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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악기 하나를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 20대의 어느 날 첼로 소리에 매료 되었고, 그때부터 첼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첼리스트들의 연주를 찾아 들으며 더더욱 멋진 악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때도 첼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첼리스트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나를 발견했다. 동네를 오가며 첼로 교습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곳을 유심히 보고 전화번호를 적어오기도 했다.

첼로가 배우고 싶어서
 
첼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첼리스트들의 연주를 찾아 들으며 더더욱 멋진 악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첼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첼리스트들의 연주를 찾아 들으며 더더욱 멋진 악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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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기는 한 번도 연주해 본 적 없는 내가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새로운 악기를, 그것도 첼로라는 제대로 된(?) 고급 악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뭔가 동네 뒷산도 오른 적 없는데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겠다고 덤비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회사 생활이 한참 힘들 때 뭔가 힐링이 필요해서 뜬금없이 장만한 악기는 첼로가 아니라 우쿨렐레였다.

첼로에 비하면 크기 면에서도, 가격 면에서도, 난이도 면에서도 꽤나 귀여워 보이는 악기였다. 유튜브에서 '우쿨렐레 초보를 위한 강좌' 등을 검색해 보며 우쿨렐레 치는 흉내를 내 보았다. 우쿨렐레로 현악기 맛을 본 후 첼로를 시작해야지 하는 나름의 야심찬 계획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악기의 운지법은 어려웠고 내가 내는 이 소리가 내가 내려는 소리가 맞는건지 아닌 건지 판단도 어려웠다. 첫 현악기를 독학으로 배우려고 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쿨렐레는 방 한구석을 장식하는 소품으로 전락했고, 그렇게 하루 이틀은 금방 한 달 두 달이 되고, 또 몇 년이 흘렀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의 취미 생활을 위한 고정 비용(시간과 돈, 에너지 모두)을 지출하는 것은 점점 더 요원해졌다. 시간이 없어서, 일이 바빠서, 레슨비가 아까워서, 엄두가 안나서… 먹고사니즘에 밀려서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열망을 실현 시키지 못하는 데에는 백만 스물 한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첼로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시간만큼 남편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다. 남편 역시 백만 스물 한 가지의 이유로 미루었던 취미 생활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피아노를 배울 나이가 되고, 남편이 함께 배우기로 하면서 나도 얼떨결에 같이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되었다.

아이가 시작할 때 후루룩 시작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망설였으면 레슨비 따져 보고 시간 따져 보며 또 주저 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남편은 먼저 레슨을 시작하면서 레슨비를 듣더니 망설이길래 내가 부추겨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어부지리로 남편의 격주 레슨에 끼어 들어가게 된 것이고.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지 3달이 지났다. 그동안 개인 사정으로, 또 코로나 확진으로 피아노 레슨을 빠진 적은 있지만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레슨비도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이만큼 돈을 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선생님 앞에서 더 잘 치기 위해서, 곡 하나를 제대로 마스터 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만족을 위해서 더 열심히 연습했다. 덕분에 3개월 동안 우리 부부 둘 다 처음보다는 제법 연주 실력이 늘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왜 그토록 시작이 어려웠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을.

피아노처럼 첼로를 시작했더라면
 
피아노를 시작하고 나서 보니 시작해야 할 이유는 딱 한 가지만으로 충분했다.
 피아노를 시작하고 나서 보니 시작해야 할 이유는 딱 한 가지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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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까지 꽤 긴 시간을 돌아왔지만 남편의 취미 생활에 기대어 나도 엉겁결에 피아노를 시작하고 나서 보니 시작해야 할 이유는 딱 한 가지만으로 충분했다.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 그리고 "그냥 시작" 하는 작은 용기를 내는 정도면 되었다.

크고 거창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것 저것 따지다 보면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돌아 돌아 어렵게 깨달았다. 배워 보고 싶은 게 있다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시작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첼로를 배우는 것이 에베레스트 등반처럼 거대하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내가 목표 지점을 유튜브에서 보던 첼리스트들에게 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대단한 첼리스트가 되려는 게 아니라 첼로라는 악기를 조금 다룰 줄 알게 되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않고 자꾸 쉬운 것을 시작해 볼까 기웃거릴 시간에 첼로를 시작했더라면 지금쯤 뭐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저는 취미로 첼로를 배우고 있어요" 정도의 말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말이다. "저는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요"라는 말대신.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피고 지는 봄은 시작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나는 올해 안에 첼로를 시작해서 나의 취미 생활 리스트에 악기 하나를 추가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미뤄 두고 있었던 마음 속의 열망이 있다면 봄바람을 핑계 삼아 스윽 시작해 보면 어떨까?

하기 어려운 백만 스물 한 가지의 이유를 모두 제쳐 두고 "하고 싶다"는 이유와 "그냥 시작" 할 수 있는 용기로 무장한 채 "나"를 조금은 우선 순위에 두고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개인 SNS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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