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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영화
▲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스틸 컷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영화
ⓒ 네이베 영화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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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만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머리가 덜 컸던 시절, 사회초년생 때는 성공할 거라는 말을 꽤 들었다. 성공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말이었다. 단순한 기준에서다. 근면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서 직장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 사회생활에 딱!이라고 했다.

나이를 먹고 직급이 몇 단계 오르면서 회사에서 '조금만 더 했으면...'이라는 충고를 종종 들었다. '조금만 더'는 윗사람에게 조금만 더 다가서라는 조언이자 지적이었다. 이른바 실세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것도 참 단순한 기준이다. 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팀장이든 임원이든 사장이든 쉽게 다가간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좋은 척할 수 없을 뿐이지.

"어제부터 인사팀장이랑 형 동생 하기로 했잖아. 장대리 너도 이제 이제부터 차부장들하고 어울려야 해."

대리 시절에 대리 선배가 인사팀장이랑 술 마신 얘기를 들려주며 어깨뽕을 한껏 부풀렸다. 부끄러움은 팀원들 몫이었다. 대리 때부터 이런 류의 얘기가 나돈다. 조직에 따라 다르겠지만, 머리가 더 크니 애들이랑 그만 어울리고 팀장이나 임원들을 찾아다니라는 말을 듣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윗사람 하고 자리 자주 만들어서 얼굴을 비춰야 좋은 자리가 났을 때 당신을 한 번이라도 떠올리는 법이야."

인사평가 피드백에서 팀장이 해준 조언이다. 의도는 충분히 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충언이라도 당사자가 납득할 수 없으면 먼지 같은 말일뿐이다. 이 말이 머리에 콕 박혀 반감으로 변해갔다.

"이제 일만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정치도 같이 해야 돼."

대기업 다니는 후배가 최근 과장으로 진급했다. 직속 임원이 축하 멘트 속에 명확한 지침을 담아주었다. 당연한 수순일까. 갈수록 어려워지는 직장생활이 아닐 수 없다.

선심 쓰듯 던지는 '오늘 XX 임원(팀장) 만나는데 같이 갈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약속까지 깨 가면서 내키지 않는 술자리에 동참하는 이도 많다. 한때는 직장생활의 일환이니까, 공동체의 조화를 위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동참을 위해 약속도 많이 깼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연차가 쌓이니 많은 게 달리 보였다. 과거의 행동은 공동체의 조화가 아닌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됐을 뿐이었다. 현재 내 위치에서 올려봐야 할 이들은 전보다 명확하지만, 이제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고 싶다. 마음이 동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라면 문제되지 않는다. 투명한 진심을 보일 수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우리 회사에서 아랫사람 챙기던 사람들은 다 쫓겨났어."

오랜만에 만난 선배의 말이다. 15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했다는 말에 마치 내가 쫓겨나기라도 한 것처럼 반응했다. '아니거든요!'라고 발끈하면 인정하는 꼴 같아서 적당히 씹어 삼켰다.

선배보다 후배를 더 챙기는 나와 얼마 전 회사에서 쫓겨난 선배의 상사가 테더링됐다고 했다. 선배가 회사 상사 몇 명을 예로 더 들었지만 납득할 수는 없었다. 분명 그 이유가 다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소신'이 불러일으킨 변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다. 직장에는 앞서 언급한 내게 부족한 역할을 기가 막히게 소화하는 동료들이 있다. 꼭 맞는 옷을 입고 행동하듯 자연스럽다. 그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 강요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처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용쓰다 보면 자괴감만 쌓이고, 그 모습이 상당히 측은해 보이지 않을까.

직장에서는 모로 가도 직장인이고 언젠가는 훌훌 털고 나가야 한다. 길지 않은 세월이다. 나의 부족함에 고개를 푹 숙일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 되는 일에 굳이 힘 뺄 필요 없다고 여긴다.

오히려 소신으로 포장해 나만의 길을 묵묵히 가면 그게 내 진짜 인생이다. 이리저리 휩쓸리고 끌려다니던 시절에는 내가 없었다. 반올림하면 20년이 되는 직장생활 동안 많은 걸 보고 느끼고 깨달았다. 돌고 돌아 나를 찾는 시간이 돌아왔다.

얼마 전 만난 한 후배가 회의시간에 팀장에게 팀 회식이 너무 많다는 불만을 얘기했다고 한다. 팀장은 기분이 상했다. 싫은 사람은 빠지라고 제안했다. 후배만 빠진 회식이 몇 번 이어졌고, 차츰 한 두 명씩 회식에 불참하기 시작했다.

뭐든 시작이 어려운 법, 결국 회식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런 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소신 아닐까. 나 때는 아니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명확함을 좋아한다. 물론 이는 '라떼는'도 '세대 차이'도 아닌 성격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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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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