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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촬영한 마라도 전경. 필자와 함께 서남해 유인도 100여개를 답사한 광운대학교 해양 섬 정보연구소 이재언 소장이 드론 사진을 제공해줬다.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제주도 끝자락과 마라도 사이에 보이는 섬이 가파도다.
 드론으로 촬영한 마라도 전경. 필자와 함께 서남해 유인도 100여개를 답사한 광운대학교 해양 섬 정보연구소 이재언 소장이 드론 사진을 제공해줬다.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제주도 끝자락과 마라도 사이에 보이는 섬이 가파도다.
ⓒ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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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랫동안 벼르던 마라도를 방문했다.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이자 국토의 시작점이라는 상징성을 지녀 많은 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섬이다.

마라도는 제주도 끝자락인 송악산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자그마한 섬으로 면적 0.3㎢에 해안선의 길이는 4.2km이며 최고점은 39m이다. 야생화 168종과 조류 150여 종이 있고 주민은 30가구에 50명 정도이며 주민등록상 인구는 130명 정도이다.

마라도는 뿔소라, 성게가 많이 나고 겨울철에는 전복과 홍해삼이 많이 잡힌다. 제주도에서 마라도로 가는 배편은 송악산항과 운진항 두 곳이 있다. 송악산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기 전에 티켓을 체크하는 직원에게 요즈음 마라도로 여행하는 관광객 수를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이 배가 280명 정원인데 코로나가 있기 전엔 하루에 1천명 정도가 이용했었어요. 코로나가 한창일 때 30~40명 정도만 이용했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130명 정도가 탔습니다. 오전에는 괜찮은데 오후에는 전혀 없어요."

바람과 파도가 거칠어 '금섬'이라 불렸던 마라도

마라도는 조선조 고종21년(1884년) 모슬포에서 김성종, 이달선, 나찬석, 김우찬, 김모 등이 입도해 개척에 나섰다. 이들은 주로 낚시나 그물 따위로 고기를 잡고 생활하였지만 포구가 안정되지 않아 어업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 섬은 '가파리 산 7번지'이고 행정구역상 '가파리 8반'이었으나 1981년 4월 1일 가파리에서 분리되어 마라리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태평양에서 휘몰아치는 파도를 맞아 해식동굴이 생겨난 마라도 해변 모습
 태평양에서 휘몰아치는 파도를 맞아 해식동굴이 생겨난 마라도 해변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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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시기 마라도는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한 원시림이 뒤덮여 있었다. 바람과 파도가 거칠어 쉽게 접근할 수 없었고 일년에 단 한번 풍부한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섬으로 개척 이전에는 '금섬'이라고 불렸다.

마라도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39년 전인 1883년부터 시작되었다. 반농반어의 자급자족 생활을 하며 살아야 했고 변화가 심한 날씨로 외부와 단절되었다.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갈바람 등 바람의 변화가 심했고 이는 해녀들의 물질 작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마라도 개척 초기에 이주한 사람들은 농경에 필요한 땅을 마련하기 위해 숲을 태워 없애고 불태운 자리를 농지로 바꿔 나갔다. 조선조 고종 21년(1884년)에 개간이 허락되면서 숲에 불을 질렀는데 타는 연기가 무려 보름 동안이나 계속 되어싸고 한다. 그때 마라도 숲에 살던 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뭍으로 헤엄쳐 나왔다고 전해지며 현재 마라도에는 뱀과 개구리가 없다.
 
물이 귀한 마라도 주민들이 빗물을 모아둔 연못으로 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다. 봉천수란 빗물이 고인 연못의 물을 일컫는다. 김은영씨 설명에 의하면 오래전  마라도 주민들이 이곳에 목장을 만들어 동물들의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물이 귀한 마라도 주민들이 빗물을 모아둔 연못으로 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다. 봉천수란 빗물이 고인 연못의 물을 일컫는다. 김은영씨 설명에 의하면 오래전 마라도 주민들이 이곳에 목장을 만들어 동물들의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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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접안할 수 있는 포구를 만들 수 없었던 지형과 기후조건은 어업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고 해녀들의 물질 작업이 절대적이었다. 물이 귀해 70년대 들어서야 겨우 마을 공동우물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 후 집집마다 콘크리트 구조의 물통을 만들어 봉천수를 받아 저장하면서 물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봉천수는 빗물이 고인 연못의 물을 일컫는다.

섬 생활은 고달팠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턱없이 부족하고 이마저도 해풍이 몰아치면 수확량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섬에 밀려든 해초류를 채취해 거름으로 써야 했고 톳밥을 지어 먹으며 살아야 했다.
  
신입생이 없어 6년째 휴교 중인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모습
 신입생이 없어 6년째 휴교 중인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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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의 척박한 환경은 섬과 사람을 일체화시켰다. 섬에 쉽게 올 수도 없었지만 쉽게 나갈 수도 없는 섬 주민들은 의식주를 섬 안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나무를 쉽게 얻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마을 공동목장을 조성해 공동방목을 했다.

주민들은 소의 배설물을 모아 검질(풀)과 섞어 물반죽한 후 두께 2~3㎝ 정도의 어른 손바닥 모양으로 만들어 돌담 위에 붙여 말린 후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다. 삼별초군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에 왔던 몽골인들이 소와 말똥을 말려 에너지원으로 사용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마라도 주민들은 고기를 어떻게 저장했을까? 주민들은 높이 4~6m 안팎의 대나무를 세워 그 상단 끝에 매달아 해풍에 말려 저장했다. 전통적인 농업과 어업을 통해 자급자족하던 마라도의 물질적 생활기반은 두 차례의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째 변화는 70년대 소라의 대일 수출길이 열리면서다. 해녀들의 물질을 통해 얻은 수입이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변화는 1994년부터 시작된 관광 유람선의 입도 관광이다. 해녀들의 물질을 통한 수입이 대부분이었던 생활기반이 관광객 및 낚시꾼들을 위한 관광 판매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마라도 주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할망당(애기업개당)
  
 마라도에는 주민등록상 인구가 130명 이지만 성당과 교회 절도 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성당이고 뒤에 보이는 것은 마라도 등대이다.
  마라도에는 주민등록상 인구가 130명 이지만 성당과 교회 절도 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성당이고 뒤에 보이는 것은 마라도 등대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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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상 인구가 130명 정도밖에 안 되는 마라도지만 성당과 교회가 있고 절도 있다. 또 다른 종교 하나를 들자면 마라도 주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당 문화다. 마라도의 당 문화는 다른 지역의 당 문화와는 조금 다르다. 신화에서 나왔다기보다는 마라도 섬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다음은 마라도에 얽힌 전설이다.

수백년 전 모슬포에 살고 있는 이씨 부인이 어느 날 물길러 가다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울음소리를 따라가니 태어난 지 3개월도 안 된 여자아이가 수풀 속에서 울고 있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아이 부모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게 되자 딸처럼 기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씨 부인에게도 태기가 있어 첫아이를 낳았고 여자아이는 자연스럽게 아기를 봐주는 '애기업개'가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시절 마라도는 금단의 땅이었다. 섬 주변에는 각종 어류며 해산물이 풍부했지만 그것들을 잡으면 해신이 노해서 거친 바람과 흉작 등으로 화를 입힌다고 여겨 사람들이 접근을 꺼렸다. 그러나 매년 봄 망종(6월 6일 무렵)으로부터 보름 동안은 입도 허가가 났다.

어느 해 봄 모슬포 해녀들은 마라도 '섬비물' 해안에 배를 대고 물질을 시작했다. 바다는 매우 잔잔했고 날씨도 좋아서 소라, 전복 등이 많이 잡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레가 지나고 양식도 다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 그만하고 해녀들이 섬을 떠날 채비를 하자 갑자기 바람이 불고 잔잔했던 바다가 거칠어졌다.

그런데 바다가 참으로 이상했다. 떠날 것을 포기하고 배를 묶어 놓으면 잔잔해지고 배를 타려면 바다가 다시 거칠어졌다. "이거 틀림없이 바다신이 노한 거라. 이제 살앙 돌아가긴 틀린 거 닮수다" 물과 양식이 다 떨어진 날 저녁 잠수들은 다음 날에는 죽을 각오를 하고 떠나기로 뜻을 모았다. 떠나기로 한 날 아침 가장 나이 많은 잠수가 선주에게 지난밤 꿈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젯밤 꿈에 누가 나타나 이르기를 '애기업개'를 두고 가야지 데리고 가면 모두 물에 빠져 죽을 거랜 합디다. 어멍도 아방도 업는 아이니 두고 가야쿠다."

신기하게도 부인 역시 똑같은 꿈을 꿨다고 했다. 일행들은 의논 끝에 '애기업개'를 희생시키기로 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배를 띄워 사람들이 오르자 잔잔했던 바다에 다시 바람이 일시 시작하면서 거칠어질 조짐을 보였다. 이씨 부인이 '애기업개'에게 말했다.
  
"아이고! 얘야. 아기 기저귀 널어놓은 것을 잊어버리고 안 걷어 와졌구나. 저기 저 바위 위에 하얀 걸렁이 보이지? 얼른 가서 좀 걷어 오너라."

애기업개가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에 배는 바다 가운데로 빠져나갔다. 뒤늦게 눈치챈 '애기업개'는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나도 데려가 줍서! 제발 데려가 줍서!" 그러나 무정하게도 배는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바다는 더 이상 거칠어지지 않았다. 배에 탄 사람들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차마 뒤돌아볼 수도 없었다.
 
37년의 역사를 간직한 기원정사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이다
 37년의 역사를 간직한 기원정사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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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지난 뒤 마라도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슬포와 가파도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모슬포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외로움과 굶주림에 지쳐서 죽은 '애기업개'의 뼈를 볼 수 있었다.

잠수들은 '애기업개'의 뼈를 그 자리에 곱게 묻어 장례를 치러줬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애기업개를 위해 당을 만들었다. 마라도 사람들은 매달 7일과 17일, 27일에 제를 지내고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였다. 그 이후부터 사람들이 바다에서 죽는 일이 드물어졌다고 한다.
 
한 여인이 할망당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제를 지내고 남편인 듯한 남자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한 여인이 할망당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제를 지내고 남편인 듯한 남자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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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의 할망당(애기업개)은 보통 해녀들을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는데 주로 정월대보름에 가거나 가면 안 되는 날을 피해 본인이 원하는 날에 제를 지내러 간다. 

필자의 마라도 여행을 도와준 이는 마라도 주민인 김은영씨다. 제주도가 고향인 김은영씨는 2001년에 결혼해 신랑 고향인 마라도에서 세를 얻어 해산물을 판매하다가 남편인 김춘광씨가 돌미역으로 육수를 내 짬뽕 특허를 얻었다.

마라도에서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듬뿍 넣어 칼칼한 맛을 낸 그녀의 짬뽕 맛은 일품이었다. 5년전 마라도 이장을 역임했던 그녀가 마라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5년전 마라도 이장이었던 김은영씨가 남편이 특허낸 짬뽕 가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필자에게 마라도에 대한 많은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줬다.
 5년전 마라도 이장이었던 김은영씨가 남편이 특허낸 짬뽕 가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필자에게 마라도에 대한 많은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줬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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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왔더니 앞집은 시아버지 친척, 뒷집은 시어머니 친척이 살아 6촌 8촌으로 이어지는 친족 관계였어요. 2004년도에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 차없는 마을이 되었어요. 차 대안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해 나이가 들어 퇴역한 해녀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전기자전거와 마라도 방풍 막걸리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마라도의 자랑거리는 공해가 없는 섬, 차 없는 섬이다. 하지만 20여년 전부터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약간의 갈등이 생기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 여기는 끝장납니다"라고 말한 그녀는 "마라도는 톳과 미역으로 5천만 원 정도의 수익이 나는 데 기후변화로 인해 생산되지 않자 해녀들이 충청도 쪽으로 원정 물질을 갔다고 한다. 제주도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돌아서려는 데 김은영씨가 관광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관광객 여러분 무공해 마라도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고 갖고 온 쓰레기는 되가져 가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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