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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호 개인전 <박인어씨>가 4.17-5.1까지 전시중이다.
▲ 전시장 새탕라움의 외관 박시호 개인전 <박인어씨>가 4.17-5.1까지 전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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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인어라고 믿고 있다. 6살 동네 의원 수족관에서 처음 본 금붕어, 잉어 같은 물고기들이 머리를 흔들며 가까이 왔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뭉클, 무언가 그리운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는 인어가 아니었을까?"

박시호 개인전 <박인어씨 Park in a(the) Sea>(4.17-5.1)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어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유년기에서부터 시작된 인어 동경 심리는 그를 자연스럽게 물가로 이끌었고, 바닷속은 그가 가장 사랑한 정원이었다.

'인어'의 전시

이 전시를 통해 그는 물에 대한 깊은 사랑, 동경, 꿈을 말하는 동시에 오염돼 변해가는 '바닷속 정원'에 대한 강렬한 경고를 발하고 있다. 바닷속 환경파괴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사진전 등은 그리 낯설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박시호의 이야기는 바다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 인어의 시각으로, 온몸으로 느낀 그 무엇이기에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바다 환경파괴에 대한 전시 혹은 캠페인과는 다른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전시장인 제주시 서사로 5길의 새탕라움은 작고 낡은 평범한 이층집이다. 해초 공간이라는 뜻이라니 이번 전시와 어울리는 이름이다. 새탕라움과 나란히 걸린 또 하나의 작은 간판은 켈파트. 제주와 서울에 있는 예술 전문출판사다.
 
환경예술을 추구하는 작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 새탕라움 입구 환경예술을 추구하는 작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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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좁은 바닥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1평 남짓한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어의 꼬리, 비늘 그리고 부표 등의 상징물이 설치돼 있다. 이런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치는 보물찾기처럼 여러 군데서 만날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곳곳에 설치된 상징물을 만나게 된다.
▲ 바닷속 상징물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곳곳에 설치된 상징물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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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실. 2층이라기보다는 옥탑방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이곳에는 6살 박시호와 26살 박시호의 '인어 이야기'를 적은 A4용지가 벽에 (핀이 아닌 성게 가시로) 고정되어 있고 한쪽에서는 작가의 기억 속 어딘가 존재하는 인어의 기억이 영상으로 상영된다. 긴 꼬리와 비늘들로 인어인가? 하는 상상을 하게 하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2층 전시실 <기억의 정원>이 인어의 꿈을 꾸며 바다와 가까이 있고자 하는 그녀의 옛 기억이라면 1층으로 내려가는 반대편 계단에서는 점차 현실의 바다를 만난다. 바다를 암시하는 푸른 파도가 설치된 계단을 내려가노라면 발 옆으로 크고 아름다운 소라들이 차례로 놓여 있다. 햇살이 투과되어 벽까지 파란빛으로 빛나는 풍경에 소라가 더해지니 평화롭고 아름다운 바닷속이 바로 연상되었다.

이어 오른쪽 전시실로 들어서니 역시 좁고 낡고 어둡다. 바닥에 성게 껍데기가 수북이 쌓여 있고 벽에는 2층처럼 A4용지가 붙어 있다. 디즈니의 '언더 더 씨(Under the sea)' 노래 가사다.
 
"아리엘 잘 들어/ 인간 세상은 말이지, 정말로 엉망진창이야/ 바닷속 삶이 육지 사람들의 어떤 것보다 정말로 더 좋다니까/ 남의 떡이 항상 더 크게 보이는 법/넌 육지로 올라가는 꿈을 꿔, 하지만 그건 정말 큰 실수하는 거야/ 주위를 한번 둘러봐봐, 바로 여기 바닷속을 말이야......(생략)"

작가는 말한다. 아름답던 바닷속 세상을 그렸던, 그렇게 즐겨듣던 이 곡은 이제는 통하지 않는 지난날의 노래가 되어 버렸다고. 가사를 곱씹고 있으려니 전시실의 얼룩진 낡은 벽면에 일가족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분필이나 갑오징어 뼈로 마음대로 벽화를 그리거나 색칠을 할 수 있다.
▲ 벽화 그리기 관람객들은 분필이나 갑오징어 뼈로 마음대로 벽화를 그리거나 색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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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디테일, 그리고 반전

다가가려니 성게의 잔해가 빠자작 소리를 내며 밟힌다. 작품을 망가트린 것 같아서 일순 놀랐는데, 작가는 기꺼이 밟아도 된다고 한다. 인간의 욕망이 미치는 파괴력을 청각과 시각의 공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죄책감이 느껴지면서도 계속해서 밟게 되는 묘함이랄까(이렇게 모두 밟혀 가루가 된 성게 껍질은 전시가 끝난 후 제주의 이곳저곳 밭에서 퇴비로 뿌려질 예정이라고 한다).
 
전시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성게 껍데기의 잔해들은 관객이 밟을 수 있다.
▲ 성게 껍데기 잔해 전시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성게 껍데기의 잔해들은 관객이 밟을 수 있다.
ⓒ 황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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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다가가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분필과 갑오징어 뼈를 놓아두었다. 성게 가시에 이어 오브제 하나하나 모두 바다에서 비롯된 것을 사용했다고 하니 그 디테일이 놀랍다. 계단에서 미리 바다를 느껴서인지 그림은 대부분 바닷속 풍경이다. 물고기도 보이고 인어 꼬리를 그린 사람도 있다. 말미잘 산호가 보이기도 한다. 이 벽은 관객의 참여로 점차 쌓여가는 풍경이 될 것이다.

다시 발길을 돌려 나가니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을 이룬다. 계단을 내려올 때 청정 바다를 연상케 한 소라의 안쪽에서는 무언가 썩은 액체들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아름다운 면만 바라보는 현대인들, 하지만 그 이면에 오염돼 죽어가는 현실의 바다를 보여주는 것이다. 계단 아래 화장실을 열어보니 변기통 옆의 삼각형 수조에 물이 담겨 있다. 인어가 쉬고 있는 공간이라는 작가의 설명이다. 하필이면 집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화장실에 인어의 공간이 있을까. 이제 인어는 동화에서처럼 아름답고 깨끗한 공간에선 존재할 수 없음을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전시실이 1층에 있기에 들어갔다. 속도의 무게를 주제로 한 영상을 상영 중이다. 물결치는 바다, 이를 앉아서 느끼는 사람, 걷거나 뛰며 느끼는 사람들. 단순한 영상이지만 속도에 관한 작가의 진지한 성찰을 감지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빠르게 빠르게'를 지향하는 뭍에서의 삶을 역설적으로 대조시켜 주는 효과를 노린 것일까.

막 좁은 1층 전시공간을 벗어나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이런 글귀가 나타난다. '이제 대문을 열고 육지로 돌아갑니다. 당신이 기꺼이 노력한다면 가까이에 있는 푸른 바다 정원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밖으로 나왔다. 순간 또 다른 작은 반전이 눈길을 끈다. 담장 아래 사각형으로 파인 작은 공간에 톳, 오징어 등의 가격표가 붙은 플라스틱 PVC 생활 쓰레기 등이 쌓였고 담벼락에는 '어쩌면 내일이 될 정원'이라는 작은 글씨가 쓰여 있다. 머지않아 인어가 헤엄치던 바다정원이 곧 쓰레기장이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섬뜩한 경고

그동안 잘 꾸며진 대형 전시장만 다녀봐서 그런가. 이 낡고 좁은, 칙칙하기까지 한 공간에서도 전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뿐 아니라 보잘것없는(?) 전시물들이 만들어내는 잔잔한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여느 전시회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진한 여운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여러 관람객이 감상하기가 불편할 정도로 작은 전시장이지만 그래도 이곳을 찾는 이들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제주 뒷골목에 이런 전시공간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작가 박시호가 궁금해졌다. 자신을 인어라고 믿고 있는, 그래서 전시 제목도 '박인어씨'라고 붙인 이 작가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소라의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썩은 액체의 의미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박시호 작가 아름다운 소라의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썩은 액체의 의미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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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을 보니 2015년 성북 연극페스티벌을 시작으로 각종 퍼포먼스, 영상설치 전시, 연출, 연극출연, 단편영화 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에는 서울 국제 명상 페스티벌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올해는 제주전시에 이어 5월에 개인전 <더 스토리 오브 요나 The story of Jonas>가 대전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 작품 역시 뱃속에 쓰레기가 가득한 고래에 관한 이야기로, 성경에 나오는 '요나'에서 모티브를 빌렸다.

작가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물어봤다. 친환경 예술가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분야가 이제 태동단계인 만큼 아직은 명칭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예술형식을 빌려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람으로 이해하면 될 것도 같다.

작가의 말로 <박인어씨 Park in a(the) Sea> 전시를 정리하면 이렇다.

"이 전시는, 끝끝내 자신을 인어라고 믿는 한 사람의 서툰 고백이자 비로소 나를 숨 쉬게 한, 그리고 당신에게도 꼭 건네고 싶은 '저 바다 밑'의 시간에 대한, 그리고 여전히 나와 우리가 살아갈 육지의 속도에 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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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의 언론계 생활과 7년의 대학 초빙교수 생활을 끝내고 2018년 봄 제주로 이주했다. 애월읍의 한 생태마을에 거주하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현대사의 아픔에 깊은 관심과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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