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인류의 역사에는 로마, 몽골제국 등 한 시대를 지배한 강대국들이 있었다. 현재는 누가 뭘라해도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현재 방대한 영토와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현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모든 강대국들의 성장과정이 그러하듯, 화려한 미국 역사의 탄생 이면에도 정복자들에게 의하여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잊혀진 희생자들의 눈물이 있었다.
 
4월 19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미국사 전문학자이자 전남대학교 사학과 김봉중 교수가 강연자로 출연하여 미국이 지금의 방대한 영토를 얻으며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서부개척 시대'의 빛과 그림자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프런티어(Frontier)는 사전적 의미로 국경, 경계에 해당한다. 독립 이후의 미국에게는 인간의 발이 닿지않은 미개척지,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라는 의미로 인식되었다. 신생국가인 미국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프런티어를 개척하려고 했다. '프런티어 정신'은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을 만든 원동력으로 꼽힌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원주민 학살이었다. 미국은 독립 이후 전쟁과 매입을 통하여 지금의 광활한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디언들을 학살했다. 1890년 12월 미국인들은 인디언 수우족 300명을 집단학살했고, 추위에 얼어버린 인디언들의 시체가 쌓여있는 참혹한 광경을 촬영한 기록사진은 큰 충격을 줬다.

'서부개척 시대'의 빛과 그림자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미국 개국 당시 아메리카는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 수많은 열강들의 식민지로 분할된 상태였다. 신생국가 미국의 시작은 동부의 13개주에 불과했다. 미국은 약 100여 년 만에 끊임없는 영토확장을 통하여 열강들을 밀어내고 북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미국은 1783년 파리강화조약을 통하여 영국의 지배령을 확보하면서 독립과 동시에 북아메리카의 1/3에 해당하는 지역을 차지했다. 특히 당시 교통의 요충지였던 뉴올리언스는 프랑스-스페인-미국의 영토분쟁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던 지역이었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뉴올리언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뉴올리언스를 포함한 루이지애나 영토의 매입을 추진한다. 제퍼슨이 내건 명분은 재산이 없어서 투표권이 없는 가난한 동부의 사람들을 위하여 루이지애나를 매입하면 더 넓은 땅을 확보할 수 있기에 빈 땅 개척→토지 재산 확보→투표권으로 이어지는 논리였다. 미국 의회의 반대에도 제퍼슨은 투표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공평하게 누리자는 '자유의 확장'을 명분으로 제시하며 과감하게 추진을 밀어붙였다.
 
놀랍게도 프랑스는 자국민들에게 통상 특권의 허용, 루이지애나 주민에게 다른 미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루이지애나를 전격 매각한다. 당시 미국이 프랑스에 지불한 가격은 1500만 달러(현재 시가 한화 약 3900억)로 한반도의 약 20배가 넓은 지역을 매입한 것이다. 헐값에 루이지애나 매입을 결정한 것은 당시 프랑스의 황제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유럽의 패권을 놓고 각지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던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 식민지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은 미국 역사상 가장 현명한 거래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순식간에 2배로 넓어진 땅을 관리하게 된 미국의 다음 과제는 이미 오랜 기간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과의 관계였다. 19세기초 북아메리카에는 약 600여 개의 인디언 부족이 살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수우족, 코만치족, 나바호족은 아메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원주민 부족으로 꼽힌다. 원주민들은 사람, 동물, 사물까지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기에 자연과 공존하면서 살아가야한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운명이 서부개척에 달려있다고 믿었던 미국인들에게는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원주민들이 걸림돌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미영전쟁과 플로리다 매입의 영웅으로 불린 미국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에게는 '인디언 킬러'라는 또다른 별명이 있었다. 잭슨은 원주민을 이주시키면 미국이 인구, 부, 권력 면에서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1830년 원주민들을 보호구역으로 쫓아내는 '인디언 추방법'을 제정한다.
 
조지아주에 거주하던 체로키족은 일찍이 미국인들의 문명을 받아들여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1829년 체로키족 마을의 구역이던 달로네가에서 금광이 발견된 이후, 미국 정부는 금 채광에 방해가 되는 원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하여 강제 이주를 추진했다. 체로키 원주민들은 서부의 오클라호마로 강제 쫓겨났고 다른 부족들도 10년여에 걸쳐 여러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인디언 추방법'의 시행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많은 원주민들이 강제 이전 과정에서 굶주림과 병마, 추위 등으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희생당했다. 1만 4000여 명에 이르렀던 체로키 부족은 전체의 약 1/3에 이르는 4000여 명이 비명횡사하는 참극을 겪은 뒤에야 겨우 오클라호마에 도착할수 있었다.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불리는 이 비극적인 사건은 미국 개척사의 가장 어두운 장면 중 하나로 회자된다. 안타깝게도 원주민들은 눈물의 길 이후로도 정착하지 못하고 남북전쟁과 철도사업 등의 영향으로 수 차례 살던 땅을 떠나야했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빗대며 밧줄에 꽁꽁 묶인 '거인' 체로키족을 약탈-탄압하는 소인 미국인들을 풍자한 그림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영토확장에 대한 미국의 야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1835년 텍사스 독립전쟁,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 등으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지역을 편입하며 태평양 연안까지 진출한다. 여기에 러시아로부터 49번째로 알래스카를 매입하고 50번째로는 하와이를 합병하며 지금의 미국 영토를 완성하게 된다.
 
당대 미국인들은 땅을 개척하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믿었고 이는 1845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L. 오설리반이 처음 주장한 '명백한 운명'이라는 용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대륙을 완전히 뒤덮는 것이 명백한 운명"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1872년 존 가스트가 그린 동명의 그림에는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여신과 함께 서부로 이동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이전에도 아메리카를 지배한 열강들이 '정복'에 가까웠다면 미국은 그 땅을 개척하고 발전시켜 '정착'하는 것을 신의 소명으로 여겼다는 것.
 
캘리포니아는 서부 개척의 중심이자 지금도 미국 개척정신의 상징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캘포니아의 경제 규모만 해도 세계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지금의 경제대국 미국을 만드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 합병 이후 캘리포니아는 금광 발견 소식이 알려지며 미국인들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골드 러시 현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광대한 캘리포니아에서 금을 발견한 사람들은 소수였고 대부분은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 광부들이 넘쳐나면서 작업환경상 자주 찢어지는 바지를 보완하기 위하여 질긴 군용텐트를 활용하여 옷을 만드는 아이디어가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청바지'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정착민들은 주민 모임을 통하여 자체적인 규칙과 질서를 확립해나갔고 이는 중심으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1862년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 의하여 추진되어 1869년 완공된 대륙간 철도건설은 급속한 서부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또한 이 과정에서 등장한 신종 직업 카우보이는 이후 서부개척의 상징이 된다. 카우보이는 실제로는 말그대로 소몰이꾼이자, 하층 블루컬러로 흑인이나 멕시코인들이 전담하던 막노동꾼이었다. 카우보이가 서부 개척의 아이콘이 된 것은 미국 사회의 개척자 미화와 관련되어 있다.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며 급속한 도시화와 물질만능주의 등 여러 가지 부작용에 시달린 미국인들은, 자연히 자유로운 과거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며 '백인 카우보이'를 '황야의 자유로운 영웅'으로 미화하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는 것.
 
원주민들 몰아내려 군대 파병까지

하지만 서부개척은 원주민들에게는 또다른 고난의 상징이었다. 원주민들의 삶의 기반이자 식량과 옷 등을 제공하던 버팔로가 철도 건설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미국인들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학살당한 것. 기차를 타고 총으로 버팔로를 사냥하기 위한 전문 총잡이들을 가리키는 버팔로 빌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미국인들의 원주민 탄압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버팔로 사냥으로 원주민들의 생계를 무너뜨린 데 이어 강제 이주 정책도 거듭됐다. 많은 미국인들이 금을 캐내기 위하여 무단으로 원주민들의 땅을 침입하는가하면, 미국 정부는 원주민들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군대를 파병하여 강제로 원주민들을 몰아내려했다.
 
분노한 원주민들은 결국 저항에 나섰고 '미친 말'이 이끄는 원주민군은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국 정규군을 상대로 예상밖의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원주민 전쟁사중 원주민이 승리한 마지막 전투였다. 굶주림에 지친 미친 말은 결국 미국에 항복했고 호송 과정에서 암살당했다. 미국은 구심점을 잃은 원주민을 더 열악한 땅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거부하는 이들은 학살하는 등 강경한 탄압을 지속했다.
 
인디언이 버팔로와 자유로운 세상이 돌아오기를 갈망하며 췄다는 유령춤에는 자신들의 서글픈 삶을 애도하려는 한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은 국가에 대한 불복종이라는 명분으로 유령춤마저도 금지시켰다.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운디드니 언덕에서 미군의 오인으로 원주민들이 대량으로 살해하는 운디드니 학살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원주민의 리더였던 큰 발 추장은 부상을 입고 쓰러졌으나 구조를 받지못하고 12월의 추위와 눈보라속에 그대로 얼어죽어야했다.
 
지금도 미국 전역에는 약 300여개에 이르는 인디언 보호구역이 자치구로 운영되고 있다. 경제적 여건이 좋지않아 많은 원주민들이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 걸리며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1890년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더 이상 미국인이 새로 정착할 땅은 없다.'고 선언한다. 서부개척으로 정착한 미국인들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급속 서부의 발달은 세계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힘든 개척사다.

서부개척시대는 미국인들의 수많은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고 이민자들에게는 기회를 제공하며 경제-사회적으로 미국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초대 조지 워싱턴-3대 토머스 제퍼슨-16대 에이브러햄 링컨-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까지 러시모어산에 전시된 4대 조각상에 포함된 네 대통령의 공통적인 업적은 서부개척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바로 미국의 발전을 위하여 희생당한 원주민들의 눈물이 있었다는 사실은 많이 잊혀졌다. 지금도 원주민들이 미군에 저항했던 검은 언덕에는 원주민 전사였던 미친 말의 조각상이 새겨져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않다.

학자들에게 미국 서부는 지역을 넘어 현대 미국 문명사의 중심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역사는 오늘날의 미국을 완성한 서부 팽창사를 가리켜 '원주민들의 희생에 대한 반성과 책임'이라는 숙제를 남겼다고 평가한다. 미국의 역사가 자부심과 오만 사이의 아슬아슬한 이중주라고 했을 때, 서부 개척사야말로 바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의 탄생을 둘러싼 이중적인 일면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순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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