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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기자말]
흐르는 말
- 신철규

흐르는 물이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된다

떨어지는 말
낙차가 큰 말
바닥에 부딪쳐 으깨지는 말

생각 좀 하고 말해.

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말을 하고 있었나
생각을 덜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말이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불편한 사람은 생각이 많다
생각이 많아서 불편하다
비밀은 문지를수록 미끈거리고 거품이 나온다
혓바닥 위로 송충이가 기어가는 것 같다

생각 좀 너무 많이 하지마.

눈앞에 있는 사람을 위로할 때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비난하게 된다
없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없기 때문에 생각한다
적의 심장에 빠르게 칼을 찔러 넣기 위해 인간은 오른손잡이가 되었을까

우리는 소문으로 들러붙고 비밀로 밀어낸다

우리 두 사람이 알 정도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일
우리는 소문의 끝이고 바닥
바닥에 고인 소문들이 부글부글 끓는다
범람하는 입과 밀봉된 귀 사이가 멀다

- <심장보다 높이>, 창비, 2022, 14~15쪽

신철규 시인은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입니다. 첫 번째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문학동네)에서 읽었었던 묵직한 인상 때문에 두 번째 시집 발간을 기다렸는데, 2022년 4월 창비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첫 시집의 제목인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시 <슬픔의 자전>의 부분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라고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강남 부촌의 상징이었던 타워팰리스와 번지가 하나밖에 없던 구룡마을 사이에는 구룡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이 초등학교는 타워팰리스와 구룡마을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학교입니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이지만,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반 아이의 생일잔치에도 초대받지 못할 차이의 이름은 '빈부격차'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슬픔의 부피에 대해서 생각했고,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라는 문장에 스며든 슬픔의 부피, 그 거대함에 대해서 오래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상에 시인이 많은 까닭
 
신철규 시인의 시집
 신철규 시인의 시집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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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집 <심장보다 높이>를 읽으며, 맨 처음 눈에 들어왔던 단어는 '말'이었습니다. 말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하고 때로 사랑을 전하고 감동을 전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을 생각할 때,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에서 화자는 '생각 좀 하고 말해!'라고 얘기하는데, 이 말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문장입니다.

생각하고 말하면, 상황이 좀 나아질까요. 말의 문제가 오로지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만의 전유물입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지만, 어쩌면 오래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아도 문제고, 생각을 많이 해도 문제라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까? 말하지 않으면 말 때문에 발생하는 분쟁은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분쟁이 말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인간의 표현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만약 인간의 모든 표현의 방식을 제거할 수 있다면, 분쟁은 사라지는 것입니까. 그런데요, 인간의 모든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표현하지 않기'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멸종'을 택하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불편한 사람은 생각이 많다'라는 문장도 눈에 들어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시인의 말'로도 이어집니다. '부족공동체의 유일한 생존자처럼 누구와도 말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 곧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곧잘 한다. 어떤 대화도 혼잣말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요.

생각이 많으면 말도 많아지고, 타자와의 대화도 많아져야 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은 누구와도 말을 나눌 수 없고 '혼잣말'이 되어간다고 얘기합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시인이 '말(言) 대신 시(詩) 쓰기'를 택한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시인이 많은 까닭, '너무 불편한 것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다만, 저 불편한 것들 때문에 시인이 계속 시를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다행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신철규 시인은...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등이 있습니다. 2019년 제 37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주영헌 시인의 시낭독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Mexbzo2GeLk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지은이), 문학동네(2017)


심장보다 높이

신철규 (지은이), 창비(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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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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