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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가 최근 출간한 8번째 평론집 <비평의 아포리아>.
 이경재가 최근 출간한 8번째 평론집 <비평의 아포리아>.
ⓒ 도서출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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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그 이름은 들어봤을 루트비히 베토벤(1770~ 1827)은 생전에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다. 삶이 유한한 어떤 인간도 내 음악을 온전히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오만한 천재다운 발언이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틀렸다. 사후 200년이 가까워오는 현재, 교향곡부터 소품까지 베토벤의 음악은 '음악평론가'들에 의해 거의 대부분 해석됐다. 음악에 창작의 영역이 있다며 분명 해석의 몫도 존재할 터. 베토벤은 그걸 간과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시인과 소설가가 언어 조탁의 새로운 형식, 전형과 전위성을 바탕으로 시와 소설을 창작한다면, 문학평론가는 이것들을 해석하는 것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46세 문학평론가, 8번째 평론집을 내다

비단 한국 문단만이 아니다. 전 세계 작가들 사이에 떠도는 농담 같은 진담이 있다. "시인이 삶의 절반을 술 마시는 것에 투자한다면, 평론가는 읽는 것에 생의 절반을 바친다"는 이야기.

무언가를 해석하려면 해석의 대상이 되는 것에 치밀하고 정확하게 접근해야 한다. 문학평론가의 해석 대상은 바로 책. 독서량이 보통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수밖에 없다.

최근 8번째 평론집(전체 저서는 16권)을 상재한 문학평론가 이경재(숭실대 국문과 교수)는 많이 읽는 것과 더불어 많이 쓰는 사람으로도 학계에서 이름이 높다.

46세면 한국에선 중견급 평론가의 범주에 속한다. 나이만으론 중진이나 원로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1년에 원고지 1만 장쯤을, 그것도 십수 년간 그치지 않고 써오고 있는 이경재이니 저작의 숫자만으로 보자면 중진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가장 최근 출간된 이경재의 평론집 제목은 <비평의 아포리아>(강). 철학용어인 아포리아(Aporia)는 '어려움'이나 '난관'을 의미하는 단어다.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행하고 있는 작업의 힘겨움을 솔직하게 드러낸 간결한 제목이 먼저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전작 <단독성의 박물관 > <재현의 현재>를 통해 '소설'이란 텍스트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을 검증 받은 바 있는 이경재는 40대에 이르러 <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 <명작의 공간을 걷다> 등을 쓰면서는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공간과 문학의 연관성'에 천착하고 있다.
 
책이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작품을 읽고자 한 욕망의 결과물이라 말하는 문학평론가 이경재.
 책이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작품을 읽고자 한 욕망의 결과물이라 말하는 문학평론가 이경재.
ⓒ 이경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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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할 정도로 자세히 읽는 이유 

그렇다면 근작 <비평의 아포리아>는 어떤 소설들을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해석한 것일까? 이경재 스스로는 "이번 책에 실린 글들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작품을 읽고자 한 욕망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이경재가 해석의 대상으로 삼고 그물질 한 소설은 원로 황석영과 김훈에서부터 비교적 신진에 속하는 해이수와 손보미까지 그 프리즘이 넓다.

이 교수는 '재현과 환기' '한국문학의 수호성인들' '새로운 가능성의 근거'라는 소제목 아래 수십 명의 소설가들이 써낸 수십 편의 소설을 꼼꼼하게 해석한다. 선배 문학평론가들의 작업을 상세하게 들여다본 책의 4부 '한국문학 비평의 맥락들' 역시 흥미롭다.

소설은 아주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예술 장르다. 존재에의 지향, 상처의 극복, 타자에 대한 이해 가능성과 불가능성,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 가족이라는 형식의 근원적 한계, 한국 현실의 저변에 대한 탐색, 삶의 심연이 지닌 폭력과 희망… 이 모두가 소설의 주제와 소재가 될 수 있다.

이경재는 마구 흩어져 있는 듯 보이는 개별 소설가들의 작품을 하나의 의미망 안에 묶어내면서 텍스트가 내재하고 있는 '숨은 그림'을 묵묵히 찾아가고 있다. 이는 <비평의 아포리아>만이 아닌 그의 이전 책들에서도 이미 확인된 사실.

인천에서 태어난 이경재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랬기에 이번 책의 마무리 작업은 부산 외곽의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이루어졌다. 어부가 바다에서 물고기를 건져 올려 삶을 이어가듯, 평론가는 일생 언어의 바다에서 의미의 알맹이를 찾아가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으로 달리고 있는 이경재의 치밀한 소설 읽기 과정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궁금해 할 이들이 적지 않다. <비평의 아포리아>는 그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 중 하나다.

서울대 국문과에서 공부한 이경재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됐다. 일찌감치 밥벌이 수단이 해결됐음에도 연구와 집필에 게으르지 않으니, 그는 현재보다 미래가 주목되는 평론가다. 지난 2018년엔 김환태 평론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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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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