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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를 대표하는 관방유적 중 하나인 초지진에선 염하와 함께 강화와 김포를 이어주는 초지대교가 보인다.
▲ 초지진과 초지대교 강화를 대표하는 관방유적 중 하나인 초지진에선 염하와 함께 강화와 김포를 이어주는 초지대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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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수도를 이 고장으로 천도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강화도. 시대를 거듭하며 그 중요성은 날로 더해졌다. 결국 원(몽골)에 복속되면서 38년간의 짧았던 도읍의 시절이 끝나게 되었지만 한강, 예성강, 임진강 등 한반도 중부 주요 하천의 하구에 위치한 강화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한양, 즉 서울로 수도를 옮긴 조선시대 때가 그 계기였다. 조세를 싣고 운반하던 세곡선이 서해를 거쳐 들어오던 주요 루트로서 시대마다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작용했다.  
 
초지진에서 현재 볼 수 있는 건 작은 옹성과 몇백년 된 소나무 뿐이다. 그러나 초지진의 주변 풍경과 지형은 변함없이 역사의 상상을 펼치게 만들어 준다.
▲ 초지진과 소나무 초지진에서 현재 볼 수 있는 건 작은 옹성과 몇백년 된 소나무 뿐이다. 그러나 초지진의 주변 풍경과 지형은 변함없이 역사의 상상을 펼치게 만들어 준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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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전(前), 후(後)를 갈랐던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연이어 겪은 뒤 수도방위에 대한 중요성은 점점 높아진다. 그 병목에 자리한 강화도는 수도 한양 이상으로 섬의 해안가를 따라 방어시설을 촘촘하게 건설한다. 돈대, 보, 진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강화의 관방유적은 섬 전역에 54곳이 분포해 있고, 현재는 절반 이상이 새롭게 복원되어 근근이 찾아오는 답사객들을 맞아준다.

강화는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주말이면 차들로 붐비는 여행지지만 초지진, 광성보 등 일부 관방유적을 제외하고는 썰렁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북쪽 해안가는 북한과 접경지역인 관계로 민통선 통제 구역으로 설정되면서 접근이 힘든 장소가 많다.     

하지만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구한말, 강화도는 프랑스와 미국 등 서양 열강 침탈의 주무대가 되어 유난히 수난을 많이 겪었다. 강화를 점령하기 위해선 그 외곽의 돈대, 진, 보를 제압하는 게 중요하므로 그 격전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우선 그곳들을 여행하기 전, 진과 보 그리고 돈대의 차이는 무엇인지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자.

진부터 그 명칭에 대해 살펴보면 진압할 진(鎭)을 쓰는 만큼 가장 중요한 요충지에 자리하면서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에도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다음으로 보는 작은 성 보(堡)라는 뜻으로 진 다음의 지위를 지니며 주로 방어에 집중한 구조로 설계되었다. 마지막으로 돈대는 도드라지게 나온 지형을 뜻하는데 멀리 바라 보이는 지형에 들어서 주로 감시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돈대는 보나 진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정도로 차이점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강화 전역의 모든 관방유적을 가볼 수 없으므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이 될 것이다. 이 섬의 기나긴 해안선 중 조운선의 주 통로였으며 잇따른 전투의 현장이기도 했던 강화, 김포 사이의 해협 염하 일대를 중심으로 그 기나긴 여정을 떠나보도록 하자.

이 해협을 중심으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 잘 알려진 관광지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강화 남부를 연결하는 초지대교를 지나 남에서 북으로 해안가를 따라 올라가는 여정을 따라간다. 그 초입에는 수많은 관방유적 중 가장 명성을 가지고 있는 초지진이 있다. 초지진은 그 명성에 걸맞게 김포에서부터 이곳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건너가는 다리 이름이 '초지대교'인 것처럼 강화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 중 하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이어 겪은 조선정부는 강화의 진과 보에 그당시 최첨단 무기였던 홍이포를 설치한다.
▲ 초지진의 홍이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이어 겪은 조선정부는 강화의 진과 보에 그당시 최첨단 무기였던 홍이포를 설치한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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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5진의 하나였으며 예전에 광활한 풀밭이 놓여 있다고 해 초지진이라 불리던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입장료를 받고 입장해야 하는 장소지만 초지진에는 조그맣게 보존된 쇠락한 옹성이 전부기 때문이다.

작고 초라한 요새에 의존하여 외세의 침략을 막았다고 하니 우리 선조들이 한편으론 미련하면서 애처롭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하지만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현재 초지진에 남아있는 시설물은 초지 돈대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초지진 주변 음식점까지 돈대와 부속시설을 갖춘 종합 요새의 위용을 당당하게 갖추었다. 우리는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성곽의 시설에만 집중하지 말고 초지진 건너 보이는 바닷가의 풍경과 건너편에 아른거리는 김포 땅의 덕포진을 살펴보며 이해협에서 벌여졌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다시금 상상해 보는 것이다.

1866년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공해온 프랑스군이 영종도를 거쳐 이곳이 함락되는 비운을 거쳤고, 이후 1871년 통상을 강요하며 미국의 로저스 아세아 함대가 침략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1875년 일본의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펼쳤지만 후에 굴욕적인 강화도 조약을 피하진 못했다. 당시 초지진에는 병마 첨절제사 1인, 군관 11인, 군사 320인, 전선 3척이 주둔하였다고 한다.     

비록 돈대만 외롭게 남아있는 초지진이지만 바닷가를 바라보며 치열했던 격전의 현장을 한눈에 지켜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돈대 중앙에 전시된 거대한 대포(홍이포)와 400년 넘게 그 자리에서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소나무는 이곳의 가치를 더해준다.

다시 초지진을 나와 덕진진을 향해 따라가는 길은 정겹고 예전 시골길을 다니는 듯 아기자기하다.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은 여지없이 돌아온 봄을 축복하고 있다. 어느새 거대한 성문을 눈앞에 두고 덕진진에 도착한다.
 
남장포대와 덕진포대를 관할했던 덕진진은 강화 제 1의 요새라 칭할 만큼 그 중요성이 실로 대단했다.
▲ 덕진진의 정문 공조루 남장포대와 덕진포대를 관할했던 덕진진은 강화 제 1의 요새라 칭할 만큼 그 중요성이 실로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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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성곽만 남아 있는 초지진에 비해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가 뛰어난 덕진진은 덕진 포대와 남장 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요새로 알려졌다. 강화 12 진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던 강화도 제1의 요충지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가 이끄는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우선 덕진진의 정문인 공조루까지 걸어가 성문 너머 잔잔하면서 좁은 강화의 바닷가를 바라봤다.

전쟁에 관련된 사적지를 방문하며 예전의 일을 상상하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다. 특히 전투에 임했을 병사의 심정이 되어 보며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괴로울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공조루를 지나 해안선을 따라서 언덕길을 힘차게 올라가 본다. 중간 지점에 휴게소가 있었지만 잠긴 자물쇠는 녹이 슬어있었고 창문에는 거미줄이 끼어있었다. 그래도 언덕 위에 벤치가 곳곳에 놓여 있어, 바다를 감상하며 피로했던 몸을 잠시 쉬어가기 좋았다.

한동안 멍을 때리다가 다시 반대편 언덕으로 내려갔다. 멀리 반대편을 바라보니 대포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위용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15문 대포가 반달 모양의 요새로 축조된 남장 포대가 바로 그곳이다.  
 
15문 대포가 설치된 덕진진의 남장포대는 미국과 치열한 전투를 펼쳤던 장소기도 하다.
▲ 덕진진의 남장포대 15문 대포가 설치된 덕진진의 남장포대는 미국과 치열한 전투를 펼쳤던 장소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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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가 낮고 두 개의 언덕 사이의 낮은 지대라 아마 방비가 취약한 지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화력을 집중시킨 듯한데 실제로 신미양요가 일어났을 때 미국의 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이 펼쳐졌던 장소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의 최첨단 화기와 사정거리나 위력에 비할바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낮은 포대에 의지해 나라를 지킨 우리 조상들에게 감사한 생각이 절로 드는 장소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1권(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 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권은 4월 중순 출판 예정입니다. 강연, 기고 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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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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