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왕사> 포스터

<열대왕사> 포스터 ⓒ 싸이더스

 
제74회 칸영화제 초청으로 주목받은 중국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 <열대왕사>는 스타일 면에서 공을 드렸다. 미장센적인 측면만 보면 아시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는 왕가위와 대만 뉴웨이브를 이끈 차이밍량 감독이 연상된다. 석양과 같은 색감으로 무더운 여름 발생한 서늘한 사건을 그렸다. 신예 샤이페이 웬 감독은 데뷔작부터 남다른 질감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색깔을 통해 감정을 잘 잡아낸다. 에어컨 수리기사인 왕쉐밍은 운전 중 한 남자를 치고 시체를 버려둔 채 떠난다. 순간의 두려움으로 죄를 덮으려고 했으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때문에 경찰에 죄를 고백하려고 하지만 그 순간들이 쉽지 않다. 그의 죄책감을 잘 보여주는 색깔은 검은색과 붉은색이다.  

이 두 가지 색깔은 왕쉐밍이 사고를 낼 당시에 부각된 색으로 그의 죄책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붉은색은 여름의 더위를 연상시킨다. 검은색은 내면의 어둠과 함께 미스터리의 지점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는 에어컨 수리를 위해 방문한 집이 자신이 죽인 남자의 집이라는 걸 알게 된다. 
 
 <열대왕사> 스틸컷

<열대왕사> 스틸컷 ⓒ 싸이더스

 
남자의 아내인 후이팡과의 만남은 왕쉐밍의 죄책감을 더 짓누른다. 에어컨 수리비를 받지 않는 장면이나 빚을 받으러 온 남자들과 결투를 벌이는 장면 등에서 그의 무게를 볼 수 있다. 

영화는 두 가지 장면을 통해 이 죄책감에 반전을 꾀한다. 자식의 죽음 이후 후이팡이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았다는 점과 남편의 사인이 교통사고가 아닌 총상이란 점이다.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교도소에 갇힌 쉐이밍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순차적인 전개방식을 택하지 않는데, 이를 통해 관객이 다음 장면을 추측하게 만든다.

왕쉐밍은 죄책감을 가지고 자신이 죽인 남자의 진상을 찾아 나선다. 이 지점에서 장르적인 변화 역시 함께 나타난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남자의 심리 드라마를 보여주던 영화는 범죄 서스펜스의 구성으로 판을 새롭게 짠다. 왕쉐밍이 남자의 진상을 파헤쳐가는 모습은 그의 직업인 에어컨 수리기사와도 연결된다. 에어컨을 수리해야 열대기후의 열대야에서 벗어날 수 있듯이 진실에 다가서야 왕쉐밍의 죄책감도 끝이 날 것이다. 
 
 <열대왕사> 스틸컷

<열대왕사> 스틸컷 ⓒ 싸이더스

 
영화에서는 중화권 영화의 전성기 시절 스타일이 엿보인다. 다만 왕가위 감독의 초기 단점으로 지적됐던 지점 역시 닮았다. 스타일에 함몰되다 보니 극적인 밀도가 부족하다.

한 마디로 이야기가 허술하다. 시간순서를 복잡하게 배치한 영화는 그 퍼즐을 조립한 순간 일종의 쾌감을 자아내야 한다. 관객에게 피로감을 유발한 만큼 이에 대한 보상이 주어져야 만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극을 따라가느라 지치고, '왕사(往事, 지나간 일)'처럼 스타일의 잔상만 남다 보니 막상 영화 자체는 쉽게 잊힌다. 미장센을 만들 줄 아는 영리함을 지녔지만 영화 자체를 묵직하게 하는 힘은 부족한 듯하다.

그럼에도 샤이페이 웬 감독의 행보가 기대된다. 첫 작품부터 진한 색깔로 열대야 속 무더위에 빠져드는 미장센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열대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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