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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몬스테라 화분에서 완전한 형태의 모습을 갖춘 새잎이 나왔다. 상태가 완전히 싱싱하고 건강한 몬스테라를 사온 게 아니었다. 조금 아슬아슬, 비실비실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자꾸 눈이 가서 데려온 아이였다.

게다가 주인아저씨가 포장하면서 상처까지 내버려서 조금 안쓰러운 마음으로 데리고 있었는데 줄기 안쪽에서부터 연두색 잎사귀가 스르르 기지개를 켜듯 솟아나오는 모습은 조금 감동스러웠다. 이제 상처가 있던 원래 잎보다 새로 난 잎이 더 크고 단단하게 자라 몬스테라 화분이 제법 비옥해졌다.
 
몬스테라
 몬스테라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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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예상 외의 기쁨을 주는 식물도 있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어려운 아이도 있다. 화원에 갔더니 구근이 달린 튤립을 팔길래 너무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덥썩 안아왔다.

손에 흙을 잔뜩 묻히며 화분에 심었는데 비실비실 간신히 서 있더니 며칠만에 꽃이 후두둑 너무 빨리 져 버렸다. 이럴 때면 아쉽고 난처하다. 내가 좀 더 잘 키웠어야 했나, 햇빛이 부족했던 걸까, 물을 너무 많이 준 걸까. 정확한 답은 알 수가 없다.

'키우는' 일

작년에 심었던 포인세티아는 한 달만에 시들시들 말라버려 키우기 어려운 식물인가보다 했는데 올해 같은 자리에 심은 포인세티아는 걷잡을 수 없이 자라 밀림숲이 되었다. 같은 장소에 서 있는 두 개의 율마 화분 중 하나는 쑥쑥 자라고 하나는 누렇게 떠서 스러지기도 했다.

식물을 몇 년 키워도 여전히 정확한 감을 찾기란 어렵다. 화분이 놓인 자리도, 햇빛도, 물도 매번 '적절한 정도'가 그때그때 다르다. 인터넷에 있는 전문적인 지식도, 식물고수들의 성공담도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

그래서 식물을 키우는 일이 그만큼 또 매력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를 터득하면 뭐든 똑같이 적용되고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자로 잰듯 자란다면 온라인게임 속 캐릭터의 레벨 높이기와 별반 다르지 않을테니까.

사람 사는 일도 대부분 그렇게 답이 없고 예측대로 되지 않으니 식물을 키우는 일이 삶과 닮아 있다고 하나보다. 아이를 키우는 일과도 닮아 있고.

우리집에는 십대 남매가 있다. 두 남매는 금전수나 고무나무같은 아이들이어서, 적당한 햇빛에 내어두고 생각날 때 물을 주며 잘 크고 있나 확인만 하면 알아서 쑥쑥 자라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 무던하게 잘 자라는 고무나무가 이유없이 시들해지기도 하고, 금전수 잎이 어느날 갑자기 누렇게 뜨기도 한다. 사춘기라는 터널을 겪으며 우리 아이들도 늘 무난하고 무탈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이없는 성적이 나올 때도 있고, 순하고 바르다 믿었었는데 어느날 문득 방문을 쾅 닫거나 말대꾸를 하기도 한다.

수험생인 딸과 며칠째 냉전중이다. 스트레스도 많을테고 불안한 시기임을 이해하면서도 관계를 풀어보려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자꾸만 날이 선 대화가 오가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양분이 부족했나? 물이 과했나? 그 답은 오리무중이다.

그렇지만 나뭇잎을 하나 둘 떨구기 시작하는 화초가 보이면 매일 들여다보고, 잎을 닦아주고 흙이 말랐는지 살펴보게 되듯이, 아이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느껴지면 시도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말을 걸어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맛있는 걸 함께 먹고 요즘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라는 틀 안에서 노력은 해보는 것이다.

노력과 관심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죽어버려 화분을 비워야 하는 것처럼 인생의 많은 일들이 포기하고 체념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울 때도 기대하고 채근하기보다는 내려놓고 한 발짝 물러서야 하는 상황이 더 많지 않은가.

하지만 아주 가끔은, 시든 몬스테라 화분에서 새 잎이 나오거나, 창틀에 놓아두고 잊고 있던 선인장이 혼자서 꽃을 피워내는 일같은 놀라운 일이 벌어질 때도 있다. 그런 예상치 못한 감동들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또한 삶이기도 하다.

마음을 기울이는 게 전부
 
튤립
 튤립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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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 크게 속썩이는 일 없던 아이가 엄마에게 가혹한 말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을 보는 건 쉽지 않다. 마음이 아프고 어디서 잘못된 건지 계속 마음이 쓰인다.

찬란한 꽃을 달고 있던 튤립을 생각한다. 갑작스레 시들어버려 너무 속이 상했는데, 구근이 흙 속에서 건강하게만 버틴다면 언젠가 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나는 그때까지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화분을 놓아두고 물을 주며 기다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가도 땅속에 뿌리만 남았던 튤립이 어느날 문득 싹을 피우고 꽃봉오리를 내어놓는다고 생각하면 또 얼마나 감동적인지. 

화원에서 데려온 상처 있는 몬스테라는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게 해주고, 너무 자주도 아니고 아주 가끔도 아니게 물주기를 하며 키웠다. 상처가 있는 만큼 더 살펴주고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 주었더니 무탈하게 살아내어 근사한 새 잎을 내어 놓았다.

그 적절함을 찾기까지, 삶에서도 관계에서도 적절한 거리와 화법을 찾는 일들이 인생의 영원한 숙제이겠지만, 답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싹은 돋아나고 생명은 자라난다고 믿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개재됩니다.
https://brunch.co.kr/@writeurmind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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