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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그램 @ingyo.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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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위태로운 프리랜서의 삶을 청산하고자 스무 곳 넘는 회사에 지원했다. 대부분 다 떨어졌는데 딱 한 곳에서 면접을 본 지 1분 만에 합격했다. 회사에 붙은 건 아니고 MZ 세대답게 미라클 모닝을 살아보고자 지원한 한 편의점의 오전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사장은 나를 만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가게를 맡기고 떠났다 돌아와서는 날 뽑은 이유를 짐작게 할 만한 말을 쏟아냈다.

"나도 남자지만 남자 알바들은 진짜 멍청하고 답답해. 말을 해줘도 못 알아먹는다니까."
"여초 회사에 다녔는데 여자가 훨씬 똑똑해도 승진은 안 시키더라."


빨간약 복용 7년 차 페미도 흠칫하게 만드는 수위의 발언이 이어졌고 나의 초스피드 합격 이유도 점차 분명해졌다. 그 이후로도 사장은 틈만 나면 '남자 욕' 하기를 즐겼다. 하지만 그 취미는 늘 그의 견고한 여성관을 투영하고 있어 듣는 이를 괴롭게 했는데, 못생기더라도 매장엔 여자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나 궂은일은 남자 알바에게만 시키는 뚝심 같은 것들이 그랬다.

하루는 저녁 시간 대타 근무를 부탁받고 일을 하던 중이었다. 근무가 끝나갈 자정 무렵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차로 집에 데려다줄 테니 퇴근 뒤 기다리라는 연락이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사장은 기어코 오겠다고 했다. 그를 기다리며 남자 야간 알바와 교대를 했는데, '사장님이 데려다 주기로 했다'는 말에 알바생이 지은 묘한 웃음과 표정이 선명하다.

몇 분 뒤 도착한 사장은 자취생인 내게 생수 여섯 묶음을 선물로 주겠다며 차에 실었다. 집까지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내 집이 어디인지, 남자 친구는 왜 없는지 심지어는 대통령으로 누굴 뽑았는지의 물음에 답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생수병이 집 앞에 툭 놓이는 순간, 나는 차별이란 저렇게 얽히고설켜 내 앞에 당도함을 알게 되었다.

엉망진창 편의점에서 나는 또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를 돌이켜보면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하루는 여성 청소년으로 보이는 손님이 찾아와 아동급식카드를 내밀며 결제를 요청했다. 카드를 긁자 잔액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떴다. 손님은 밖에 있는 아빠에게 물어보고 오겠다며 나갔다 들어오더니, 뜻밖의 요청을 했다. 매장 밖으로 나와 자신의 아빠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순간 짜증이 확 일었다. 차에 타서 본인은 나오지 않고 어린 딸을 이리저리 부려 먹는 못된 아빠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발을 쿵쿵대고 매장을 나서며 "아빠 차에 타 계세요?" 하고 묻자 손님은 말없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뒤로한 채 매장 문을 열자, 계단으로 된 문턱 앞에는 휠체어를 탄 남성이 앉아있었다.

나는 여성이란 이유로 아르바이트도 비교적 쉽게 구하고 물도 공짜로 받고 차도 얻어 타고 그런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원한 적 없는 친절을 감내하고 답하기 싫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또 나는 내가 가진 몇 가지 소수자성을 근거로 어떤 남성 집단을 쉽게 상상해 비난도 하고, 이런 기고 글을 쓸 권한도 부여받는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문밖의 존재들을 상상해내는 데 실패한다.

차별은 아주 지독히 엉킨 목걸이를 닮았다. 때로는 어떤 혐오와 호의의 감정이 얽히기도 하고 때론 섣부른 판단과 얄팍한 동정이 설키기도 하며, 점차 풀기 어려운 목걸이가 되어간다. 꼬일 대로 꼬인 목걸이를 잘 풀어내려면 하얀 종이와 촘촘한 바늘 몇 개가 필요한데, 그런 게 차별금지법이라 믿는다. 포괄적이라 어려웠던 차별의 개념을 삶에 꼭 필요한 네 가지 영역에서 아우르고, 스물세 개의 뾰족한 바늘*로 잘 풀어내는 일. 그로 인해 더 다양한 삶을 포괄해내는 바로 그 '평등법' 말이다.

*) 차별금지법에서 규제 대상으로 삼는 4개 영역(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용, 교육, 행정서비스 제공·이용)과 23개의 차별금지사유를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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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평등이념과 포괄적인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인권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실천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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