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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양도면 건평리의 봄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의 봄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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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들' 건평리의 봄

강화 양도면 건평리(乾坪里)는 '마른들' 또는 '건들'로 불리었던 동네입니다. 건평리의 너른 들판은 조선시대에 간척을 해서 생겼는데 수로(水路)가 낮아 논에 물 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마른 논이 많아 동네 이름이 마른들(건들)이었다고 합니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렸던 4월 어느 날 건평리에 갔습니다. 들판의 수로는 봄 농사를 앞두고 물을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1906년 봄에 건평리를 찾았던 한 선비도 물이 가득 찬 수로를 보았던 모양입니다. 선비는 '건평동(乾坪洞)'이란 시 한 수를 남겼습니다.
  
名是乾坪卽水坪 이름은 건평(마른들)이지만 물이 많은 수평인가
滿堰春波灌稻粳 뚝에 가득 봄물 차니 논에 물 대기가 좋구나.
且畊且讀諸君子 밭 갈면서 책 읽는 이 모두가 군자이니
聊得斯中一味淸 그러한 가운데서 맑은 기운을 얻는구나.
<沁都紀行(1906)> 華南 高在亨


건평리 바닷가에 건평항이 있습니다. 지금은 작은 포구이지만 과거에는 꽤 큰 항구였습니다. 예전, 배를 타고 육지로 오갔을 그때 건평항은 물자가 넘쳐나던 곳이었습니다. 한강하구를 지나 서울 마포나루까지 가는 배도 출항했고 인천에서 황해도 연백으로 오가는 배도 건평항을 경유했습니다. 그때 건평리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제법 번화했습니다.
 
건평항으로 들어오는 고깃배 한 척.
 건평항으로 들어오는 고깃배 한 척.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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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평돈대
 건평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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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자와 재화가 들고나니 주재소도 들어섰고 금융조합도 있었습니다. 배에 물건을 싣고 내리는 인부들이 많았으니 노동조합도 생겼습니다. 단단한 결속력을 가진 노동조합원들을 화주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또 건평리의 노고산은 화강암과 질 좋은 애석(비석을 만드는 화강암)이 많은 산이라 석공산업도 발달했습니다.

이처럼 번창했던 건평리였지만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조용하고 한적하기만 합니다. 마을 뒤 언덕바지에 서있는 우람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이 마을이 예사 마을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수령이 750살도 더 된 큰 나무입니다. 수백 년씩이나 묵묵히 한 자리에 서서 건평리의 역사를 다 지켜봤을 것 같습니다. 

건평돈대에서 불랑기포 발굴

건평리를 안온하게 품고 있는 노고산(104.9m)에 돈대가 하나 있습니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만든 48개 돈대 중의 하나인 '건평돈대'입니다. 건평돈대는 우리나라 병장기(兵仗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건평돈대에서 조선시대 주력 화포였던 불랑기포가 발굴되었기 때문입니다.

2017년 4월에 건평돈대를 발굴 조사하던 인천시립박물관 연구원들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만납니다. 가장 훼손이 심했던 서남쪽 포좌의 무너져 내린 장대석(長臺石)을 들어내고 흙을 걷어내는 순간 연구원들은 제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을 봅니다. 온전한 모습의 불랑기포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입니다.
       
건평돈대에서 출토된 불랑기포
 건평돈대에서 출토된 불랑기포
ⓒ 인천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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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5일 건평돈대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대표 화포인 불랑기포.
 2017년 4월 25일 건평돈대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대표 화포인 불랑기포.
ⓒ 인천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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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서쪽 해안을 지켰던 돈대들
 강화도 서쪽 해안을 지켰던 돈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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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주력 화포인 불랑기포는 16세기 유럽에서 전해진 서양식 화포의 한 종류입니다. 대포의 포문(砲門)으로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전통 화포와 달리 현대식 화포처럼 포 뒤에서 장전을 하는 형식의 대포입니다.

포신인 모포(母砲)와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子砲)로 분리되어 있고, 모포 뒷부분에 자포를 넣은 뒤 불을 붙여 발사를 합니다. 1개의 모포에 5개의 자포가 한 묶음을 이루면서 하나를 쏘고 나면 또 다른 자포 하나를 넣어서, 연속해서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불랑기포는 당시로 보면 최첨단 신식무기였습니다. 기존의 대포에 비해 여러모로 장점이 많아서 이후 조선의 대표적인 화포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존의 대포는 크기도 크고 무게도 많이 나가서 이동 및 설치가 쉽지 않았는데 비해 불랑기포는 무게가 약 60킬로그램 밖에 되지 않아 설치하기에 쉬웠습니다.

조선시대 최첨단 신식무기 불랑기포

또 기존의 대포가 포탄과 화약을 넣고 발사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것에 비해 불랑기포는 상대적으로 쉽고 또 연속해서 발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료를 보면, 당시 관계자들은 불랑기포의 간편성, 신속성, 전술적 적합성 등의 우수함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불랑기포는 모두 합해 12문입니다. 그중 2009년 서울시 신청사부지(조선시대 군기시 터, 병기 제조 관청)에서 출토된 불랑기 자포 1점(보물 제 861호, 1563년 제작)을 제외하고는 어디에서 출토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에 비해 건평돈대에서 나온 불랑기포는 실전 배치 장소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큽니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돈대에 불랑기포가 배치되었다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된 사례는 건평돈대가 유일합니다.
 
 바다 쪽으로 향한 성벽에 뚫려있는 구멍. 포대의 구멍이다.
  바다 쪽으로 향한 성벽에 뚫려있는 구멍. 포대의 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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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평돈대
 건평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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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평돈대에서 발굴된 불랑기포에는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습니다. 포의 몸체에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를 통해 불랑기의 제작 시기와 관리자, 만든 장인 및 실무 책임자 등을 알 수 있습니다.

康熙十九年 二月 日 統制使全等江都墩(皇)上佛狼機百十五 重百斤 監鑄軍官折衝 申淸 前推管 崔以厚 前萬戶 姜俊 匠人 千守仁

1680년(숙종 6) 2월 삼도수군통제사 전동흘 등이 강도돈대에서 사용할 불랑기 115문을 만들어 진상하니 무게는 100근이다.(감주군관 절충장군 신청, 전추관 최이후, 전만호 강준, 장인 천수인)


건평돈대에서 출토된 불랑기포는 인천시립박물관에 임시 보관되어 오다 강화역사박물관이 보관관리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원래 있던 곳인 강화군으로 돌아왔습니다.  
 
건평돈대의 허물어진 서북쪽 포대. .
 건평돈대의 허물어진 서북쪽 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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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평돈대를 답사중인 사람들.
 건평돈대를 답사중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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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기포가 출토된 건평돈대에 갔습니다. 산자락 길을 따라 가노라니 군데군데 돌을 깬 흔적이 있는 바위들이 보였습니다. 질 좋은 화강암이 생산됐던 노고산입니다. 이 바위들을 자르고 깨서 돈대를 쌓았을 것 같습니다.

건평돈대는 바다를 향한 앞부분의 성벽은 많이 허물어져서 일부 복원을 하였지만 나머지 세 면의 성벽은 옛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돈대를 쌓았던 340여 년 전인 1679년을 상상하며 돈대를 둘러 봤습니다.

성벽 아래로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해놓은 누조도 있었습니다. 누조는 비가 많이 와서 돈대 안에 물이 찰 때 빗물을 빼내는 배수장치로 54개 돈대 중 삼암돈대와 굴암돈대, 북일곶돈대 그리고 건평돈대 밖에 없습니다.

건평돈대에 불랑기포를 설치하자

불랑기포가 출토된 서남쪽 포대도 살펴봤습니다. 그 포대는 복원해서 출토 당시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허물어진 채 남아 있는 북쪽의 포대를 보면서 불랑기포가 흙 속에 묻혀있었을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아울러 발굴 당시의 감격과 흥분도 그려봤습니다.

건평돈대에서 불랑기포가 출토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불랑기포가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릅니다. 건평돈대에서 불랑기포를 발굴했고 역사적인 가치는 어떠한지 등을 알려주는 안내문 등도 없습니다.   
 
2019년, 건평돈대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2019년, 건평돈대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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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복원 공사를 위해 성벽 돌마다 번호표를 붙여 놓았습니다.
 2019년, 복원 공사를 위해 성벽 돌마다 번호표를 붙여 놓았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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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평돈대에 불랑기포를 배치하는 건 어떨까요? 포대에 모형 불랑기포를 설치하는 겁니다. 바다 쪽 구멍으로 포신의 끝머리가 향하도록 해서 화약에 불을 붙이면 금방이라도 포가 발사할 수 있는 모양으로 불랑기포를 놓습니다. 이보다 더한 역사 교육이 있을까요. 머리로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이 마음으로 확 들어올 것 같습니다.

건평돈대에서는 석모도와 강화도 사이를 흐르는 바다가 한 눈에 다 들어옵니다. 그 옛날 건평돈대에서 수직을 서던 병졸들도 이 바다를 바라봤겠지요. 세월이 흘러 바닷가로 차가 다니는 도로가 생기고 건물들도 들어섰지만 바다와 하늘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건평돈대에는 꽃다지 꽃이 노랗게 지천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봄 햇살이 내리쬐는 돈대 안 마당을 거니노라니 낮잠 한 숨 자면 참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봄 한 때를 건평돈대에서 누렸습니다. 
 
꽃다지와 민들레가 활짝 핀 봄날의 건평돈대.
 꽃다지와 민들레가 활짝 핀 봄날의 건평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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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평돈대 기본 정보>

. 소재지 :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산39번지에 위치
. 조성 시기 : 1679년(숙종5)
. 모양 및 크기(m) : 가로로 긴 사각형 모양이며 가로 36m 세로 26m, 둘레는 121m임.
. 인천광역시 기념물 38호.
. 별칭 : '성아지돈대'라고도 불리었음.
. 현 상태 : 문지 및 좌우 석벽이 조금 붕괴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은 편임.
. 그 외 : '정포보' 소속이었으며 남쪽으로 2.2 Km 떨어진 곳에 굴암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3.2 Km 떨어진 외포항의 서편 언덕에 망양돈대가 있다. 

덧붙이는 글 | '강화뉴스'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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