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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에 있는 대가야고분군.
 경북 고령에 있는 대가야고분군.
ⓒ 대구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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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구방송총국이 지난 19일 개국83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 <대가야, 비밀의문-잊힌 역사를 풀다>를 방영했다.

<대가야, 비밀의문-잊힌 역사를 열다>는 지난 9개월간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대가야의 흥기와 해외 진출에서 패망까지의 과정을 한편의 다큐멘터리에 오롯이 담았다.

가야는 조그만 국가들의 연맹체 형태로 뭉쳤다가 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끝내는 신라에게 하나하나 점령당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후기가야로 대표되는 대가야는 달랐다. 고령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 건국신화와 세력 확장, 황금 위세품을 이용한 적극적 해상교역까지 처음부터 강국을 향한 꿈과 노력이 있었다.

경상북도 고령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과거 대가야의 중심지였다. 주산 능선을 따라 들어선 700여 기의 무덤들, 주로 왕과 귀족의 무덤인 지산동 고분군 중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5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44호분이었다.

서른일곱 명이 넘는 다양한 직종의 순장자들, 수준 높은 가공기술이 엿보이는 철기 갑옷과 투구,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품, 또 무덤의 주인이 강력한 권위를 가졌음을 상징하는 금관과 금공예품, 그중 가장 주목할 것은 '대왕' 즉 왕조시대의 최고 지배자를 뜻하는 명문이다. 이는 대가야가 고대사회에서 국가체제와 더불어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대가야계 무덤과 유물이 발견된 장소의 공통점은 대부분 섬진강 유역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끝은 구례와 광양, 하동을 거쳐 바다로 향한다. 섬진강 물길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지만, 대가야에서 섬진강까지는 큰 산맥을 넘어야만 했다. 백두대간을 넘어 합천-거창-함양-남원의 육로와, 곡성-구례-하동의 수로를 거쳐서 마침내 대가야인들은 일본으로의 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일본어 사전에 나오는 카라(가야)라고 하는 말을 찾아보면 '일본말을 모르는',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또는 '외국 문물'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 최초의 카라, 외국 문물, 외국인들은 가라, 즉 가야였던 것이다. 그 흔적으로 오사카 사천왕사 '왔소' 축제가 있다.

이 축제는 쇼토쿠 태자가 사천왕사를 지은 것을 기념하는 축제다. 축제 참가자들은 행진을 하며 연신 친숙한 한국어 '왔소'를 외친다. 일본 해안에 도착한 한반도인들을 보며 '왔소'라고 반긴대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중 대가야는 일본에 없던 새로운 문물들을 전하면서 큰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축제가 열리는 오사카항 주변으로는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 세토내해에 있다. 세토내해는 대가야가 일본의 중추로 이동하기 위해 이용했던 물길이다. 대가야인들은 이제 이를 이용, 일본 전역으로 진출해 더 많은 일본의 호족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대가야인들은 이곳에서 말을 키웠다. 와카야마현의 오오타니 고분에서는 철제로 만든 마구가 출토됐다. 특히 말의 얼굴을 감쌌던 말의 투구, 즉 마주는 거의 완벽한 상태로 출토되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군마현 역시 말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과 유구가 발견되었고, 군마현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모아놓는 자료관에는 화산재를 뒤집어쓴 온전한 상태의 고분인이 전시되어 있다. 원형 그대로 유지한 철제 갑옷을 입은 자가 갖고 있던 유품들은 한반도계의 유물로 판명되었다.
 
대가야고분군을 발굴하는 모습.
 대가야고분군을 발굴하는 모습.
ⓒ 대구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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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대가야 양식의 유물들이 출토된 고분들이다. 지배자의 힘을 강조하는 금공예품은 일본 전역에서 300여 점이 발견되었는데, 오사카 북동쪽 후쿠이현에서 1906년 은동관이 발견됐다. 넓은 판 모양에 풀이 솟은 듯한 왕관은 지산동 32호분에서 만들어진 금동관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260기의 고분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이치하라고분군에서는 당시 일본에서 볼 수 없었던 봉황이 새겨진 모습의 환두대도와 원통형의 귀걸이 장식 등이 발견되었다.

1500여 년 전, 대가야가 금을 채굴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천 금광이 고령군 운수면 일대에 다섯 군데 발견되었다. 주변에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 금광석을 캐냈던 광산도 세 군데나 있었다. 이 광산들이 대가야가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로 급성장한 기반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관가야가 낙동강을 이용해 철기제품을 수출하며 발전을 이뤘던 것처럼, 대가야는 화려한 금공예품을 만들어 섬진강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일본과 교류를 하며 국가의 기틀을 잡을 수가 있었다.

지난해 2021년 12월, 연조리 고분군에서는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대가야국의 비밀을 알려주는 현장이 발굴되었다. 아랫단은 원형, 윗단은 정사각형인 형태의 제단으로서 대가야에 국가제사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제의시설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주목받지 못하고 잊힌 가야의 역사, 하지만 가야인의 정신을 이어주는 대가야의 흔적은 계속되어 발굴되고 있고, 대가야의 신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 프로그램은 대구경북 시청자들에게 경주의 불교문화권과 안동영주의 유교문화권에 비해 관심이 덜했던 고령 중심의 대가야 문화를 조명함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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