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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고딩엄빠>의 한 장면
 MBN <고딩엄빠>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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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엄빠>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의 풀네임은 '어른들이 모르는 고딩엄빠'인데 3월부터 시작되어 이제 막 관심을 받는 중이다. 10대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엄마, 아빠의 리얼한 일상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아보겠다는 취지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임신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부모의 위로와 지원하에 출산과 고등학교 졸업, 결혼과 육아로 돌입한 어린 부부도 나오고, 가족이나 아이 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 아기를 키우는 어린 엄마도 나온다. 교복을 입은 모습(제작진의 요구이겠지만)으로 스튜디오에 나와 자신의 이성 교제부터 임신과 출산, 양육에 이르는 서사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데 '이 프로그램 실화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앳된 얼굴이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과 돌보는 솜씨가 여느 엄마와 다를 바 없어 보는 내내 뭉클했다.

당당하게 자신이 엄마임을 밝히는 어린엄마의 곁에 기꺼이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준 부모의 모습도 보인다. 미혼 자녀, 특히 10대 자녀의 임신 소식에 많이 놀랐을 텐데 기꺼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족이 탄생되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된 부모의 모습을 TV 프로그램으로 보자니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구나 싶다.

사실 우리 할머니들은 더 이른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집으로 시집가서 한 평생 여러 자녀를 키우며 잘 살아내셨다. 우리 엄마 친구 중에도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하신 분들도 여럿 계신다. 열여덟, 열아홉이라는 나이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절대 미성숙의 나이라기 보다 사회 규범과 통념이 허락하지 않는 나이라 할 수 있다.

OECD 평균 혼외 출산율이 40.3%인데 반해 우리나라 평균 혼외 출산율은 1.9% (2020년 기준)로 극히 낮은 수준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 수준이 동성애자 다음으로 높게 나온다. 결혼으로 이루어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미혼모의 낙인감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보다 양육을 선택하는 미혼모의 비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미혼모 시설에 입소한 이들 중 52%, 임신 중 청소년 미혼모의 53% 가량은 입양을 고려하는 현실이다. 그들 곁에 입양이 아닌 다른 길을 알려주며 손잡아 주는 어른과 이웃, 기관이 있다면 그들은 아이를 떠나보낸 '생모'가 아닌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로 살아갈 수 있다.

<고딩엄빠> 프로그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당사자가 밝고 환한 스튜디오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하는 부분이다. 실제 일상이 담긴 화면을 보며 MC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솔직하고도 구체적이라 가슴이 자주 움찔한다. 이제껏 미혼모나 십 대의 임신을 다루었던 프로그램의 슬프고 어두웠던 느낌과 달리 밝은 분위기에서 그들의 주체적인 선택에 집중하여 조명하니 보는 이의 마음도 달라진다. 프로그램의 풀네임처럼 어른들이 모르는 고딩엄빠의 세계, 쉬쉬하고 묻어두면 없는 것처럼 될 거라 믿고 싶었던 세계가 환한 스튜디오 조명 아래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얼굴 모자이크도 없고, 목소리 변조도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이들을 통해 선택과 책임이 무엇인지 함께 배우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낙인감을 없애고 인식을 전환하는 좋은 방법은 실체를 더 많이 드러내는 것이다. 한 사람에서 두 사람, 두 사람에서 열 명... 점점 수를 더하며 실체가 입체적으로 드러날 때 편견은 이해로, 혐오는 인정으로 바뀔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미혼모를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이유로 그들을 숨기기에 바빴다. 아이를 호적에 올리지 않도록 하고, 출산 사실은 익명 처리 봉인되며, 아이만 조용히 포기하기를 권유하는 것이 미혼모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고딩엄빠>가 방영되는 2022년 현재에도 미혼모가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보호 출산제'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들리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얼마나 힘겹게 마주한 미래인데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리려 하는가. 왜 우리는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더욱 무책임한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한 사람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도록 돕는 이들이 필요하다. 쉽지 않더라도 우리는 미혼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세상, 그들의 아이를 함께 키우는 세상으로 발걸음을 이어가야 한다. 미혼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세상은 거저 오지 않는다. 그들 존재가 사회로 나와 목소리를 내도록 돕고, 아이 키우기 많이 힘들지? 우리가 뭘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라며 손잡아 주는 이들이 더 많아질 때 가까워진다.

어른들만 모르던 세상은 이미 선명하게 도래했다. 이제 두 눈을 뜨고 그들과 눈을 맞추며 우리의 미래를 키우는 어린 엄마, 미혼모가 아이와 헤어지지 않고 살아낼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른들에겐 발칙하게 여겨질 수 있는 프로그램 <고딩엄빠>가 반가운 이유이자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태그:#미혼모, #십대미혼모, #어린엄마, #입양, #양육미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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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연결을 돕는 실천가, 입양가족의 성장을 지지하는 언니, 세 아이의 엄마,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저자, 가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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