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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올레길 이사장 서명숙씨가 며칠 전 강연차 광주에 왔다.

"강연 시간보다 빨리 와 광주천변길을 조금 걸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청계천변 길보다 더 좋더라! 도심 천변길은 산소통 같은 역할을 한다. 신호등도 없고 자동차 매연도 없고 언제나 바로 접근할 수 있고, 얼마나 좋으냐! 종합병원 같은 올레길이 너무 멀어 가지 못하면, 집 근처 병원 같은 천변길을 걸어라!"

'치유의 길'을 만든 기자 출신 올레꾼다운 말씀이다. '4차 혁명시대, 걷기가 더 필수다'는 강연 주제다. 광주문화재단이 기획한 '빛고을 융복합 렉처콘서트' 첫 번째 강연자다.

이상스럽게도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걷기를 줄인다. 지금은 600만 년 전 인간이 발명했다는 직립보행이 퇴보하는 시대다. 두 발로 서서 걷는 동물이 걷지 않으면 위장, 심장, 머리도 잘 안 움직여 문제가 생긴다. 서명숙은 "안 걷는 시대에 두 발이 의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안타이오스 얘기가 생각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안타이오스는 땅에 몸이 붙어있는 한 당할 자가 없다. 땅에 쓰러지면 어머니 가이아로부터 힘을 얻어 더욱 팔팔해졌다.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를 공중에 들어 올렸다. 땅에서 발이 떨어진 안타이오스는 힘을 잃었다. 4차 혁명 시대의 인간은 공중에 들어 올려진 안타이오스가 되는 건 아닐까.

두 발 걷기는 몸을 움직이고 마음도 움직인다. "나의 마음은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멈춰 있을 때는 생각에 잠기지 못한다.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 자연회귀를 주창했던 루소의 말이다.

기자 출신 작가, 에릭와이너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루소처럼 걷는 법'을 썼다. '수줍음이 많고 불면증, 전립성 비대증에 시달리던 루소는 마차여행을 싫어해 언제든 늘 걸어 다녔다. 하루에 20마일을 걷기도 했다. 루소는 걸을 때 게임용 카드를 들고 다니며 생각을 적었다.'

사색을 좋아하는 철학자들은 걷기를 유난히 즐긴다. <월든> 작가이자 자연주의 철학자 소로도 매일매일 콩코드 교외를 걸었다. "루소처럼 소로 역시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명료하게 사고하지 못했다. 루소가 명상에 빠졌다면 소로는 어슬렁거렸다. 소로는 허리를 굽혀서 두 다리 사이로 뒤집어진 세상을 보며 감탄했다. 세상을 뒤집으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에릭와이너는 기술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는 '철학자의 길'이 있다. 30여 년 전, 통독 1주년 취재차 독일에 갔을 때 철학자의 길을 잠시 걸어본 적이 있다. 멀리 네카 강, 하이델베르크 고성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길이다.

칸트,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같은 대 철학자들이 이 길을 걸으며 영감을 받았다. 일본에도 교토에 '철학의 길'이 있다고 들었다.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산책하던 길이다. 니시다 문하생 중 하이델베르크에 유학했던 제자들이 독일 철학자의 길을 본따 이름지었다 한다.

철학자 길을 걷는다고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건 아니다. 철학자가 자주 걸었으니 철학자 길이 된 것이다. 한국인들은 철학자가 될 밑바탕이 크다. K-팝에 열광해 한국말을 독학으로 배운다는 10대 딸을 가진 에릭 와이너는 "한국인은 선천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탐구적인 민족이다. 사색적인 동시에 실용적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철학 그 자체다"라고 한국인을 칭찬한다. 한국인이 자주 걷기만 하면 어느 길이든 다 철학자 길이 될 만하다.

지난주엔 청년 김대건 길을 걸었다. 은이성지에서 출발해 신덕고개, 와우정사까지 3km를 두 시간에 왕복했다. 대한민국처럼 걷기 좋은 길들이 널려 있는 나라가 있을까. 매일매일 걷는 내 길을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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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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