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2 05:49최종 업데이트 22.04.2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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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 starcraft.com

 
소싯적엔 스타크래프트를 좀 했다. 게임 성적이 썩 좋진 못했는데, 손과 눈이 둔한 탓이 가장 컸지만 보편적이지 않은 전술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그랬다. (주특기는 패스트 다크템플러 전술이었다. 아는 사람은 아는, 뒤가 없는 전술)

게임에선 뒤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한 번의 전투를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곤 했다. 손과 눈이 둔한만큼 꾸준하고 정통적인 힘싸움보다는 기발하고 예상치 못한 전투의 승리 한 번으로 전장의 승기를 잡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 기발함이 먹히지 않으면 금세 손 털고 GG(Good Game "좋은 게임이었습니다", 항복을 의미하는 게임용어)를 선언했다.

어차피 이 전투에 몰입하느라 자원도 병력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 뒤를 돌아볼 것도 없었다. 같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은 그런 '뒤 없는 플레이'와 '빠른 포기'에 핀잔을 주곤 했지만, 난 "그냥 게임인데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실 난 게임보다는 게임방에서 빨리 나와서 낄낄거리며 술 마시러 가는 일을 더 좋아했다.  

# 그냥 게임
 
게임의 세계는 명료하다.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게임이 종료되는 순간까지만 존재하는 세계다. 그 뒤도 없고 그 앞도 없다.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하고 그 세계가 끝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세계의 넓이도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다. 보이지 않는 곳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승자와 패자도 명확하다. 모든 것이 수치화되기 때문에 누가 뭘 잘했고, 어떤 것을 못했는지, 얼마큼 아깝게 패배했는지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뒤끝도 없다.

게임에서 지면 게임방 비용이나 혹은 그날 저녁 술값을 내야 할 때도 있지만, 게임의 결과 그 자체는 우리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게임은 온전히 분절되고 단절된 세계다. 그래서 게임의 세계에선 '이기는 것'만을 목표로 할 수 있다. 어떻게 이길 것인지, 얼마큼 이길 것인지, 이긴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지, 지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같은 질문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뒤가 없는 세계다.
 
하여 어떻게 보면 게임이야말로 가장 공정하고 공평한 세계다. (엄격히 금지돼 있는 어떤 반칙들이 없다는 가정이라면) 게임 속에는 금수저도 없고, 아빠 찬스도 없고, 한 번 졌다고 해서 다음 기회를 박탈하는 일도 없다.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하는 만큼 실력도 늘어간다. 그야말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곳.

반면 현실의 세계는 그리 명료하지 않다. 현실의 세계는 '시작'의 시점도 '끝'의 시점도 없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만들어지기까지 이미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만들어진 '맥락'이 존재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내가 아는 일보다 훨씬 많고, 내가 끝내 알지 못할 일은 더 많다.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할 사건과 사람과 사연이 중첩되고 중첩된다.

현실의 세계엔 끝도 없다. 내가 죽어도 세계는 이어진다. 내가 살면서 하는 '플레이'는 안 그래도 수많은 맥락들에 또 다른 맥락을 더한다. 현실은 교차하고 연결되고 이어진 세계다. 어떤 하나의 사건도 단지 그 사건 하나로만 존재하는 일은 없다. 사건에 관련된 수없이 많은 사람과 또 다른 사건들, 교차하는 갈등과 문제들. 때문에 현실의 세계에선 이기는 것이 무엇이고 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승과 패를 판단했다 하더라도 그 승리가 이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마찬가지로 패배가 또 어떤 맥락을 만들어낼 것인지도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앞과 뒤뿐 아니라 전 방위로 뻗어 있는 그물 같은 교차와 연속의 세계. 현실은 그런 곳이다.  
 
하여 현실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공정하지도 않다. 금수저와 아빠 찬스와 반칙이 난무하지만 그것을 반칙으로 부르지 않고 반칙을 한 자에게도 기회는 계속 주어진다. 정작 단 한 번의 실수와 실패로 두 번째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공정하지 않은 현실을 조정하고 수없이 교차하는 맥락을 판단하고 조율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치'가 필요한 곳.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 남소연

 
# 그래서 정치
 
곧 여당대표가 될 이준석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이다. '이대남'을 대변한다는 그는 '공정'과 '실력', '합리' 같은 말을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준석의 공정이나 실력, 합리 같은 말들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의 공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의 맥락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정치의 공정'보다는 똑같은 맵에서 똑같은 자원으로 게임을 해서 이기는 게 중요한 '게임의 공정'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오는 지방선거에서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할당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서 "단순히 성별을 기준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역량을 따져 공천을 결정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역량'과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것. 마찬가지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시민을 볼모로 잡는 것"이라고 하거나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공부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짜 평등... 정의롭지 않은 결과"라고 성토하는 것도 비슷하다. '실력을 쌓고 경쟁하여 이기는 것'을 공정이고 합리라고 이해하는 태도.
  
그는 '선거의 승리'를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여긴다. 이동권 투쟁하는 장애인 단체에 "박원순 전 시장이 지키지 않은 약속을 왜 오세훈 시장에게 이야기 하느냐"고 따져 묻는 것에서 그가 생각하는 정치의 목적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정치세계는 시장이나 대통령이 누구든 삶을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의 연속된 세계보다 누가 정권을 지방권력을 쥐고 있는지에 따라 '판'이 달라지는 분절의 세계에 가깝다. 때문에 그가 생각하는 승리란, '이번 판'을 가져올 수 있는 선거의 승리로 수렴하는 것.  
 
이런 이해는 마치 게임세계의 세계관과 같다. 젠더의 불평등이 빚어진 맥락,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거듭해 온 역사, 산업이 노동을 분절하고 계급을 나눠온 과정, 그 맥락과 역사와 과정이 관계 맺고 있는 현실세계의 수많은 것들을 전부 배제한 단편적 세계관이다. 이런 세계관은 이 맥락들의 교차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또 다른 지점으로의 연결을 조율하는 '과정으로서의 정치'보다는 우리 편과 너희 편의 대결에서 누가 더 많은 점수를 얻는지를 견주는 게임으로서의 정치를 만든다. 선거에의 집착.
 

장애인부모연대 소속 장애인과 가족 550 여명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구축 촉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그러나 말했듯 현실의 세계는 게임의 세계만큼 분절적이거나 단순하지 않다. 할당제는 단지 특정한 정체성을 이유로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맥락을 수정하는 것으로 작용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비장애인들의 불편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의 불편을 당연시 해왔던 맥락을 가시화시키는 일이다.

이 같은 맥락을 이해하고 있다면 단지 대통령이 누구일 때, 시장이 누구일 때 같은 말을 운운할 수 없게 된다. 과정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이해 없이 드러난 현상의 단면으로 공정과 합리를 주장하고 그 해결책으로 고작 선거에서의 승리를 제시하는 것은 정치의 언어일 수 없다.
 
# 바야흐로 현피의 시간
 
난 사실 이준석이 '문제가 무엇인지 실은 다 알고 있으면서 유불리를 따져 정치적 수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구조적 불평등을 애써 모르는 척하면서 안티페미를 선동하는 일이나,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해 철지난 공리주의적 수사로 여론을 호도하는 일도. 이준석이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최고수준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 정치인이, 다른 사회들이 젠더평등이나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몰라서 저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준석의 정치는 마치 지금의 '정치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술'처럼 보인다. 손과 눈이 둔해서 정교한 유닛컨트롤과 중장기전 힘싸움을 못하던 내가 패스트 다크템플러를 즐겨 사용하던 것처럼, 지역 지지기반과 조직기반, 경험이 없는 이준석이 선택한 '공정을 가장하여 혐오를 부추기는 전술'.

그러나 말했듯 정치는 게임이 아니다. 정치에서의 '승리'란 스타크래프트처럼 명확하지 않다. 말했듯 정치란 과정으로서만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오버도 없고, '리겜(Re-Game. 게임이 끝나고 같은 상대에게 다시 게임을 신청하는 것)도 없다. 누군가에게는 끝나지 않는 치열한 생존의 과정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앞으로의 절실한 미래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치란 그야말로 삶의 각축. 그 삶의 각축을 마치 게임하듯 이해하고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며 승과 패로 구분하는 것을 정치라 명명하는 것은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준석이 주도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이해가 만연해 있는 사회를 이준석이 활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치를 게임처럼 사유하고 대하는 '이준석 류'의 정치가 득세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두려운 것은 이런 이준석 류의 정치가 만들어낼 세계다. 지속하는 세계를 대통령이나 시장같은 고작 기간제 공무원의 임기 단위로 분절해 이해하는 세계. 맥락과 역사와 과정을 무시한 채 보이는 단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세계. 기계적 중립을 공정으로 오해하는 세계. 맥락과 과정을 무시하니 내가 가진 특혜를 빼앗기는 것은 불공정이고 남에게 강요된 불편을 바로잡는 것은 특혜라고 말하는 사회. 그리고 그것을 주도하고 있는 이가 스스로 공정과 합리와 실력을 표방하는 세계.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준석은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도 모르는 것이거나, 아직 정치에 입문조차 하지 못한 것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정치 초년생 마음만 3선인 이준석 대표에게 충고해주고 싶다.
 
세상은 모니터 밖에 있다고. 정치는 스타크래프트보다는 '현피'에 가깝다고. 마음만 3선이 아니라, 진짜 3선 중진 정치인이 되고 싶다면 소셜미디어 말고, 선거 말고, 세상과 사람들을 봐야 한다고. 이제는 바야흐로 '현피'의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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