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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면 열흘 정도 나가는 시니어 클럽이지만 매일 출근하는 느낌이다. 아침은 서둘러 간단히 먹고 여느 직장인처럼 가방을 들고 남편과 같이 집에서 나간다. 따뜻한 봄이 오면서 집에 있으면 무료할 텐데 갈 곳, 목적지가 있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할 일이 있다는 것 또한 기쁜 일이다.

나태주 시인은 시 '선물'에서 오늘 하루가 선물이라고 말했다. 햇빛과 새소리, 맑은 바람이 우선 선물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사물들도 다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선물 같은 이 봄 꽃들을 보기 위해 날마다 꽃들을 만난다. 고맙고 다행인 것은 남편도 싫다고 안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다. 

봄이 오면서 매일 꽃 속에서 사는 것 같다. 시니어에 가서도 꽃그림을 그리고 나면 남편과 바로 꽃구경을 간다. 멀리 여행은 못 가지만 가까운 곳에서 꽃구경에 나선다. 내일이면 비가 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바쁘다.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갈까?" 남편에게 물어본다. 오늘은 이성당을 지나 흥천사 쪽으로 가보자는 남편의 제안에 따른다.   
 
월명 공원 입구
▲ 흥천사 옆 공원 올라가는 길  월명 공원 입구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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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옆 계단으로 월명 공원을 올라간다. 군산에 살면서도 자주 가지 않는 길이다. 얼마 후에  찾아오면 도시가 몰라보게 변해 있다. 예전 말랭이 마을이었던 곳은 어느 사이 집들을 철거하고 공원을 만들어 놓아 깨끗한 모습으로 변했다. 월명 공원은 워낙 넓은 곳이라 올라가는 입구가 여러 곳이다. 월명 공원은 풍경이 다 달라 지루하지가 않아 좋다.
 
월명 공원 벚꽃
▲ 월명 공원 벚꽃 월명 공원 벚꽃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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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공원 하면 맨 먼저 찾는 곳이 흥천사를 돌아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곳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아파트로 이사 간 후에는 산책길만 다니다가 오랜만에 와 보니,  돌계단도 깨끗이 정비가 되어있고 다른 곳에 온 듯한 느낌이다. 입구부터 벚꽃이 만발해 이쪽도 꽃 천지다.
 
공원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장항
▲ 월명 공원에서 바라보는 바다 공원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장항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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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와 잠시 의자에 앉는다. 눈에 보이는 바다와 바다 건너 장항도 한눈에 보인다. 예전에 있던 공장들도 다 사라지고 다른 풍경을 보면서 남편은 옛날을 회상한다.

이토록 만발한 벚꽃을 구경하는 사람이 한두 명 만 보인다. 웬일일까. 휴일이 아니고 어제 월요일이라서 그럴까.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꽃은 만발했지만 사람이 없어 왠지 쓸쓸한 느낌이다.
 
공원 벚꽃
▲ 공원 벚꽃 공원 벚꽃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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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벤치에 앉아 옛날 추억을 더듬는다. 군산은 나에게는 낯선 도시였다. 결혼해서 남편만 바라보고 큰애 낳고 맨 처음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온 곳도 월명공원이었다. 아이를 강보에 싸고 새댁이라 멋을 낸다고 연한 보라색 투피스를 입고 꽃나무 그늘에 앉아 음료수를 마셨던 기억이 또렷이 생각이 난다. 정말 몇십 년 된
추억이 되살아나 마음이 아련해진다. 

이쪽은 산책코스와는 달리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서 그런지 더욱 사람이 없고 조용하다. 수시탑을 오르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동백나무 숲속에서 새소리만 요란하다. 아마도 동박새가 울고 있나 보다. 동박새는 동백꽃 꿀을 좋아하는 새라고 한다. 

꽃은 만발하고 남편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니 마치 젊은 날 데이트하는 기분이다. 사실은 잘 넘어지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손을 잡아 주는 것인데, 모르는 분들이 보면 뭐라 할까. 오랜 세월 곁에 있던 딸들을 다 떠나고 노부부가 된 우리는 옛 추억을 더듬으며 꽃길을 걷고 있다. 그네도 타면서 아주 여유 넘치는 꽃놀이를 한다.
                        
멀리서 보이는 수시탑과 벚꽃
▲ 수시 탑 과 벚꽃 멀리서 보이는 수시탑과 벚꽃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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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말이 맞다. 월명 공원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예전 어린 딸들과 소풍 왔던 추억을 더듬는다. 군산에서 54년을 살았다. 매년 봄이 오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월명 공원의 벚꽃은 내 삶의 발자취가 쌓인 추억의 장소다. 곁에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남편이 있어 마음이 따뜻하다. 
  
수시탑과 벚꽃
▲ 군산시의 상징 수시탑 수시탑과 벚꽃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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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지 않아 수시탑 아래 앉아 바다 건너를 바라보며 지나온 세월들을 헤아려 본다. 딸들 네 명 키울 때는 정신없이 살아왔던 나날들... 이제는 자유롭고 한가해지니 어느덧 나이 들고 말았다. 꽃들을 보고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젠 자꾸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 날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언제 이슬처럼 사라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주어진 삶을 담담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을 손가'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주는 여운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우리 기억에는 잊지 못할 추억이 저마다 있다. 화려하고 찬란한 이 봄날 노부부의 꽃 구경은 꽃비를 맞으며 마무리된다. 바람에 하염없이 꽃비가 내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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