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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아침 비행기는 항상 긴장된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이상하게 빠듯하다. 서둘러 비행기에 타고 나니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아직은 아침 기온이 차다. 양팔을 문지르며 혼잣말을 했다.

"아, 조금 춥네."

생각보다 목소리가 커 머쓱해진다. 큰일이다. 벌써 입이 근질근질하다. 이제 막 혼자 여행이 시작됐는데.

혼자 간 제주 여행, 남편을 만났다
 
소품숍에서 통통하고 귀엽게 그려주신 캐리커처.
 소품숍에서 통통하고 귀엽게 그려주신 캐리커처.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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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도착해서 처음 간 곳은 함덕해수욕장이다. 맛집을 검색하니 혼자 가기엔 과한 고깃집이나 갈치구이 집이 많다. 고민 끝에 수제 햄버거 가게로 갔다. 혼자라 그런지 맛을 잘 모르겠다.

후다닥 먹고 나와 함덕 별다방에 갔다. 그곳에서 책도 읽고 이후의 일정도 계획했다. 소품숍 오픈 시간에 맞춰 나와 사고 싶은 소품들도 사고 캐리커처도 그리고 근처 서점도 몇 군데 들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지잉지잉. 오후 5시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난 지금 김녕 해수욕장으로 가는 버스 탔어. 이쪽으로 올래?"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다. 내가 먼저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제주도 숙소를 예약했고 남편은 이런 날 부러워했다. 며칠 전, 이렇게 저렇게 회사 일정을 조정하더니 1박 2일로 제주도에서 캠핑을 하겠단다. 하필 내가 가는 그 기간에! 집순이인 딸은 엄마도 아빠도 따라가기 싫고 집에 있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하루 친정엄마, 아빠의 도움을 받았다.

길 찾기 앱으로 확인해 보니 함덕에서 김녕까지 그리 멀지 않다. 버스를 타고 김녕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남편을 기다리며 바닷가에 앉아 있는데 웨딩사진을 찍고 있는 예비부부들이 많다.

센 바닷바람에 드레스가 한껏 펄럭인다. '지금 열심히 사진 찍으시는 것처럼 다들 잘 사셔야 해요!' 마음속으로 힘찬 응원을 보낸다. 한참을 구경하는데 결혼한 지 12년 된 남편이 도착했다. 여기서 만나니 새삼 반가워 손을 크게 흔들었다.

"아까 내가 보낸 링크 봤지? 그 횟집 어때? 평이 좋던데."
"좋아. 배고프다."


우린 만나자마자 밥 얘기부터 한다. 그렇다, 우리가 제주에서 만난 목적은 밥이다. 혼자서는 먹고 싶은 메뉴를 먹을 수 없으니 각자의 여행 중에 잠깐 만나 같이 식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자리를 잡고 각자의 무거운 배낭을 발아래 내려놓는다. 회와 딱새우를 주문하고 사케도 한 병 시킨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말하며 첫 잔을 경쾌하게 부딪쳤다.
 
회와 딱새우를 주문하고 사케도 한 병 시킨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말하며 첫 잔을 경쾌하게 부딪쳤다.
 회와 딱새우를 주문하고 사케도 한 병 시킨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말하며 첫 잔을 경쾌하게 부딪쳤다.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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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속 얘기를 잘 하지 않아 나 혼자 남편의 기분을 예측할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다. 새벽에 만나고 오후 늦게 만난 건데도 반갑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난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말한다.

"짜잔, 나 오늘 점심에 이거 먹었지. 그 다음엔 함덕 별다방에 갔어. 여기 전망 좋지?"
"여기까지 와서 별다방이야? 진짜 웃긴다."
"길치가 지도 보고 다니느라 좀 긴장했나 봐. 익숙한 곳에 가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남편과 사진을 보며 깔깔 웃었다. 이야기는 점점 반경을 넓히더니 처음 만났을 때 얘기, 처음 여행 간 얘기까지 나아간다. 또 휙 방향을 틀어 요즘 사춘기가 된 딸과 어떻게 잘 지내야 할지, 남편의 요즘 회사 이야기도 나눈다.

남편과의 대화가 재미있다. 아쉽지만 텐트를 쳐야 해서 깜깜해지기 전에 식당에서 나왔다. 텐트를 이리 잡고 저리 당기며 공간을 만든다. 바로 앞이 바다라 바닷바람에 텐트가 무사할지 걱정이다.

"밤에도 무사하길 바라. 난 간다! 가서 전화할게."

난 내가 예약해 놓은 게스트하우스로 가고 남편은 야영장에 남았다. 자기 전, 남편과 통화하니 다행히 바닷바람이 그렇게 세지 않고 파도 소리가 너무 좋다고 했다. 우린 서로의 다음 날 일정을 공유했다. 남편은 특별한 일정이 없다고 했고 난 오전에 근처 오름에 갔다가 성산 일출봉에 오르겠다고 했다.

일정이 없으면 성산 일출봉에서 만나 점심을 먹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우린 밥 친구니까. 전화를 끊으며 통화 시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시간 넘는 통화는 연애 이후 거의 처음이 아닌가, 하고 잠깐 생각했다.

먼저 떠난 남편의 제안... 신이 났다

다음날 점심 우린 성산 일출봉 앞 해장국집에서 다시 만났다. 남편은 밤 사이 쉬지 않고 계속 들리는 시끄러운 파도 소리와 추위에 고생한 이야기를 했고 난 게스트하우스 건물에 나만 묵었는데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 무서웠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루 새 꼬질꼬질해진 우리는 서로 고생했다고 위로하며 뜨거운 국물로 나른한 정신을 깨웠다.

"이제 어디 갈 거야?"
"난 계속 업무 전화가 와서. 서울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난 송당리 갈 거야. 거기 가고 싶은 서점이랑 카페가 있거든."


마침 공항 가는 버스와 송당리 가는 버스 노선이 같아 우린 같은 버스를 탔다. 남편은 비행기 시간이 조금 여유 있다며 나를 따라 송당리에 내렸다.

그런데 아뿔싸. 가려고 했던 서점이 문을 닫았다. 퍼뜩 낮에도 와인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 좋은 곳이 근처에 있다는 게 생각났다. 애주가인 남편은 당연히 환영이다. 가게 안의 파릇파릇 식물들이 싱싱한 기운을 나누어준다. 우리도 덩달아 흥이 난다. 처음에는 와인과 안주에 대한 간단한 대화를 나누다가 요즘의 고민을 나누다가 우리 이야기를 한다. 우리.

"우리 별로 안 친하잖아."
"맞아. 안 친하지. 그냥 서로 맡은 역할만 하고 있지."


각자 외로웠지만 '다들 그렇지 않나' 하며 묻어 두었던 감정의 상자가 열렸다. 이건 '따로 또 같이' 여행의 마법이다. 계속 같이 다니는 평소의 여행이었다면 마음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맛있는 밥을 먹으려고 반갑게 만나고 그동안의 일을 털어놓는 소중한 시간 속에서 서로의 귀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거 우리 부부의 여행 콘셉트로 하면 어떨까?"
"그럴까?"


신이 났다. 다음 여행지는 강릉이 어떨까, 하고 말한다. 서로 좋아하는 곳을 다니다 잠깐 만나 밥 한 끼 같이 먹는 여행. 그 한 끼는 얼마나 엄선한 음식일 것이며 또 그 한 끼에 얹어질 말들은 얼마나 신나는 말들일까.

남편의 비행기 시간이 다가와 버스를 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를 기다리며 난 남편의 사진을, 남편은 내 사진을 찍는다. 매번 아이만 찍다가 오랜만에 서로의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손을 잡는다. 버스를 타는 남편에게 힘껏 손을 흔든다.

남편을 보내고 난 근처의 다른 오름에 갔다. 원래 혼자 온 여행이었는데 괜히 더 외로운 것 같다. 외로움을 떨치려 앞뒤로 크게 손을 흔들며 걷는데 버스에 탄 남편의 카톡이 왔다.

'이번 여행 너무 좋았어. 이런 여행 자주 하자!'

난 배시시 웃으며 바로 좋다는 이모티콘을 남겼다. 우리처럼 10년 이상 된 데면데면한 부부에게 '따로 또 같이' 여행을 추천한다. 각자 여행하다 하루에 밥 한 끼 같이 먹는 여행. 아이가 있다면,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겠지만 분명 그럴 가치가 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좋은 부부 관계란 말도 있으니 날 좋은 봄날, 한 번 도전해 보시길.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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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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