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울진 산불
 울진 산불
ⓒ 녹색연합

관련사진보기

 
지난 3월 울진 산불 발생 당일, 주민들은 자기 집과 뒷산이 불타는데도 핵발전소로 향하는 소방차들을 바라보아야 했다. 울진 주민 이규봉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지형상의 문제로 금강송 쪽으로 불이 확산되면 사람이 들어가 저지할 수 없어요. 산불의 확산 경로를 알려주며 막아야 한다고 했지만 다수의 소방인력이 핵발전소와 LNG에 집중하면서 생태계 방어는 사실상 방치됐어요." 

울진에는 8기의 핵발전소가 위치해 있지만 자체적인 진화 장비는 소방차 2대뿐이었다. 소방·산림 당국은 한울원전본부 측 요청에 따라 소방차 24대에 대형 물대포까지 동원하여 핵발전소를 방어했다. 결국 핵발전소로 불이 번지는 것은 막았지만 지체된 진화작업으로 산불은 숲으로, 민가로 더욱 확산되었다. 

울진 핵발전소와 연결된 송전선로는 산불에 에워싸여 반복적으로 두절되었다. 다행히 블랙아웃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겨우 모면했지만 대규모 발전과 송전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 또 다시 2기의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한다. 지난 3월 23일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윤석열 차기 정부의 공약으로 신한울 3, 4호기 건설재개가 거론되는 울진군을 방문했다. 탈핵운동에 오래 몸담아온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울진사람들>의 이규봉 대표와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박혜령 대외협력국장을 만나 울진군 한울핵발전소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시로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핵발전소
 
울진 산불 사진
 울진 산불 사진
ⓒ 녹색연합

관련사진보기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사고에 대한 불안이 있다. 울진의 한울핵발전소에선 첫 상업가동을 시작한 1988년부터 지금까지 100여건의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박혜령 대외협력국장은 도시와 바다 자체가 삶터인 지역에서는 환경이 곧 생존이라고 운을 뗐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은 대부분 농어민이라서, 환경이 조금이라도 오염되면 그 자체가 생존에 직결돼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직후,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이라는 이유로 울진 농산물의 도시 마트 납품이 갑자기 끊기는 일이 있었어요. 만약 10기가 된 울진 핵발전소에 중대형 사고가 발생한다면요? 한반도 전체가 영향권이겠지만, 특히 이 지역은 후쿠시마 사례처럼, 고향을 떠나 뿌리가 잘리는 삶으로 가야 해요. 그건 죽음이나 마찬가지예요."

이규봉 대표도 핵발전소로 인해 늘 불안을 느껴왔다. 

"핵발전소 온배수 문제 등으로 농수산물도 영향이 있고 늘 불안하죠. 후쿠시마 사고라던가 지진이 터졌을 때 가슴이 철렁해요. 핵발전소가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준다고요? 더 중요한 건 지역 주민의 안전과 농수산물 판로예요. 제가 '울진원전 민간감시기구' 위원일 때 해마다 방사능이 검출되는 거예요. 처음엔 체르노빌에서 날아온 거라고 하더니 지금은 과거에 사고가 있었다고 고백하더군요. 원전 사고는 크고 작은 것들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전체 775건 중 울진에서만 145건 발생했어요. 가동 예정인 신한울 2기에 신한울 3·4호기까지 가동된다면 얼마나 더 늘어나겠어요?"

울진에는 8기의 핵발전소가 들어섰지만 인구와 소비전력이 적은 만큼 핵발전소가 만들어내는 그 많은 전기는 이곳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규봉 대표는 말한다. 

"대도시의 전기 공급과 전기요금 절감을 위해 지역을 계속 희생시키고 있어요. 핵발전소 추가 건설은 수도권에 전기를 보내는 송전탑 문제도 발생시켜요. 윤석열 당선자가 만약 발전소를 더 짓겠다면, 어떤 발전소든 서울·경기에 지으세요. 그게 에너지 민주주의죠."

또다시 갈등을 재현할 수 없다
 
 이곳은 여느 동해, 남해 바다와 달리 관광객도 주민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해변 앞은 핵발전소 돔을 전경으로 둔, 메마른 모래와 자갈로 뒤덮인 주차장이었다. 핵발전소로 인해 잃어버린 자연은 이곳 뿐이었을까.
▲ 부구해안가에서 바라본 한울핵발전소와 송전탑  이곳은 여느 동해, 남해 바다와 달리 관광객도 주민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해변 앞은 핵발전소 돔을 전경으로 둔, 메마른 모래와 자갈로 뒤덮인 주차장이었다. 핵발전소로 인해 잃어버린 자연은 이곳 뿐이었을까.
ⓒ 녹색연합

관련사진보기

 
재난에 위태로운 핵발전소, 잦은 사건·사고로 인한 불안, 먹거리 문제, 도시와 지역 간 위험의 불평등, 핵발전소 지역에 대한 낙인, 한 번의 사고가 야기하는 삶터의 소멸, 방사성물질 검출 등은 모두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되어선 안 되는 이유다. 

이규봉 대표는 그 간 핵발전소 찬반을 놓고 주민 갈등이 계속 이어지는 게 가장 힘들었지만 애향차원에서라도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막아야한다고 말한다. 

"한울핵발전소가 상업운전한 지 35년째예요. 지역은 오랫동안 힘들게 싸워오며 핵발전소로 인해 분열도 겪었어요.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시민들도 힘을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박혜령 대외협력국장도 강조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핵발전소 지역에서 고통받아온 주민들의 증언들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었어요. 그 결과로 지난 정부에서 탈핵을 시작하려 했었죠. 탈핵 폐기는 이전의 첨예했던 사회적 갈등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기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민들이 또다시 생업을 내팽개치고 반대 싸움을 하는 등 갈등이 재현되어서는 안 돼요.

과거 영덕에서 주민투표를 시도할 때,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했었지만 함께 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냈어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울진에 찬성 목소리도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에요. 반대나 우려하시는 주민이 상당수 있어요. 부족한 시간이지만 울진에서도 힘을 합쳐 목소리를 모으면 신규 핵발전을 막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홀로서기, 자립의 삶을 이야기하잖아요. 식량도, 에너지도요. 그런데 특정 지역에 '국가의 자립'이 몰릴 때는 엄청난 불평등과 차별이 발생해요. 죄가 있어서 시골에 사는 것도 아닌데 왜 계속 대도시를 위해 희생해야 하나요? 대도시에 계신 분들, 각자의 지역에서 자립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그는 윤석열 당선자가 이야기한 밝은 미래를 만드는 방식은 울진에 핵발전소를 늘리는 게 아니라, 전국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이 에너지자립 방안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마련해가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윤석열 차기 정부의 신한울 원전 3·4호기 신규 사업 재개는 대표적인 탈원전 폐기 공약이다. 자신 있게 백지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업 종결을 하지 않고 불씨를 살려둔 문재인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잘못된 정책은 곧 시민의 피해로 되돌아온다. 핵발전소는 새로 지을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폐쇄해야 한다. 그것이 위험이 아닌 안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울진, #한울핵발전소, #핵발전소, #탈핵, #신한울
댓글

녹색연합은 성장제일주의와 개발패러다임의 20세기를 마감하고, 인간과 자연이 지구별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초록 세상의 21세기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