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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8일 오전 10시 9분]

선거에서 패한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검언개혁 요구가 드세다. 이해는 하지만 관성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언론개혁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군사정권 하에서 덩치가 커진 메이저 신문들이 언론권력으로 변신한 이후 화두가 된 해묵은 개혁과제다.

그즈음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은 연대하여 언론민주화 내지는 언론개혁을 과제로 내걸고 시민언론운동의 시대를 열었다. 민언련은 2000년에 시민사회단체들을 망라하여 조선일보 반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검언개혁 가운데 언론개혁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언론개혁은 요즘 언론정상화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내용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언론개혁은 여전히 중차대한 개혁과제로서 유효한 의제인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언론개혁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전통적으로 언론개혁의 대상은 족벌신문인 조중동 개혁과 공영방송의 독립성 확보로 모아진다. '조선일보 폐간과 언론개혁을 위한 행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2019년에는 시민들이 조선일보 폐간을 청와대에 청원하기도 했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강산이 세 번 변했을 30년 동안 미디어 생태계는 천지개벽 수준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개혁의 내용은 변한 게 없다. 사실은 언론의 무얼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동안 관심은 조중동을 개혁하자는데 집중되었었다. 사주의 소유지분을 제한하고 편집권 독립을 목표로 법을 제정하기도 했지만 위헌 판결로 무산되었다. 그 후로는 좌표를 잃고 관념적인 목표를 향해 공허한 주장만 되풀이해온 셈이다. 그동안 언론운동의 성과로 시민들은 이제 언론의 문제를 전문가 못지않게 잘 이해하고 있다.

최근에는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개정이 부각되었다. 허위조작정보에 대해서는 언론개혁이 아니라 사회정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다분히 고의적으로 생산하는 허위조작정보로써 여론을 왜곡시키는 행위는 언론의 범주를 넘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묻는 건 기본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자유 운운하며 반대하는 기자협회 등 언론현업단체들은 범죄행위를 두둔하는 몰상식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언론운동단체의 우유부단함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향수를 자극하는 흘러간 옛 추억의 노래와도 같다. 수신료 문제만큼이나 낡은 레퍼토리가 되어버렸다. KBS 이사회는 지난해 6월, 40년 넘게 변동이 없는 월 수신료 2500원을 38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마련했다. 이 안은 방송통신위원회 검토를 거쳐 국회 과방위에 계류 중인데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넷플릭스나 왓챠, 웨이브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는 월 1만 원이 훌쩍 넘는 요금을 아낌없이 지불하면서 불과 1300원의 KBS 수신료 인상에는 인색하다. 시청자들의 콘텐츠 선호 취향과 매체 선택 패턴이 바뀐 것이다. 모바일 시대에 공영방송 수신료는 불협화음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되어버렸다.

이 마당에 공영방송 지배구조라는 화두는 생뚱맞기까지 하다. KBS와 EBS는 수신료 인상에 집착하는 대신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다. 종편의 광고수입이 지상파 방송을 위협하는 현실이다. 수신료 타령할 때가 아닌 것이다.

언론개혁이라는 화두는 낡았다. 언론정상화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포털이 뉴스 장사하느라 분탕질을 치고, 모바일과 유튜브가 대세가 된 현실에서 조중동과 공영방송을 주 타깃으로 하는 한, 개혁이라고 하건 정상화라고 하건 번지수가 틀렸다. 광활한 사막에서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신기루를 좇는 허망함과 다르지 않다. 조선일보 폐간 청원이라는 건 시대착오다. 사기업을 무슨 수로 폐간시킨다는 말인가. 편집권 독립이란 말도 어불성설이다. 경천동지할 정도로 바뀐 미디어 현실을 기반으로 한 운동이 되어야 한다.

다 알다시피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그중에서도 1인 미디어로서 유튜브가 대세다. 미디어 이론가인 매클루언에 따르면, 인쇄 미디어에 이어 등장한 전기·전자 미디어는 청각 미디어로서 역시 청각 미디어인 언어를 사용하던 원시시대의 감각으로 회귀하게 만들었다. 전기 미디어인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MZ 세대는 문자 및 인쇄 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은 가운데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대세 미디어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청년 시절에 인터넷을 접하기 시작한 4050 세대도 인터넷과 유튜브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종이신문과 지상파방송 시대의 개혁과제를 아직까지 고수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언론개혁의 시대는 지났다. 거시적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메시지 이전에 미디어 자체가 변화를 강제한다. 우리나라에 휴대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사회를 변화시킨 것은 휴대폰의 콘텐츠가 아니라 휴대폰 자체였다. 언어와 문자, 인쇄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론학자들은 미디어 효과를 거론하면 반사적으로 메시지의 효과를 떠올리겠지만, 그건 단편적인 인식일 따름이다.

지금은 미디어 혁신의 시대다. 테크놀로지 자본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새로운 미디어를 속속 개발해내는 현실에서 시민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언론개혁이 아니라 미디어 혁신이다. 그리고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유(思惟)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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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등 역임. 현재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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