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녀의 휴대전화가 유독 굉음을 내며 울었다.
 그녀의 휴대전화가 유독 굉음을 내며 울었다.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다음 이야기는 지인이 실제 겪었던 일이다. 수요일 오후, 한 주간의 중턱은 가장 피로감이 몰리는 요일이다. 심신은 이미 소진됐는데 주말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하필 회사에서 업무도 가장 바빴던 그날. 그녀의 휴대전화가 유독 굉음을 내며 울었다. '띠리 리리-'

"(모르는 번호네. 누구지?)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 50대로 느껴지는 평범한 아주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혹시 상중초등학교 2학년 김수빈(가명) 학생 어머니 맞으신가요?"
"네. 그런데요."


이어지는 더 다급해진 소리.

"아이고! 맞구나! 큰일 났어요. 아이가 하교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이를 어쩐대요! 저는 목격자고요!"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15분, 정확히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신호등 없는 찻길을 1번 건너야 해서 그녀는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신경이 쓰였었다. 그런데 교통사고라니. 이어, 수화기 너머로 아주머니가 있는 현장의 배경음이 들렸다.

"띵동/ 접수번호 130번 손님 / 진료확인서 나왔습니다. / 김 간호사, 섹션 체크했나? / 103호 환자 혈압은 몇이지 / 네, OO 병원입니다 / 진료비 오만 칠천 원입니다 /...... (웅성웅성)(블라블라)"

순간 그녀의 심장이 귀에도 들릴 정도로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고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아이는... 아이는요!!! 어떤가요?"
"아... 아이 잠시만요."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의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

"으엉으엉 앙앙앙 아!!!!!!!!!!!!!!"

그녀는 그 울음소리가 내 아이의 울음소리임을 확신했다.

"수빈아 수빈아!!!"

이어서 아주머니는,

"잠시만요. 선생님 바꿔드릴게요."
"외과 전문의입니다. 아이의 외상이 너무 심해요. 피를 많이 흘리고 있어요. 일단 다발성 갈비뼈 골절이 있고 통증이 심한지 울다가 기절했습니다. 긴급 수술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어 아주머니는 "어머. 세상에 아이가 까무러쳤어요. 이를 어쩐대요. 워매... 이게 무슨 일이래. 빨리 오세요" 하며 유난히도 정신없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 한참 통화 후 이어지는 말.

"당장 1차 수술해야 한다고 하네요. 일단 수술 선납금이 1245만 원이래요. 납부가 안 되면 수술이 안 된대요. 오시는데 얼마나 걸리실까요. 시간이 없는데."

어느덧 그의 손은 빠르게 1245만 원을 계좌이체 하고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 정신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에 들렀다 병원으로 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딸아이가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엄마 왔어?"

그 순간 알았다. 자신이 보이스 피싱을 당했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고 믿었는데 

이 일이 있고 나중에야 지인에게 보이스피싱 당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에게 '왜 더 확실히 확인해 보지 않았냐'고 책망했다. 선납 받고 수술하는 병원이 어딨냐고 핀잔도 주었다. 지인은 말했다. 

"아이 울음소리 들어봐. 그냥 정신이 쏙 빠져."

하기야 어린이 울음소리가 거의 다 비슷비슷하지 않은가. 학교와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알고 있으면 깜빡 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고 믿었다.
 
정신없이 일하던 와중에, 카톡이 왔다.
 정신없이 일하던 와중에, 카톡이 왔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그랬는데 2년 전 2020년 5월, 나 역시도 그날의 그녀처럼 몹시 정신없이 몰아치는 업무 회오리 속 한가운데 있었다. 카톡이 왔다. 시아주버님이었다.

"처남댁, 미안한데 내가 카드를 잃어버려서 지금 점심값을 정산해 줘야 하는데 11만 원을 보내 줄 수 있을까?"

어떤 호칭 앞에 '시'자가 붙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어렵다. "네, 물론이죠"라고 빠르게 입금해 드렸다. '아내 몰래 주식 1억 하신다더니 혹시 다 잃으신 거 아냐? 코인이라도 사신 건 아니겠지'라고 지레 생각하며 걱정까지 됐다. 그리고 다시 울리는 카톡,

'처남댁 미안한데 이왕 민폐 끼치게 된 거 한 번만 더 부탁할게. 25만 원 좀 보내줄 수 있나. 오늘 우리 팀 회식이 있는데 내가 쏴야 해서.'

나는 속으로 '으이그. 주식으로 돈 잃으셨네! 잃으셨어! 에고. 어쩐다냐' 하고 다시 송금해 드렸다. 이런 식으로 송금해 드리기를 네 차례. 내 수중에서 150만 원이 빠져나갔고 '처남댁, 얼마까지 해 줄 수 있어?'라고 문자가 오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당했다!'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사기를 당하다니. 그것도 보이스피싱 사기를... 어안이 벙벙해져 멍한 얼굴로 경찰서를 갔다. 문자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처남댁... 급한데.'
'잠시만요. 은행 가고 있어요.'
'응 빨리 좀 부탁해.'


경찰에게 카톡을 보여 주었다. 경찰은 단박에 "못 잡아요"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흔해 빠진 일이라, 가해자를 잡거나 잃은 돈을 돌려받는 건 체념하라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피해사실 신고서 종이를 성의 없이 툭 내밀었다.

기분이 나빠서 '왜 못 잡느냐'라고 하자 개인정보법 때문에 IP추적을 할 수 없다는 등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내가 말도 안 된다고 하자, 국회의원한테 가서 따지라고 했다. 신고서를 쓰는 동안 어떤 한 경찰이 들어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40대 아주머니가 사기 신고하러 왔어. 통신으로 만난 남자랑 결혼을 약속해서 결혼자금 2000만 원을 보냈다네. 그리고 연락이 끊겼대."
"한 번도 안 만났는데 결혼을 약속하고 돈까지 보내?"


경찰들이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이어서 들어온 그 아주머니와 나는 나란히 앉아서 피해사실 신고서를 작성했다. 아주머니를 언뜻 보니 세상 가여워 보였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아주머니가 외로워 보여서였다.

시선을 내 신고서로 옮기니 그제야 나도 같은 처지로 앉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저 아주머니도 속으로 나를 가엾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슬픈 동지애를 느꼈다.

그렇게 똑똑지 못한 두 여자가 신고서를 쓰는 동안에도 경찰들은 뭐가 재밌는지 속닥속닥 떠들며 농담하고 있었고, 농담이 오가는 책상 위 내 휴대전화에는,

'언제 줄 거야. 처남댁.'
'처남댁. 은행이야?'
'처남댁. 빨리 보내줘.'


라고 깨톡 창에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욱 올라오는 불을 가래 넘기듯 겨우 삼켰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휴대전화를 다시 가져와 경찰서를 나왔다. 역시나 그 후 경찰서에서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이스피싱에 걸리게 만드는 세 가지 단계

2년 전 일이지만, 이 일은 두고두고 지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선배는 깔깔 웃으며 "150만 원짜리 강의 들었네"라고 했고, 언니는 문자로 '돈 이만 원 좀 빌려달라'라고 해서 (근데 나는 또 보낸다!) 보냈더니 "야! 나인지 확인 안 하냐. 이거 완전 윰앤캐시네(내 이름 유미를 줄인 게 '윰')! 현금인출기다, 야"라며 테스트 겸 장난을 쳤고, 남편은 '나는 네 남편인데 백만 원만 보내라. 나는 진짜 네 남편이 맞음'이라는 문자를 수시로 보냈다.

괜찮다는 말도, 책망하는 말도 다 듣기 싫다. 어찌 됐든 바보 같았다는 자괴감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다. 그런데 이런 관조적인 태도들, 조롱거리가 된 게 속상함에서 더 빨리 빠져나오게 하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보이스피싱에 왜 걸릴까, 생각해 보니 이랬다.

첫 번째,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 나도 언젠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화를 받아서 내가 속을 것이라는 생각도 아예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소액으로 시작함. 소액이다 보니 굳이 확인해서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도록 일단 보내게 된다. 그리고 소액을 요구하니 처음부터 의심하지 않았다. 더구나 상대가 어려운 어른이라면 굳이 전화해서 '아무개가 확실하냐' 하기는 힘들다.

세 번째, 정신없는 상황. 일이 생기려면 그렇듯 항상 모든 일이 하필 딱딱 맞아떨어진다. 정신없이 바빴다는 것이다. 사기꾼들은 바쁜 거 어떻게 알았지... 무수히 던진 그물에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이 낚이는 법인가 보다.

며칠 전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남편이 골프채 중고 당근 마켓에서 50만 원 사기당했어. 저렴하게 올라와서 빨리 사려고 입금부터 했대. 완전 바보 같아. 속상해. 바보 아냐."

나는 말했다.

"당사자가 제일 속상해. 자괴감이 상당하다고... 그냥 조용히 밥 차려주면서 말해. '당신 1년 치 담뱃값 다 태웠다. 이참에 금연하자고. 금연 학원 비용 냈다'라고 말이야."

자나 깨나 보이스피싱 조심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태그:#보이스피싱, #보이스피싱, #보이스피싱사례, #보이스피싱피하는법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루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낯선 틈을 찾아 글을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