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수의 고공공격 14일 충남 아산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과 청주KB의 챔피언 결정전 3차전 경기. KB 박지수가 공격하고 있다 .

▲ 박지수의 고공공격 14일 충남 아산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과 청주KB의 챔피언 결정전 3차전 경기. KB 박지수가 공격하고 있다 . ⓒ 연합뉴스

 
농구에는 여러 포지션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강력한 센터는 승리와 우승의 보증수표로 꼽힌다. 박신자-박찬숙-정은순-정선민 등 한국 여자농구는 한 시대를 지배한 세계적인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이견의 여지 없이 '박지수의 시대'라고 불릴 만하다.

박지수는 최근 막을 내린 삼성생명 2021~2022 여자프로농구에서 소속팀 청주 KB스타즈를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KB스타즈는 박지수를 앞세워 정규리그 25승 5패(승률 .833), 플레이오프(4강-챔프전) 5전 전승으로 여유있게 우승을 거머쥐었다. 챔피언 트로피를 탈환한 것은 2018~2019시즌 이후 3시즌 만이었다.
 
박지수의 개인성적도 압도적이었다. 박지수는 올 시즌 정규리그 26경기에서 28분 46초를 뛰며 평균 21.2점 14.4리바운드 4.8어시스트로 맹활약했고, 21경기에서 더블-더블(득점-리바운드) 이상, 트리플더블은 2회나 작성했다. 박지수는 평균 득점과 리바운드, 2점슛 성공률(59.8%), 공헌도(1139.45점) 등에서 모조리 1위를 차지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MVP를 포함해 2년 연속 7관(MVP, 베스트5, 우수수비선수상, 득점상, 2점야투상, 리바운드상, 윤덕주상)을 휩쓸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신들린 활약은 계속됐다. 박지수는 챔프전에서 3경기 평균 17.0점 17.0리바운드 5.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매경기 상대의 집중견제에 시즌 중 코로나 확진-고관절 부상 같은 악재들도 박지수의 기세를 막을 수 없었다. 박지수는 정규시즌에 이어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만장일치 MVP에 선정됐다. 2018~2019시즌에 3년 만에 정규리그-챔피언 결정전 통합 MVP를 거머쥐었다. 박지수가 건재한 이상 KB스타즈는 당분간 과거의 안산 신한은행-춘천 우리은행을 이어 여자농구를 장기집권할 '왕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6년 만에 '살아있는 레전드' 반열에...

분당경영고를 졸업하고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KB에 입단한 이래 6년 만에 박지수는 명실상부한 '살아있는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에서만 인정받은 게 아니다. 박지수는 선배 레전드인 정선민에 이어 한국인 선수로는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진출 2호가 되어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 소속으로 활약하며 세계 최고의 무대를 누비고 있다.
 
대한민국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한국여자농구에게 13년 만의 본선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스페인, 캐나다, 세르비아 등 전력에서 크게 앞선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한국 여자농구가 선전할수 있었던 데는 박지수의 존재감이 절대적이었다.
 
불과 23세의 나이에 한국 여자농구에서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이룬 박지수를 향하여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벌써 '역대 최고 선수(GOAT, Greatest Of All Time)'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역대 한국농구사를 살펴봐도 많은 레전드들이 있었지만 단 한 선수가 이 정도로 독보적이고 지배적인 활약을 펼치며 리그를 장악한 사례는 드물다. 남자농구까지 범위를 넓혀도 프로 출범 이전인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연세대학교 1학년 때부터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단숨에 성인농구계를 평정했던 서장훈 정도가 그나마 지금의 박지수와 비견될 만하다. 현재 명실상부하게 한 종목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의 위상으로는, 축구의 손흥민, 배구 김연경, 피겨 김연아 등의 전성기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농구여제'로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박지수는 아직도 23세에 불과하다. 체계적인 시스템과 선수관리로 선수 수명이 늘어난 현대스포츠를 감안하면 앞으로 10년에서 15년 이상 선수로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박지수가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고 그녀를 상대할 만한 라이벌이 당분간 나타나지않는 이상, 우승과 개인기록은 계속 쌓여갈 것이다. NBA(미국 프로농구) 간판스타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처럼 머지않아 WKBL의 모든 누적 기록 최상단이 박지수의 이름으로 채워지는 것도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여전히 강한 그녀의 열망
 
트로피에 입 맞추는 박지수 14일 충남 아산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과 청주KB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MVP를 받은 KB 박지수가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 트로피에 입 맞추는 박지수 14일 충남 아산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과 청주KB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MVP를 받은 KB 박지수가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수가 GOAT로 등극하는 데 있어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대표팀에서의 성과 정도다. 박지수는 아시아무대에서도 2017 FIBA 아시아컵 4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을 기록했지만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올림픽 본선진출도 무려 13년 만이었다.

1984 LA올림픽 은메달-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등을 차지했던 선배 세대에 비하여 한국여자농구의 위상이 많이 낮아졌고, 대표팀은 현재 박지수가 전력의 60% 이상이라고 할 만큼 의존도가 높다. 올해는 9~10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과 호주 여자농구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다. 박지수의 개인기량은 세계무대에서도 뒤지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지원이 더 절실하다.
 
라이벌의 부재도 아쉬운 부분이다. 정선민은 정은순이라는 큰 산을 넘으면서 성장했고, 서장훈도 압도적이기는 했지만 현주엽과 김주성같은 대항마들이 존재했다. 반면 박지수에게는 라이벌이라고 할 만한 선수가 아예 없다. 김소니아(우리은행) 정도가 국내에서는 그나마 박지수를 견제할 선수로 꼽혔지만, 정통센터도 아니고 사이즈의 차이가 너무 크다.
 
사실 박지수가 WKBL에서 수년간 독보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외국인 선수의 부재가 컸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WKBL은 2020년부터 외국인 선수제도를 잠정적으로 폐지했다. 이는 국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이라는 긍정적인 영향도 컸지만, 한편으로 사실상 박지수를 막을 만한 장신 선수가 없어지면서 팀간 전력불균형이 악화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선수가 부활하지 않는 한 여자프로농구는 '박지수 천하'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외부적인 요인보다 결국 박지수 본인의 꾸준한 건강과 동기부여에 달렸다. 박지수는 성인무대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강행군을 이어왔다. 소속팀은 물론이고 국가대표팀에서도 핵심이다보니 매 경기-매 대회마저 빠질 수 없는 선수로 꼽히며 풀타임에 가까운 시간을 소화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또한 2018년부터는 WNBA에 진출하여 1년에 2개의 리그를 병행하다보니 휴식기가 없었다.
 
이로 인하여 박지수는 매년 혹사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하며 체력적-정신적 부담이 커졌고 잔부상을 몸에 달고 다니게 됐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부상을 참고 끝까지 경기를 소화했다. 물론 언론과 대중은 그녀의 투혼에 찬사를 보냈지만 장기적인 선수생명을 봤을 때는 그리 바람직한 장면은 아니었다.
 
그나마 올해는 WNBA 일정에 참가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며 하반기 대표팀 합류를 앞두고 모처럼 한숨을 취할 수 있게 됐다. 당장의 투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절한 휴식과 안정이다. 제아무리 의지가 강한 선수도 부상과 혹사에 시달리다보면 자칫 '번아웃'이나 매너리즘이 오기 쉽다. 박지수는 이제 특정팀만의 선수가 아닌 한국 여자농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주변의 세심한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이 더 많은 이유는 여전히 성공과 발전에 대한 그녀의 강한 열망이다. 박지수는 올시즌을 앞두고 "입단 후 매년 우승후보로 꼽혔는데 아직 한 번 밖에 못해 자존심도 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올시즌 통합우승과 MVP를 차지한 직후에는, 바로 다음 시즌 2연패 도전과 함께 개인타이틀에서도 김단비에게 내준 블록슛 타이틀을 더한 "8관왕을 노리겠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승부욕이야말로, GOAT가 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박지수의 시대는 지금이 정점이 아닌, 이제 갓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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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G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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