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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남편 : "동생이 그러는데, 내 사주에 '문밖에 여자'가 있다는데?"
나 : "뭐라고? 여자, 누구?"
남편 : "그야 나도 모르지. 처신 잘하라고 당부하더라고."
나 : "잠깐만, 혹시 그 선배 아니야?"


명리를 공부하는 큰 시누에게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를 전하며 남편은 배시시 웃음을 흘린다. 50대에도 여전히 인기가 있나 싶어 기분 좋아 보이는 남편과 달리, 내 마음은 평상시 중년 부부의 데면데면 모드에 갑작스레 빨간 불이 켜지며 경계모드로 바뀐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남편 주변 여인들을 머릿속으로 죽 훑는다. 한 사람이 바로 떠올랐다.

남편의 여사친
 
 남편은 직장으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선물받았다.
  남편은 직장으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선물받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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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크리스마스에 남편에게 케이크를 보냈던 남편의 대학원 동기이자 나에겐 선배인 언니. 직장으로 배달 온 케이크를 남편은 머쓱하게 집으로 들고 와 가족들과 나눠먹었다.

미심쩍은 눈초리로 '어찌 된 일이냐, 왜 당신만 주는 거냐, 메시지는 뭐라고 하더냐' 등 꼬치꼬치 캐묻는 가족들의 질문 세례에 남편은 '모르겠다, 자기도 받는 기분이 좀 이상하다'며 얼버무렸고, 듣는 나는 영 찝찝했다.

대학원 같은 연구실에서 만나 사귄 남편은 이제껏 한 번도 여자관계로 내 심사를 볶은 일이 없다. 늦은 나이까지 공부하고 직장을 잡느라 다른 데 눈 돌릴 여력이 없기도 했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점잖아서 외롭고 힘들어도 버티어내는 사람이었다, 내 경험으로 아는 한. 결혼 후 살아오며 겪은 억울한 일들과 해소되지 않는 불만이 적지 않지만, 남편의 그런 곧은 성품만은 신뢰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 선배 언니의 케이크 선물을 가볍게 여기지 못하는 이유는 남편에 대한 이런 호감 표현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과 그 선배는 졸업 후나 각자 결혼한 후에도 동창모임이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동료로서 가끔씩 교류하곤 한다.

'동창이니 그럴 수 있지' 하며 태평하게 여기다가도 가끔씩 '이건 뭐지?' 싶은 일이 있다. 언젠가는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 밝혔는데, 남편은 그 말을 들으며 '어, 난데?' 싶어 의아했다고 한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먹는 조식에서 생선살을 발라준 남편의 여사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먹는 조식에서 생선살을 발라준 남편의 여사친.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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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몇 해 전, 제주도 출장에서는 남편을 뜨악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먹는 조식에서 그 선배가 가시 바른 생선살을 남편 밥 위에 얹어 주었다는 것이다.

순간, 조식 자리에 의문의 정적이 흘렀고, 남편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아니, 남의 배우자 깻잎을 잡아주는 일로도 전 국민이 핏줄을 세우는 마당에 생선 살을 발라, 그것도 굳이 밥 위에 얹어 주었다고??!!

흥분한 나는 이 행위의 뿌리가 과연 우정이냐, 애정이냐를 놓고 남편과 두고두고 설전을 벌였다. 나는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는 남편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고, 남편은 괜한 오해일 수 있다고 했다. 오랜 동창인데 어떻게 그리 딱 잘라 말을 할 수 있느냐며 항변했다. 하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려 해도 그 행위는 내 기준의 한계를 분명히 침범했다고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은퇴 후에 사무실을 차릴까를 놓고 고민 중이라 했더니 대뜸 함께 하자고 하더란다. 이제 나는 그 선배 이야기가 신경 쓰이고 거슬리기에 이르렀다. 아는 후배라서 나를 얕보는가 싶어 화도 나고, 20여 년 간 애써 꾸려 온 가족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무시당한 듯 허망한 기분도 든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의가 의심스러운 애매한 언행들을 이토록 오랫동안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표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었다. 흥분을 한풀 가라앉히고 보면, 사실 이 선배가 남편에게 정말 남다른 감정을 품었는지 어떤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모든 것은 그저 나의 기분일 뿐이고, 추정일 뿐이다. 그러니 정확하지 않은 일에, 그 선배를 매도하여 내가 나서서 섣부른 경고나 충고를 하는 것은 자칫 경거망동일 수 있다. 

주변에 이런 고민을 나누다 상담가에게 한번 조언을 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이나영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이 사안을 해결할 열쇠가 남편에게 있다고 했다(역시!). 남편에게 그 선배는 그저 여자 사람 친구일 뿐 전혀 이성적 호감을 느낀 적이 없다 해도, 아내가 느끼는 불쾌함을 방관하여 상황을 방치시키고 있음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다만, 일을 풀어나갈 방향을 생각해 볼 때, 그 선배의 언행이 현재 남편과 나의 부부관계를 정말로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오랜 시간 이어 온 남편의 우정과 인간관계가 깨지는 것을 감수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 조언을 듣고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그 선배의 애매한 행동이 수차례 거슬리긴 했지만, 남편과 나의 부부관계에 타격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늘 있던 일들을 장난스럽게 다 공유해 주었고, 웬만하면 나도 남편과 그 선배의 오랜 우정을 경솔하게 깨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최종적으로 합의를 했다. 그 선배가 한 번 더 애매한 언행을 할 경우, 내가 신경 쓰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기는 하되, 관계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경쾌한 톤으로 전한다는 데에 동의했다. 이로써 그간 말 많고 탈 많았던 '문밖의 여자' 사건이 깔끔하게 종결되기를 바란다. 

내가 걱정하고 신경 써야 할 대상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맹세가 고색창연하게 느껴지는 세상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맹세가 고색창연하게 느껴지는 세상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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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부부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사랑의 열정이 소진되고 난 이후에도 부부 관계가 안정적으로 지속된다는 건 다분히 두 사람의 노력과 인내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서로가 마음을 나누지 않게 되고,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마저 체념하게 된다면? 

요즘 중년의 끝에 졸혼을 선택하는 일이 낯설지가 않다. 심지어, 부부가 서로에게 자유연애를 허용한다는 오픈 메리지(open marriage)도 있다고 한다. 결혼 후 자유연애의 공식화라니! 그게 어찌 가능한 일인지 놀라운 한편,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일은 어찌나 고색창연하게 느껴지는지...

심리학자인 라라 E. 필딩은 그의 책 <홀로서기 심리학>에서 성숙한 사랑이란,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 주는 가운데 뜨거운 관심을 놓지 않고,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돕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사람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당연하다며 말이다.

수긍이 간다. 결국, 내가 걱정하고 신경 써야 할 대상은 남편의 '문밖에 여자'가 아니라, 나와 남편이다. 상대방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얼마나 도우며 살고 있는지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유없이 자꾸만 공허해지는 50대에 이런 성숙한 사랑이 과연 가능한지 다분히 의문이지만, 시도조차 못해 볼 일은 또 아닌 것 같다. 겸허한 마음으로 성숙한 사랑도 마음 한편에 담아 본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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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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