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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민 정의당 전 대변인이 반려묘 '참깨'와의 좌충우돌 동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당인, 1인 가구 여성 청년, 그리고 반려묘 참깨의 집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말]
대학 졸업을 앞둘 무렵, 이력서를 쓰면서 알았다. 학교 수업, 알바, 자원활동까지 모든 시간들이 테트리스마냥 빽빽하게 시간을 채우며 보내왔다는 걸 말이다. 빈틈은 없었다. 나는 앞선 일이 끝나면 이어달리기를 뛰듯이 바로 연달아 해야 할 일을 시작하게끔 움직였다.  

왜 그렇게 지냈을까. 돌아보면 '쉰다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치 내가 쓸모없는 사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항상 무언가를 하는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와 엄마의 '쉼' 없는 일상

버스 운전을 오래 한 아빠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을 반복했다. 이 말만 보면 '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디테일을 따져보면 현실은 달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한 아빠는 그날 밤12시가 다 되어 들어왔다. 그리곤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잠들었고 그 다음날을 쉬었다. 당시 아빠는 "쉬는 날은 쉬는 게 아니야. 쉬는 게 아니라 지쳐 쓰러져서 자는 거지"라고 말했다. 세상은 주6일제에서 주5일제로 변하고 있었고, 토요일에는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빠의 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아빠와 우리 가족이 3박 4일로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건 아빠가 정년퇴직을 하고 개인택시를 운행하며 일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였다. 

엄마의 경우는 더 암담했다. 공장에서 주간으로 일하던 엄마는 어느 날, 야간으로 바뀌었다며 저녁에 출근해 아침에 퇴근하기 시작했다. 철없는 딸이 본 엄마의 모습은 '대기조'처럼 보였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지만 다시 가족의 아침을 차리는, 또 다른 일터에 출근한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엄마에게도 쉬는 시간은 말 그대로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쉼이라 쓰고 사실 쉼이 아닌, 이런 모순적인 상황은 우리 엄마와 아빠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빠와 엄마의 '쉼 없는 일상'은 내 세상의 전부였다. 그 덕분에 나는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활동을 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나의 '쉼'에서의 부채감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살아가는데 '내가 정말 쉬어도 될까' 하는 끝없는 질문을 안고서 말이다. 

참깨 덕분에, '쉼'을 알았습니다 

2021년 3월, 당 대변인의 임기가 끝났을 때, 나는 내 스스로에게 '쉬어도 괜찮을지' 물어보곤 했다.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지쳐있었지만 덜컥 멈춰선다는 것을 선택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 앞에선 '지금은 누가 뭐라 하든 쉬어가겠다'며 여유 있는 척 굴기도 했지만 불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프티콘을 준다고 하는 말에 혹해서 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나는 그 설문조사 창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어떤 보기로도 나의 상태를 설명할 수 없었고, 그렇게 '쉬는 나'를 마주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심쿵 참깨
 심쿵 참깨
ⓒ 조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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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상태를 '집사의 역할'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 뭐 했어?"라고 묻는 주변 사람들의 물음에 "참깨랑 놀았어", "참깨 응아 치웠어", "참깨 밥 줬어"와 같이 참깨의 집사로서 한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내게 집사로서의 역할은 하루하루 나라는 존재를 확인시켜주었고, '집에 있어도 괜찮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참깨 덕분에 집에서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었다. 사실상 내가 참깨를 돌본 것이 아니라 참깨가 날 돌본 셈이었다. 

'우리'의 일상이 행복하기 위해선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나는 대학원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다시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참깨는 이전보다 많은 시간을 홀로 집에서 보내고 있다. 

참깨와 말이 통한다면 다시 외출하기 시작한 내 일상을 참깨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텐데. 참깨가 갑작스레 나의 변화를 마주하게 된 건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 이전과 달리 바빠진 일상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작년 8월부터 <오마이뉴스>라는 공간을 통해 참깨 집사로서 일상을 담아왔던 이 일을 이제 끝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자고있는 쿨쿨이 참깨
 자고있는 쿨쿨이 참깨
ⓒ 조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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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이 참깨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걸 조금씩 느낀다. <오마이뉴스>에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해왔던 시간을 이제 온전히 참깨와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바꾸며 내게 또 다른 쉼을 주고 싶다. 집사인 내가 행복해야 우리 참깨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면서 말이다.

'혜민의 참깨와 함께'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세상에 있는 고양이가 모두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었으면'이란 마음만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욕심이 더 생겼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집사들도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집사 곁에 있는 고양이도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혜민의 참깨와 함께' 연재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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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의당에서 활동하는 혜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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