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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닦는 황 대리 책 표지
 지구 닦는 황 대리 책 표지
ⓒ 더숲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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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 9년 차 대리의 비밀 

필자는 은평구에서 한 달에 한 번 청년들과 쓰레기 줍기(플로깅)를 한다. 줍고 주워도 끝이 없는 연신내 거리의 쓰레기. 거리에 수북이 쌓여 있는 담배꽁초를 보면 소위 '현타'가 온다. 한 번은 지나가는 한 어르신이 "버리는 사람, 줍는 사람 따로 있네"라며 혀를 차고, 측은해 하셨다. 그래도 줍는다. 함께하는 은평 청년들과 전국 방방곡곡에 '와이퍼스'가 있어서.

와이퍼스(WIPERTH)란? '닦는 사람(Wiper)'과 지구(Earth)'의 합성어로 '지구를 닦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600여 명에 육박하는 단톡방에서 와이퍼스 회원들은 플로깅(조깅하며 쓰레기 줍는 운동) 인증샷을 공유한다. 전국 각지에서 홀로 쓰레기 줍던 이들을 한데 모은 인물은 유명한 환경 시민단체도, 그레타 툰베리 같은 어린 학생도 아닌, 평범한 직장 9년 차 대리 황승용씨다.

황씨는 '지구를 닦는 모임의 장'이란 의미로 '닦장'으로 불린다. '지구의 날(22일)'이 끼어 있는 따사로운 봄날의 4월, 황 대리의 책 발간 소식이 들려왔다. 반가웠다. 제목은 <지구 닦는 황 대리>. 직접 읽어 보니, "조금만 더 빨리 쓰레기 주울 걸"이라며 여러 번 아쉬워하던 저자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쓰레기 줍는 데 진심이다. 근데 반전이 있다. 돈이 되는 환경 공모전 참여가 첫 계기란다. '코에 빨대가 낀 거북이 영상'을 찾아본 이유는 지극히 소시민적 본능에서 비롯됐다. 혹여 이 같은 배경에 배신감 느낀 독자가 있다면 비건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며 사죄하겠단다. 실제 기후변화 탄소중립 시대에서 환경보전은 경제적 이득으로 환원되기도 한다. 돈 벌기 위해서라도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이니, 과거의 황 대리도 이젠 당당히 허리 펴도 되지 않을까. 

환경 공모전을 준비하며 본 두 영상으로 저자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거북이 코에 빨대가 낀 영상'과 '여덟 살짜리 플로깅 전문가, 라이언 힉스' 관련 영상이 그것. 그 후 황 대리의 일상은 플로깅으로 물든다. 출퇴근길에 쓰레기를 줍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점점, 줍고 담는 속도도 신속해졌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햇병아리 시절이 있었단다. 길가에 나뒹구는 "페트병, 담배꽁초, 비닐, 캔, 종이컵"에 집게를 갖다 댄 역사적인 순간, 그도 우리처럼 쭈뼛쭈뼛 주위 눈치부터 살폈다.

쓰레기 주워본 사람은 공감할 텐데 허리를 숙여 계속 줍다 보면 파란 하늘과 오가는 사람도 어느 순간부터 시야에서 사라진다. 망막 끝에 맺히는 사물은 땅에 뒹구는 폐기물뿐. 저자는 플로깅을 시작한 후 채 100미터도 못 가서 준비한 봉지를 다 채웠단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기라도 한 걸까? 고민하다 보면 결국 배출량 원천 차단, 즉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로 생각이 모인다. 

흔히 한 사람의 친환경 인식이 형성되면 그다음 태도가 변하고 행동까지 동반된다고 한다. 인식-태도-행동까지 변화되는 시간의 흐름은 사람마다 다른데 저자의 속도는 상당히 빠른 경우다. 첫 플로깅 당일부터 이미 주문한 김밥을 담아갈 수 있도록 개별 용기를 마련했다. 연이어 대나무 칫솔로 플라스틱 제품을 대체했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 곱하기 오천만 명을 해 보면 무게감이 달라진다"라는 대목에서 그의 신념과 행동력이 드러난다.
 
50km 산악 마라톤 대회에서 '쓰레기 봉투를 달고 플로깅하며' 참가한 와이퍼스 닦장 황승용 씨
 50km 산악 마라톤 대회에서 "쓰레기 봉투를 달고 플로깅하며" 참가한 와이퍼스 닦장 황승용 씨
ⓒ 황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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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황 대리는 원래 2km도 한 번에 뛰지 못한 저질 체력의 소유자였다. 그랬던 그가 플로깅에 꽂히더니 산악마라톤을 하겠다는 발칙한 목표를 세운다. 이틀에 한 번씩 달리기 연습하더니 10일 후 5km, 보름엔 10km를 1시간 내 주파 가능한 몸으로 만들었다. '지구를 닦는 친환경 러너'라는 표지와 생분해 쓰레기봉투를 등에 달고 50km 산악 마라톤과 10km 텀블런(텀블러를 들고뛰는 이벤트)을 완주했다.

이제는 인천, 강화도, 부산, 제주 등 해상, 해변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의 열정과 진심이 입소문을 타면서 조중동 내지 KBS, SBS와 같은 메이저 언론에서 초청하는 플로깅계 인플루언서가 됐다.

황승용 작가는 대외적으로 인정받으면서 개인적으로도 1) 채식단을 통해 소비 총량 지출액이 줄고 2) 다이어트에 성공했으며 3) 마음 안정과 선한 사람들과의 인연까지 덤으로 얻었다고 강조한다. '아, 조금만 더 빨리 쓰레기 주울 걸'이라며 소회하는 그 심정이 이해됐다.

2020년 9월, 황 대리는 40명이 전국에서 모아온 꽁초 7000개비를 국내 담배업체 KT&G에 손 편지와 함께 보냈다. 1) 꽁초에서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리고 2) 꽁초 필터를 분해 가능 소재로 교체하며 3) 꽁초를 모아 오면 담배 재구매 시 인센티브 제공하라는 의미였다.

기업 입장에선 불쾌하겠지만 "꽁초가 산으로 바다로 골목을 돌아 생태계를 위협" 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의 발로였다. 그는 다른 시민들이 앞서 전개한 '빨대 어택'과 '스팸 뚜껑 반납 운동'에 영감을 받아 꽁초 어택을 기획했단다.

물론 캠페인 한 번으로 변할 기업 생태계라면 지금의 쓰레기 대란은 문제조차 되지 않았을 터. 묵묵부답인 해당 기업을 상대로 와이퍼스는 2, 3차 꽁초 어택을 이어갔다. 줍는 참여자 수와 보낸 꽁초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마지막 어택에 송부된 꽁초는 자그마치 8만 개. 해당 제조사 사회공헌부로부터 답변을 받기에 너무나도 충분했다. 공적으로도 와이퍼스는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황승용씨가 대표로 제23회 지속가능발전대상 우수사례로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한 것이다. 
 
와이퍼스 2주년 추억플로깅(22.3.21)을 기획, 운영한 황승용 와이퍼스 닦장
 와이퍼스 2주년 추억플로깅(22.3.21)을 기획, 운영한 황승용 와이퍼스 닦장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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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친환경 인식을 형성해가는 자전적 에세이 성격을 띠는 한편 환경문제의 본질을 파헤치는 르포적 특성도 가미돼 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녹색 박스엔 독자들이 책을 읽다가 떠올릴 궁금증을 마치 예견한 듯, 알기 쉬운 풀이를 담아놨다.

비닐봉지의 영어 표현인 'plastic bag(플라스틱 백)'에 대한 소개부터, 타 도시의 플라스틱 보증금 환급 제도(CRV, California Redemption Value)와 국내 수치 간 비교까지. 환경과 관련된 정보들을 잘 배치해놨다. 입문자뿐 아니라 필자와 같은 환경 분야 종사자도 함께 생각해 볼 만한 담배꽁초나 어업 문제, 그리고 기업의 그린워시나 동물권 이슈 등에 대해 진솔하게 의견을 내비친다.

한편 환경문제가 왜 풀기 힘든지 느낀 대목도 있다. 저자는 캔과 페트병을 넣으면 포인트로 전환해주는 네프론 기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국내엔 소주, 맥주병을 제외하고는 100원 이상의 보증금을 주는 순환 제도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대안이 될 수 있단 판단에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이어도 국가 제도나 지역 특성에 따라 예산 잡아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 있다. 국내 네프론 사업의 경우, 이용자가 거의 없어 주 1회 회수조차 안 되는 사례가 있었다. 은평구의 경우엔 결국 사업을 조기 종료했다. 폐기물 인센티브 지급에 있어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제도와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다면 좋은 환경 기술, 장비도 예산 낭비와 고철 폐기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상기해 본다.

황승용 저자의 등에는 거북이와 병아리 문신이 있다. 환경과 동물 지킴이로서의 결의가 느껴진다. 그는 여전히 회사에서 대리지만, 이젠 와이퍼스 비영리 사단 법인을 준비하는 예비 이사장이기도 하다.

그가 평범한 직장인, 단순 N잡러로 보이는가? 책에서 던진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돈을 많이 벌어 최고급 마스크를 사 주는 분이 좋은 부모일까요. 아니면 모든 아이가 마스크 쓸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분이 좋은 부모일까요?"

저자는 플로깅을 시작한 이래, 환경부 장관을 직접 만나 꽁초어택 손 편지를 건네길 소망해왔다. 그리고 꿈은 이뤄졌다. 다만, 한 부분만 빼고. 황 대리는 대한민국 환경부 수장에게 직접 손 편지를 건네지 않았다. 대신 미래세대의 주역인 어린 소녀에게 그 일을 맡겼다.

겸손이 몸에 밴 그는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 말하지만 독자 의견이 궁금하다. 필자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 책은 대한민국 1, 2세대 환경운동가 선배들을 잇는 3세대 대표주자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겠다고.
 
2022.3.21 청명한 날 여의도 공원에서 진행한 와이퍼스 2주년 추억플로깅(22.3.21) 현장
 2022.3.21 청명한 날 여의도 공원에서 진행한 와이퍼스 2주년 추억플로깅(22.3.21) 현장
ⓒ 와이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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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닦는 황 대리 - 플로깅으로 퇴근 후 인생이 바뀐 어느 월급쟁이의 친환경 라이프

황승용 (지은이), 더숲(2022)


태그:#와이퍼스, #저와 함께 지구 닦지 않을래요, #플로깅, #쓰레기 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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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프리랜서 기자/에세이스트 前)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 농촌진흥청 KOPIA 볼리비아 / 환경재단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태국 / (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 (졸)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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