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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우울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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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식사를 하다가 문득 울컥해져 말했다. 나에게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이 온 것 같다고. 지인은 단번에 말했다.

"니 접시 좀 볼래? 너 지금 그거 다 먹었거든. 웅~ 아냐. 너 우울증 아냐"

내 접시를 보니 정말 음식 한점 남기지 않았다. 반면 지인은 절반 가까이 남겼다. 순간 욕망을 들켜버린 사람처럼 괜히 민망하고 부끄러워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러게. 이렇게 잘 먹는데 뭐가 우울해"라고 말하며 지인을 따라 헤- 웃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간 나의 고민과 공허함을 말할 기회를 잃어버린 채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괜스레 억울했다.

식탐이 없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식탐과 별개로 나는 원래 음식을 남기는 것을 싫어한다. 어려서는 '음식을 남기면 지옥 가서 배가 찢어지도록 먹는다'는 말을 귀에 인이 박히게 들어 음식을 남기면 무시무시한 벌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다. 그것은 한 톨의 낭비도 사치로 치부하는 엄마의 영향에 의해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다.

머리가 커서는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가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음식을 남기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효리 언니의 말을 교리처럼 신봉하기 때문에 당당히 다 먹어치웠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는 아직도 굶어 죽는 아이들도 있는데 먹을 만큼만 먹고 남기지 말든지 남길 거면 포장을 하든지 하여 음식이 과잉돼 버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 먹은 내가 왜 민망하고 부끄러워야 하며 왜 잘 먹는다고 우울할 수 없는 것인가. 식탐을 부리지 않는 것이 미덕이지만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도 미덕이 아닐까. 그리고 우울하면 잘 먹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울한 사람은 말라야 하고, 통통하게 오른 뱃살들은 행복의 결정체란 말인가. 의문이 생겨 잘 먹어도 우울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결론은, 잘 먹는 우울증도 있다. '비정형 우울증(atypical depression)'. 비정형 우울증이란? 남들이 보기엔 행복해 보이는 감정이 있어 우울로 의심하기 어려운 것이 특징으로 내면의 우울감을 가지고 있어도 타인들에겐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면 우울증'과 비슷한 우울증의 일종이다.

'마음건강 길' 기사에 따르면, "우울감 때문에 식욕이 감소하는 것을 대표적인 우울증 증상으로 생각하지만, 비정형 우울증은 오히려 식욕이 증가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스트레스나 불만족을 느낄 때, '정서적 허기'를 느껴 식욕이 폭발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생활의 변화 없이 식욕이 급증했다거나 식욕을 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정도라면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겉으로 볼 때 우울해 보이지 않는다거나 밥을 잘 먹고 잠을 많이 잔다고 해서 우울증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또, "비정형 우울증은 주요 우울 장애의 15~3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질병"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아도 이상하게 허기를 잘 느끼기도 했다. 정서적 허기였던 것이다. 어떤 행위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공허를 공복으로 착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뭔가를 채우는 직관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결코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메우려는 의미 없는 무자맥질인 것이다.  

따라서 식사 그릇을 말끔히 비우는 나를 두고 우울증이 아니라고 속단하는 지인의 판단은 틀렸다. 그러고 보면 늘 외적인 것들에 의해 정신적, 심리적 세계 또는 내면과 실체까지도 속단 당하는 일들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살짝 굽이 있는 신발만 신어도 키 170은 훌쩍 넘기고 어깨는 떡 벌어져 있다. 기본적으로 골격이 크게 발달 되어 있어 또래 여성들보다 큰 체격(거구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에 속한다.

그런데 나는 은근 아귀힘이 약하다. 캔 뚜껑이나 병뚜껑을 정말 잘 못 딴다. 그런 나를 보면 지인들은 웬 약한 척이냐며 한 마디씩 한다. 정수기에 20리터 물통을 꼽아야 할 때도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다들 놀리듯 말한다

"이거 왜 이래. 우리 안 볼 때 생수통 모가지 한 손을 들어 냅다 꼽는 거 다 알거든."

이렇게 말하면서 서로 키득키득 웃는다. 체격이 크고 통통하니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보이거든!'이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보이는 것들과 보여지는 일들로 무례한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서로를 속단하고 결정짓고 정죄해 버리는지 알아야 할 것 같다.

잘 먹어도 우울할 수 있고!
거구여도 몸이 약할 수 있다고!

주변에 지나치게 잘 먹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나 마음의 정서적 허기를 채우고 있는지. 한번 물어봐주는 섬세하고 친절한 질문을 해주면 어떨까.

"너, 요새 힘드니?"라고.    

덧붙이는 글 | 이글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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