까닭이다. GHB가 성범죄에 이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대표적인 사건으로 '버닝썬 사건'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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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알쓸범잡2>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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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버닝썬 클럽의 VIP룸에서 한 태국 남성과 술을 마셨던 여성은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나중에 일어나보니 성폭행을 당한 듯한 흔적들이 있어 경찰에 신고했지만, 약물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CCTV에는 피해자가 별다른 저항 없이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촬영되어 있었다. 경찰은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했고, 태국 남성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 이후 SNS에 '물뽕' 의심 피해 증언이 확산됐다. GHB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준강간 사건 같은 경우에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약물 검사를 진행하지만, 실제로 검출되는 케이스가 매우 드물다. 서혜진 변호사는 이 경우 '술에 취해 실수한 것'이라며 피해자들에게 화살이 향하게 된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분명 만취와는 다른 상황임에도 진실을 밝혀내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GHB의 원료인 GBL을 먹어도 체내에서 물을 만나면 GBL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범죄를 저지른 약사가 있었다. 30대 중반이었던 약사 A씨는 전문직을 대상으로 하는 데이팅 전문 앱에서 한 여성들을 만나 GBL을 이용해 성폭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약물의 양을 맞추지 못해 피해 여성이 정신을 잃지 않았고, 빠르게 진료를 받아 GHB를 검출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GBL이 마약 또는 약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다행히(?) 약사 A씨가 향정신성 의약품인 졸피뎀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소됐고, 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2년 1월 GBL을 임시마약류로 신규 지정했다. 임시마약류로 지정되면 마약류와 동일하게 취급돼 소지 또는 사용할 경우 처벌이 가능해 졌다. 

지난해 관세청은 밀반입하려던 GHB 2만 8800g을 적발했다. 2020년에 비해 무려 61배 급증한 수치이다. 실제로 돌아다니는 건 훨씬 많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버젓이 GHB가 유통되고 있지만, 약사 A씨의 사례가 현재까지 입증된 유일한 '물뽕' 사건이다. SNS와 인터넷 등을 통해 '물뽕'에 대한 증언들이 쏟아지는 데도 진실이 밝혀진 케이스가 한 건뿐이라는 건 씁쓸한 일이다. 
 
 tvN <알쓸범잡2>의 한 장면

tvN <알쓸범잡2>의 한 장면 ⓒ tvN

 
약물을 사용한 성범죄는 가중 처벌될까. 한국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약물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늦게 시작된 측면도 있다. 서혜진 변호사는 약물을 사용해 결국 의식을 잃게 만들어 성범죄를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폭행'으로 간주해 강간 상해죄나 강간 치상죄가 성립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사악한 범행에 비해 약한 법적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칼과 총하고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윤종신)
"더 위험할 수도 있죠. 칼을 들고 있다고 해도 피할 수 있을 거고. 몰래 타는 약물은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김상욱)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2000년 통과된 '데이트 강간 약물의 처벌법'은 1999년 발생한 끔찍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범죄자들은 성폭행을 목적으로 15세 소녀에게 GHB를 먹였고, 15세 소녀는 그 약물 때문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공분했고, '데이트 강간 약물의 처벌 법'이 마련됐다. 미국에서는 GHB를 사용하면 징역 최대 20년, 단순 소지만으로도 3년 형에 처해진다. 

비교적 마약 관리를 잘해왔던 한국은 이제야 약물 범죄와 맞닥뜨린 셈이다. 서혜진 변호사는 약물을 이요한 범죄를 특정 강력 범죄에 신선하거나 형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욱 교수는 마약을 사용한 범죄는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든다고 쓴소리했다.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저 술에 뭔가 타지 않았을까'라고 의심해야 한다면 사회 전체의 신뢰가 무너진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약물을 사용해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과거에서부터 계속 존재했던 범죄이다. 최근 더 심각해진 건 검출이 거의 되지 않는 약물들이 생긴 것이다. 김상욱 교수는 "지금 당장은 검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과학 기술이 다시 발전을 할 겁니다. 그래서 모든 범죄를 반드시 잡아낼 것"이라며 불안해 할 시청자들을 위해 작은 위안을 건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알쓸범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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