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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옆자리 직장 동료가 기지개를 피며 내일부터 쉰다기에 "연차야?"라고 물어보았다. 동료는 피곤한 표정 사이로 웃음을 숨기지 못하면서, 주말을 끼고 총 5일 동안 쉴 수 있게 휴가를 상신해 두었다며 덤덤한 척 말했다. 그의 말에 괜스레 부러운 생각이 들면서도, 휴가기간 동안 급한 업무가 나에게 쏠리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불안감이 들면서 '나는 언제 연차를 쓸까?'라는 생각에 달력을 뒤적거렸다.

간단한 일화를 소개한 이유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직장에서 휴가를 간다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연차'라는 법정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예시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근로기준법상 연차유급휴가는 노동관계법령에서 특별한 사유(산전후휴가의 경우 출산 등)가 없더라도 모두에게 주어지는 대표적인 법정 휴가제도로, 계속근로기간 1년 미만이면 1개월 만근 시 1일씩, 1년 이상이면 매년 15일(가산휴가 제외)씩 발생한다는 것은 직장인이라면 상식에 가깝다.

다만 장시간 노동에 너무나 익숙해진 탓일까? 지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상용직 노동자의 연간 연차휴가 사용일수는 평균 10.9일이며 소진율 기준으로는 72.4%로 나타났다. 사용일수가 증가하고는 있으나(전년 대비 1.0일 증가) 여전히 자신에게 부여된 법적 휴식권을 모두 활용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자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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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물었더니, 가장 많은 답변(21.8%)으로는 '연차수당 수령'이 꼽혔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연차유급휴가를 휴식권보다는 '급여의 보전'이라는 금전적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실제로 위 통계상 4일분의 연차휴가 미사용수당은 올해 최저임금 기준으로도 29만 3120원(주 40시간 노동자 기준)이니, 연말정산과 더불어 일종의 보너스라고 여길 만한 적지 않은 금액이기는 하다.

이렇듯 노동자 스스로가 금전보상을 선호하다 보니 연차유급휴가의 본래 취지가 퇴색되었고, 이를 개선하고자 지난 2003년 최초로 근로기준법에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제도(이하 사용촉진제도)가 도입된 이래, 2020년부터는 1년 미만 근로자에게 매월 발생하는 연차유급휴가도 사용촉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본 취지와 다르게 사용되는 사용촉진제도

이 제도의 취지는 노동자들에게 "제발 쉬라"는 사회의 메시지를 강력히 권고하는 데 있다. 상기하였듯 '직장상사 눈치 보는 시절'이 한참 지났음에도 돈으로 받겠다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가뜩이나 장시간 노동이나 과로로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쓴 국가 차원에서 "사용촉진제도를 시행하면 돈으로 못 받으니 연차유급휴가를 모두 사용해라"라는 압박을 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용자가 연 중도에 "전반기에 연차 15일 중에서 6일밖에 안 썼으니, 나머지 9일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여 노동자가 그에 대해 날짜를 지정하여 회신하도록 하고(소위 '1차 촉진'), 이러한 회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용자가 임의로 특정일을 연차휴가로 지정하여 쉬도록 강제하는(소위 '2차 촉진') 방식으로 연차유급휴가를 모두 소진시켜 미사용수당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근로기준법> 제61조).

이렇듯 제도의 본질 자체가 어떻게든 연차유급휴가를 모두 쉬도록 강제하는 데 있음이 분명함에도, 실무적으로 사용촉진제도는 사용자의 '꼼수'로 악용되고 있다. 일명 '왝 더 독(Wag the dog,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주객전도의 상황을 의미함)' 현상처럼, 많은 회사에서 사용촉진제도는 "우리는 법적 절차를 거쳤으니, 설령 휴가일에 직원들이 일하였더라도 미사용수당을 주지 않겠다"는 합법적 인건비 절감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위 논리의 핵심적인 근거는 2010년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에 기반을 둔다. 이에 따르면 휴가일에 직원이 출근한 경우 사용자는 "노무수령 거부의사를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면서, 그 예시로 "연차휴가일에 해당자의 책상 위에 '노무수령 거부의사 통지서'를 올려놓거나, 컴퓨터를 켜면 '노무수령 거부의사 통지' 화면이 나타나도록 하는 등 사용자의 노무수령 거부의사를 인지할 수 있는 정도"라는 다소 형식적인 답을 내놓았기 때문이다(근로기준과-351, 2010-03-22).

이에 많은 회사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휴가일에 '노무수령을 거부합니다'라는 내용을 전달하기만 하면 실제로 그가 일했는지와 무관하게 추가 지출이 없다는 식으로 입맛대로 해석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런 내용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기계적으로 활용되고 정답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아래와 같이 여기에는 현실적인 허점이 있다.

[이슈1] 휴가일에 출근했는데, 회사가 모른다고?

위 지침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다 보면, 실무적으로 노동자들이 출근하여 컴퓨터를 켜고 "오늘은 그대의 휴가일이니 일하지 마시오"라는 팝업창이 뜨자마자 이를 끄고 자리에 앉아 평소와 같이 일하더라도 사용자는 할 일을 다 했으니 이를 '자발적 근로(勤勞)'로 보아 연차유급휴가는 사용된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심각한 실수다. 직원이 단 한 명인 회사라면 모를까(심지어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연차유급휴가가 선택사항이다), 현실적으로 자기 직원이 나와서 일을 하는데 이를 사용자가 모를 리도 없고, 관리자로서의 책무까지 고려하면 '몰라서도 안 될 것'이기에 이를 법적으로 판단할 때에 고의적인 회피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차휴가사용촉진 제도가 일부 사용자의 '꼼수'로 악용되고 있다.
 연차휴가사용촉진 제도가 일부 사용자의 "꼼수"로 악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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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이는 더 명확해진다. 적어도 휴가자가 속한 부서 관리자라면 그가 휴가일임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을 것인데, 분명히 휴가를 써 놓고는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직원을 보며 "저 직원 정말 훌륭한 태도를 지녔다"고 생각만 한다면 묵시적으로 노무제공을 승인한 것과 마찬가지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 대법원은 사용계획서상 휴가일로 지정된 날에 출장을 간 사건에서, 회사가 당해 직원으로부터 출장 관련 기안서를 제출받는 등 해당 일자에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게 됨을 사전에 인지하였음에도 이에 대한 노무 수령 거부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으므로 사용촉진제도가 적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0.2.27. 선고, 2019다279283 판결).

여기에 만일 아무 생각 없이 추가적인 업무 지시를 하달한다면? 이 경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사용자로부터의 지휘·명령이 행사된 것으로 봄이 명백하므로, 그날을 당해 직원이 노동으로부터 면제되는 휴가일이라고 볼 수 없음도 명백해진다. 이 상태에서 연말에 미사용 수당을 따로 지급하지 않는다면, 이는 100% 임금체불이다.
  
[이슈2] 사용계획서로 제출한 날에 연차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보다 실무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자. 다수의 사업장에서는 사내 그룹웨어 등 전자적 시스템으로 결재체계를 구축하면서 연차유급휴가 또한 이를 통해 신청하고 상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용계획서는 법적으로 '서면'으로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진짜 종이 문서 내지는 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진 전자문서를 통해 별도로 제출하도록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다 보니 A라는 직원은 사용계획서에는 3일 남은 연차휴가를 각각 9.1, 10.1, 11.1에 사용하겠다고 작성해놓고는 정작 그룹웨어에는 이날 연차를 상신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내 시스템상으로는 애초에 휴가일이 아니다 보니, 어지간히 꼼꼼한 관리자가 아닌 이상 몇 달 전 제출한 사용계획서를 들여다보면서까지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잔여 연차유급휴가의 "전부 또는 일부의 사용 시기를 정하여 사용자에게 통보"하지 않은 경우 2차 촉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문만 놓고 보면 애초에 사용계획서를 안 낸 직원에 대해서만 2차 촉진을 하면 된다고 해석되나,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쓰겠다고 해 놓고 정작 안 쓴 경우"를 제대로 된 통보로 볼 수 있겠냐는 문제가 대두된다.

사용촉진제도의 취지가 휴식권 보장을 위한 반강제적 휴가 소진에 있음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이렇게 '안 쓴 휴가'는 애초에 계획을 통보하지 않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2차 촉진의 대상으로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여 실질을 따져 보았을 때 기존의 사용계획서 제출이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면, 적법한 사용촉진제도가 아니라는 판단을 받게 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휴식권 온전히 보장하는 사용촉진제도로 활용해야

따라서 회사는 단순히 형식에 지나지 않는 사용촉진절차만을 행해 두고,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이 그날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명시적·암묵적으로 이를 수령하는 행위를 더 이상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요즘, 관련 시스템의 발달로 굳이 출근하지 않더라도 업무 지시를 할 방법은 많으며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게 될 법관이나 감독관들도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굳이 대면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방법으로도 휴가일에 업무를 지시하거나, 도저히 기한 내에 처리할 수 없는 업무를 부여하고는 그 기간에 연차를 사용하도록 반강제하는 '반칙'은 지양해야 한다.

법적 휴식권을 온전히 누려야 할 노동자 또한 법의 취지를 고려하여 업무에 지장이 되지 않는 선에서 가급적 휴가를 모두 사용하도록 하며, 업무 스케줄로 인하여 기존에 계획하였던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명시적으로 그 변경 일자를 밝혀 회사의 인사관리에 혼선을 주는 일을 피해야 한다.

나아가 기업문화의 차원에서도 정당한 연차유급휴가 사용에 대하여 눈치를 주는 일이 없도록 인식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충분한 휴식이 뒷받침되어야만 업무능률이 오르고 개인의 건강관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휴가자가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서로가 업무를 적극적으로 품앗이하는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나가기를 기원한다.

태그:#연차유급휴가, #공인노무사, #연차사용촉진, #연차수당, #연차미사용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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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조은노무법인 공인노무사, HR컨설턴트(위장도급/산업안전보건 등)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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