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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있는 비행기 잔해들.
 거리에 있는 비행기 잔해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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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Katherine)에서 멋진 풍광과 온천욕을 마음껏 즐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안주할 수 없는 여행객이다. 지금부터는 온천이나 폭포를 기대할 수 없는 내륙 깊숙한 곳으로 떠날 시간이다. 흙먼지 휘날리는 황량한 환경이 기다릴 것이다. 호주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호주 대륙 한가운데 있는 도시 앨리스 스프링(Alice Springs)을 목적지로 정했다. 가는 길에 두어 번 쉬었다 가야 하는 먼 거리에 있는 도시다.

일상이 된 여행길에 다시 오른다. 호주 대륙을 남과 북으로 관통하는 스튜어트 고속도로(Stuart Hwy)를 달린다. 가는 길에 델리 워터즈(Daly Waters)라는 동네가 있다. 특별히 풍광이 좋다거나 자연환경이 좋은 관광지는 아니다. 하지만 자동차로 호주를 둘러보는 여행객에게 많이 알려진 동네다. 천천히 3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오늘은 델리 워터즈에서 묵을 생각으로 황량한 들판을 달린다.

중간에 쉬기도 하면서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니 목적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화살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운전대를 돌린다. 조금 들어가니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거리 풍경이 전개된다. 부서진 오래된 비행기들이 도로변에 있다. 비행기 엔진도 보인다. 녹이 슬어 형체만 남아 있는 트럭 잔해도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야영장 손님을 받는 술집에 들어섰다. 분위기가 별다르다. 다른 곳에서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특이하게 치장한 술집이다. 여행자들이 기증한 유별난 물품이 널려있다. 각국의 지폐들이 머리 위에 매달려있다. 천 원짜리 한국 지폐도 보인다. 여행자가 기증한 신발, 모자 심지어는 속옷 등도 천장과 벽을 장식하고 있다. 특이한 동네에 있는 특이한 술집이다. 
 
어린이 놀이터 옆에도 비행기 잔해가 있다.
 어린이 놀이터 옆에도 비행기 잔해가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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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큰 야영장에 들어섰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캐러밴을 자동차에서 분리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할 관광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만 묵고 떠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는 이틀 동안 지낼 생각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하룻밤만 지내고 장거리를 운전하고 싶지 않다.

캐러밴을 주차하고 시원한 맥주 생각을 하며 술집을 다시 찾았다. 맥주는 보통 술집에서 파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명랑하고 말이 많은 아가씨가 따라준 맥주를 들고 의자에 앉는다. 시원한 옷차림을 한 청춘남녀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기증한 물품이 전시(?)되어 있는 천장에 시선을 가져간다. 처음 왔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한국 부채가 매달려 있다. 여행객이 기증한 신분증이 즐비하게 전시된 것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술집은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오래전 1930년에 개업했다는 술집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비행장을 이용하는 손님과 직원을 위한 술집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비행장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술집은 옛 낭만을 10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여행객들 틈에 앉아 시원한 맥주로 더위를 식히며 특이한 분위기에 젖어본다. 
   
술집을 나와 동네를 걷는다. 주민이 사는 것 같지는 않고 여행객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곳에도 작은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특별히 눈길이 가는 가게는 녹슨 쇠붙이가 널려있는 고물상(Tim's Junkyard)이다. 건물 입구 지붕은 헬리콥터가 차지하고 있다. 건물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켄터키 프라이 치킨(KFC) 간판도 보인다. 예전에는 이곳에도 치킨 가게가 있었나 보다. 동네 자체가 폐품처리장 같은 분위기다. 
 
거리 한복판에 있는 고물상.
 거리 한복판에 있는 고물상.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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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놀이터 옆에도 비행기 잔해가 있다.
 어린이 놀이터 옆에도 비행기 잔해가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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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근처에 있는 비행장을 찾았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는 비행장이다. 격납고 옆에 주차하고 비행장에 들어간다. 격납고는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비행장 역사를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다. 오래전 유럽으로 오가는 비행기가 이곳에서 주유했다고 한다. 2차 대전 당시에는 공군 부대가 주둔했던 비행장이다.

활주로는 지금도 드물게 사용하는 것 같다.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활주로 끝자락에 비행기 잔해가 보인다. 1956년에 추락한 비행기 잔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여객기가 주유하고, 전쟁 때는 군인들이 주둔했던 비행장이다. 지금은 비행기로 이곳을 찾는 일반인은 없다. 단지 시원한 맥주를 제공했던 술집만이 덩그러니 남아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1956년에 추락했다는 비행기 잔해
 1956년에 추락했다는 비행기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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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더위를 피해 야영장 손님을 위한 수영장을 찾았다. 수영장은 술집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맥주잔을 들고 있는 사람이 제법 보인다. 수영장에서 마시는 맥주잔은 유리가 아닌 플라스틱 잔이다. 유리가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수영장은 제법 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특별한 관광 거리는 없지만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특이한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객들이다. 젊은 부부는 어린아이 둘과 함께 물놀이하며 함박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다윈(Darwin)으로 가는 길에 들렸다고 한다. 캐러밴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호주 대륙을 정처 없이 떠도는 젊은 부부다. 요즈음은 농장에 일거리가 많아 여행 비용을 충당하기 쉽다고 한다.

가끔 흙먼지를 일으키는 회오리바람이 부는 황량한 들판에 황혼이 깃들고 식당에 오색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식당을 찾았다. 특이하게 장식한 무대에서는 수염이 더부룩한 남자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나에게도 익숙한 오래된 노래를 부르며 관객과 함께하고 있다. 식당을 찾은 사람은 나이가 지긋이 든 부부가 대부분이다. 인생의 황혼기를 나름대로 즐기는 퇴직한 사람들이다.

손님이 많다. 혼자 식탁을 차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맥주 한 잔 들고 주위를 서성거리며 노래를 듣고 있으니 몸이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이색적인 식당에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즐기는 나이 지긋이 든 사람들, 젊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적응하며 생활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많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타인을 의식하며 각자의 삶을 타인의 생각에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치환하여 살아오지 않았던가.

수영장에서 만났던 호주를 떠도는 젊은 부부가 떠오른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지내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옳고 그름, 시비를 따지지 않는 나만의 삶을 생각한다. 틀에 박힌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을 보내기도 하겠지만.
 
술집에 여행객이 기증한 각국 지폐. 퇴계 이황이 그려진 지폐도 보인다.
 술집에 여행객이 기증한 각국 지폐. 퇴계 이황이 그려진 지폐도 보인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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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드니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DALY WATERS, #NOTHERN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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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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