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의 협박"을 고발하고 공천룰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7일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중선 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의 협박"을 고발하고 공천룰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7일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중선 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제 유일한 약점은 '후보'라는 것뿐이었다."

이중선 전 예비후보(더불어민주당)는 1년 가까이 준비해 온 전주시장 선거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당 내부의 모순이자 정치권 전체의 병폐인 '공공연한 비밀'을 터뜨리며 7일 스스로 후보직을 내던진 것이다.

"이걸 공개하는 순간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는 지지율이 낮은 후보였다. 돈과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지지율 낮으니까 뒤집어보려고 얄팍한 수를 부리는구나'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한 사람의 돌출행동으로 보지 말고 여야가 진지하게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발단은 이 전 후보가 처음 전주시장 선거 출마를 마음먹은 지난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치권에서 활동하며 친분이 있던 두 사람이 선거를 돕겠다고 나선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A씨는 부동산관리업체의 간부이자 지역 정치권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었고, B씨는 같은 업체의 대표이자 지역 시민단체의 대표를 맡았던 사람이었다.

"처음엔 '너 시장되면 나 좀 도와줘',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농담으로 들었다. 그런데 점차 강도가 세지고 압박이 심해졌다. 이후엔 협박이라고까지 느껴졌다. 그들은 '전주시내에 200명을 만들어야 하고 그 사람들이 활동하려면 매달 한 명당 50만 원씩 줘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계산해도 한 달에 1억 원이다. 그렇게 조직을 만들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선 후) 전주시 국·과장 자리를 요구했다. 만약 그 돈을 못 만들면 기업으로부터 그 돈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을 주고, (당선되면) 그 기업의 이권을 보장할 권한까지 달라는 말까지 하더라."


이 전 후보는 그들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지난해 9~10월에 두 사람이 자신을 떠났다고 증언했다.

"제가 '선거를 도와주기로 했으면 도와주면 되는 것이지 왜 사람을 못살게 구냐'고 항의했다. 결국 9월 말에 A씨가 떠났다. 그러니까 B씨가 'A를 잡아야 한다. A가 선거의 귀재다. 전주시 국·과장 자리가 120개가 넘는데 왜 그 몇 개를 못 주냐'면서 저를 설득하더라. 그럼에도 제가 고개를 숙이지 않자 B씨도 10월 초에 떠났다."

그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 사람들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의 협박"을 고발하고 공천룰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7일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중선 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의 협박"을 고발하고 공천룰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7일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중선 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A씨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또 있었다고 한다. 지역 신문사의 C 기자였다. A씨는 C 기자가 속한 신문사의 고위직을 맡기도 했다. 이 전 후보는 "C 기자가 자꾸 'A를 안고 가라'고 말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전 후보가 그 까닭을 추론한 건 이후 한 제보자로부터 녹음파일을 건네받으면서였다.

"제3자와 C 기자의 대화가 담겨 있는 녹음파일을 살펴보면 A씨와 C 기자가 전북 장수에서 의료폐기물 사업을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또한 전주시장 선거 이야기와 제 이름도 나온다. 녹음파일을 받고서야 이런 맥락이 있었다는 전체 그림을 알게 된 거다."

녹음파일 속 C 기자는 'A씨가 전주시장 선거에 쓸 돈을 건설업체로부터 끌어왔는데 이를 이 전 후보가 받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취지로 말을 한다. C 기자는 건설업체 실명과 구체적 액수까지 거론한다.
 
C 기자 : "자, 이번에 ◯◯건설, 그 다음에 어디야 △△건설 다 스폰서 갖고 왔어. 한 7억인가 8억. 중선이(이 전 후보)가 안 받은 거야. (중략) 이 형님(A씨)이 받아놨는데 병X처럼 붕 떠버린 거야. 다시 돌려주면 병X되는 거 아니냐 이거야. ◯◯건설에서 지금 3억 배팅했지 △△건설에서 2억 배팅했지. □□에서 2억(까지). (총) 7억을 갖고 왔어. 이 형이.

(중선이가) 받으면 독 된다고, 그거 없어도 된다고 (그래). 조직선거 안 하겠다는 거야. 근데 이 형님은 '야, ◇◇아(C 기자), 얘(이 전 후보)가 내 돈을 안 받는데 걔를 내가 어떻게 (선거를 지원)해주냐' 이거야. 이 양반은 돈으로 받아갖고 묶어버리려고 하는데."
 
이 전 후보는 A·B씨 두 사람이 자신을 떠난 뒤인 2021년 12월 13일 공식 출마선언을 했지만 "이후에도 한 동안 일을 못했다"고 토로했다.

"하루에도 10명 넘게 전화를 걸어와 'A와 어떻게 된 거냐. 너에 대해 이런 소문이 도는데 맞냐'고 묻더라. 저를 비난하는 안 좋은 루머도 많았다. 그 사람들한텐 전화 한 통이지만 저는 수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느라 버거운 상황이었다."

'안심번호'의 불편한 진실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의 협박"을 고발하고 공천룰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7일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중선 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의 협박"을 고발하고 공천룰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7일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중선 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이중선 전 후보는 A씨를 "브로커"라고 칭하며 그로부터 '조직'과 '여론조사'에 대한 제안도 받았다고 했다. 우선 이 전 후보는 "예전엔 서울에 살든 강원에 살든, 전주의 주소 하나를 따서 전북도당에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밀어 넣으면 됐다"고 말했다. 경선 룰(권리당원 50%+여론조사 50%)과 권리당원 주소지 이전 방식의 허점을 활용해 '작업'이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막자 지금은 '여론조사'를 '작업'하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젠 권리당원 주소지 이전을 위해선 주민등록등본 등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권리당원으론 장난을 칠 수 없으니 신종으로 휴대전화 요금청구 주소지를 바꾸는 방법이 나왔다. 그건 통신사 홈페이지나 전화를 이용해 바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경선 룰에서 '여론조사'로 활용되는 안심번호가 그 휴대전화 요금청구 주소지를 기준으로 추출된다. 전주 인구가 65만 명인데 만약 3000명의 주소지를 옮겼다고 하면 그 사람 중 상당수에게 전화가 올 거고 그들은 '02'로 시작하는 전화가 오면 부탁받은 사람을 찍는 것이다. 여론조사 5~10%p가 그냥 왔다갔다 한다. 어마어마한 영향력이다."


그는 "소위 '조직'이란 게 이런 것이다. 저는 '콜떼기 정치'라고 표현한다"라며 "휴대전화가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전주와 전북만의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구·경북이라고 다를까"라며 "경선만 통과하면 당선되는 1당독재 지역은 경선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각종 방법이 동원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는 아무리 개선해도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걸 브로커들이 파고드는 것이다. 브로커는 영향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정치인이 필요한 거고 정치인은 당선을 위해 일정 부분 브로커를 이용하는 것이다. 악어와 악어새다. 하지만 브로커 없이도 충분히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뿐만 아니라 이 전 후보는 "단언컨대 조직은 자판기"라며 "말이 좋아 시스템 공천이지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 집 건너 한 집이 민주당원인 전북에서 지금의 룰(권리당원 50%+여론조사 50%)은 조직 동원 선거를 하라는 것이다. 그걸 시스템 공천이라고 멋지게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라며 "조직은 자판기이기 때문에 결국 돈 선거를 조장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걸 어떻게 깨겠나. 외국에선 30대 초반 국가지도자가 나온다. 근데 한국에선 93학번인 저보고도 어리다고 한다. 만18세도 출마할 수 있는데 93학번이 어리단다. 이런 구조에서 살아남으려면 돈도 많이 벌고 조직도 갖춰야 하는데 최소한 지역에서 20년, 30년 활동해야 가능한 것 아닌가. 그러니 쉰 가까이 된 저보고도 어리다고 하는 거다. 청년정치 다 사기다. 청년을 꽃으로 써먹는 거다. 시스템 공천이란 것 때문에 아예 싹도 자라지 못하는데 청년정치가 대체 어디 있나.

청년 정치인들은 기존 정치인과 다른 출발선에 세워야 한다. 20% 가산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지율 10%인 후보에게 20% 가산을 준다고 해도 지지율 12%다. 청년 가산으로 경선이 뒤집힌 사례가 어디에 있나. 어린이, 성인, 할아버지를 '평등'이란 이름으로 출발선에 세워놓고 100m 달리기를 한다면 당연히 성인이 이길 수밖에 없지 않나. 어린이와 노인을 좀 더 앞으로 배치해야 평등한 것 아닌가. 지금의 시스템 공천은 이름은 좋지만 이 예시처럼 실제론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장치다. 못 뚫는다."
 

그러면서 이중선 전 후보는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권 전체의 문제라고 본다. 1당 독재 지역들의 구조적 문제다"라며 "정치권이 국민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면 국회가 정개특위를 열어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정치인들이 잘할 필요가 없다. 시민이 아닌 당에만 잘 보이면 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왜 지금? 공개 순간 사퇴 생각했기 때문"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의 협박"을 고발하고 공천룰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7일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중선 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의 협박"을 고발하고 공천룰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7일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중선 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이중선 전 후보는 지난해 5~12월 사이 벌어진 일을 왜 지금 공개하는지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는 당시 대선이 엄청나게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제가 겪은 일을 공개하며 제도개선 등을 요구하고 싶은데 당시엔 정쟁의 소재로 쓰일 가능성이 높았다. 두 번째는 저도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생활인이다. 우리나라에서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다뤄왔나. 더구나 좁은 전주 바닥에서 '쟤는 수틀리면 폭로할 사람이야'라는 프레임을 안고 살아가기 쉽지 않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듯, 저와 제 가족이 전주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세 번째는 이걸 공개하는 순간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는 돈과 조직이 없는 지지율이 낮은 후보였다. 폭로로 상황을 바꾸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저는 2000년 노무현 후보가 부산 북·강서을에서 패한 후 노사모에 가입했고, 전북 노사모 대표일꾼으로 일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제가 아는 노무현은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충돌했을 때 후자를 택한 사람이다.

그런 분에게 정치를 배운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일을 그냥 넘길 수 있겠나. 민주당은 진지하게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국민의힘도 이걸로 민주당을 공격할 생각만 하지 말고 자신들의 텃밭 지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니 한 발 더 나아가줬으면 한다."


이어 그는 "그동안 선거를 도와줬던 많은 분들이 떠올라 너무 마음이 아프다. 12개월째 저와 함께 했던 분들에게 정말 죄송할 뿐"이라며 "정치권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시킬 방안에 대해 여야가 꼭 합의를 이뤄냈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A·B씨와 C 기자는 지역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전 후보의 고발과 녹음파일 내용에 대해 부인했다. A씨는 전주MBC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건설업체에서) 돈을 갖고 오겠나"라고, B씨도 "(이 전 후보에게 인사권·사업권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C 기자는 "술먹고 무슨 얘길 못하나. 솔직히 저는 기억도 안 난다"라고 밝혔다.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의 협박"을 고발하고 공천룰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7일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중선 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의 협박"을 고발하고 공천룰 등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7일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중선 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태그:#이중선, #더불어민주당, #전주시장, #예비후보
댓글1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